밀교신문

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52

입력 : 2018-02-09  | 수정 : 2018-02-09

뉴스 원문 정보
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26909
작성 : 편집부

“돌멩이를 대해(大海)에 던지면 별 반응이 없으나 작은 그릇의 물에 넣으면 곧 반응이 있다. 참회와 차별희사로 마음을 밝혀 증득을 얻도록 정진하면 믿음과 행이 굳어져서 그 복덕성을 분명히 알게 된다. 마음의 편안함[心安]은 참회와 하심에 있고 몸의 편안함[身安]은 자비로 희사하는데 있다. 그러면 넉넉해진다. 내 마음 속에 위없는 참 도(道)가 있으니 이것이 안심(安心)의 길이다. 항상 하심하여 진정한 도를 행하면 미혹을 멸하게 되고 큰 지혜를 내어 진망(塵妄)을 타파하면 본연의 각성을 깨닫게 된다. 항상 수행을 생각하는 것이 곧 위없는 참 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루 고행하고 닦은 공덕이 천상에서는 백 년 천 년의 장원한 행복이 된다.”(실행론 제3편 제8장 제3절 다)

무지개를 좇는 탐사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물길을 따라 가는 탐사일정이다. 첩첩산중에 있는 발원지를 출발해 실개천과 늪, 강, 바다를 거쳐 대양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계획은 엉성했다. 방송용 프로그램 이름도 미처 정해지지 않은 기획물이다.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무작정 밀어붙인 일이다. 애시 당초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쌓고 지녀왔던 노하우만 믿어도 된다는 생각에서다. 위험한 장비가 동원되지 않아도 될 만큼 평지를 걸으면서 움직이면 된다는 안이한 자세도 한몫을 했다.

발원지는 대개가 그렇듯 깊은 산 속에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단 한 번도 닿은 적이 없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신비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 깊은 속살을 찾아낸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무작정 끌려 다니다시피 헤매고 헤맨 끝에 다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능력과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세계 같은 곳이었다.

발원지 주변은 희붐했다. 안개 같은 것이 서려 있는 가운데 어두운듯하면서도 밝았다. 특히 한 곳이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곳이 발원지라고 대변하기라도 하듯 빛을 뿜는 것처럼 환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대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성큼 다가가기를 머뭇거리면서 숨을 골랐다. 간신히 다가선 그곳에서 물은 퐁퐁 솟고 있었다. 작은 컵으로도 충분히 받아낼 만큼 양은 많지가 않았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솟아난 물은 철철 흘러넘쳤다. 샘처럼 푹 패여 있는 울타리를 넘은 물은 물줄기를 만들면서 길게 흐르기 시작했다. 발원지로서의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대원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발원지 뒤쪽은 절벽이었다. 그래서 대원들은 발원지로부터 2미터 정도 떨어진, 비교적 평평한 곳에 일렬로 서서 결의를 다졌다. 쉼 없이 물을 쏟아내고 있는 발원지의 넉넉함과 자비로운 물길의 보살핌, 흐르면서 길을 내고 뭇 생명과 자연에 자양분을 만들어 주고 있는 물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번 일정이 안전하기를 빌었다. 너나없이 공을 들이고 힘을 다한 대원들이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면서 간절한 기도를 했다.

“출발 10분 전이다. 지원팀 먼저 출발하고 기록팀, 촬영팀 순서로 출발한다. 착오가 없기를 바란다.”
탐사대장의 명령은 곧 법이었다. 물길이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법 없듯이 탐사대장의 명령도 번복되는 경우가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늑장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 탐사대장의 명령에 따라 각자의 주어진 역할을 좇아 발원지에서의 마무리작업을 서둘렀다. 지원팀은 장비를 추스르고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록팀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기에 바빴다. 촬영팀은 발원지를 비롯해 주변경관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로 담아내기 위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힘들게 찾았던 발원지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한 대원들은 탐사대장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팀워크가 빛나는 대원들의 기지가 십분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발원지에서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탐사활동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진짜 출발이다.

하루를 꼬박 걸었다. 차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발원지에서 시작된 물길을 따라 늪을 걷는 첫 번째 탐사일정이었다. 실개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늪지대에서 짊어지고 있던 탐사장비를 통째로 내동이칠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독을 잔뜩 머금은 뱀 같은 동물을 만나고 맹독성 식물에 얼굴을 스쳤던 일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위험한 일이었다. 탐사대장의 불호령은 고사하고 대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은 이 외에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숨이 할딱거릴 정도의 위험천만한 일을 맞닥뜨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철저하게 세우지 못한 계획을 꼬집고, 준비성 없는 태도를 탓할 뿐이었다. 그래도 하나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였다. 위기 때마다 발휘되는 기지가 빛이고 길이었다.

물길은 하염없이 흐르고 흘렀다. 질긴 생명력을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며칠이 걸려서 하천 정도의 폭을 가진 물길을 지나치자 제법 격을 갖춘 강이 나타났다. 강둑을 따라 걷는 탐사일정은 그동안 걸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자연이 쏟아내는 이야기 역시 무궁무진했다. 비교적 단단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것 같은 흥분을 자아내게 했다. 대원들은 언젠가 편집이 돼서 쨍하고 만천하에 드러날 ‘강의 이야기’를 주절거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발걸음 속에 희망이 있고 기대가 있었다.
지칠 겨를조차 없었다. 누군가 하나 지친 듯해 보이면 언제랄 것도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채근해대는 탐사대장의 쉰 목소리가 틈새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대원들에게 지쳐서 뒤처질 권리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묵묵히 걸으면서 생각하고, 기록하고, 촬영하는 수밖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에 가까웠다. 지치게 되면 뒤처지게 되고, 뒤처지면 그대로 낙오자가 됐다. 낙오자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대원명단에서 빠지면서 전체 탐사일정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말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강폭이 넓어지고 수심이 깊어지자 강둑을 따라 걷는데 한계가 드러났다. 이동수단이 바뀌었다. 대원들은 탐사대장의 명령에 따라 준비된 배에 몸을 싣고 취재장비를 옮겨 실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취재장비를 모두 옮겨 실은 다음 지친 몸을 넘어뜨리듯이 배에 올라타자 탐사대장은 이내 출발명령을 내렸다. 그야말로 숨 가쁜 일정이었다. 강을 벗어나자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탐사일정은 바다로 연결됐다. 바다는 또 강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이동수단도 달랐지만 보는 방법도 달리 해야 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배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래야 뻔했다. 마음으로 보거나 물속으로 잠수를 해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다탐사를 마무리하면서 1차 탐사계획은 끝났다. 편집기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지금이야말로 망중한이다. 1년 중 고작 사십여 일에 불과한 첫 번째 휴식기간이다. 휴식기간이라는 것도 말이 그렇지 사실은 뒷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이자 새로운 탐사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촬영한 것은 편집해야 하고 조사하고 취재한 것은 글로 옮겨야 했다. 대원들마다 주어진 작업이 밀려있었다. 해양으로 나가기 위한 새로운 스케줄도 잡아야 한다. 해양탐사까지 마무리해야 물길을 따라 가는 이번 탐사일정은 모두 끝난다.

탐사는 꿈같은 일이다. 마냥 신나고 들뜬 일이라서가 아니다.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실체가 없는 일이라서 그렇다. 무작정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닐뿐더러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진행과정에서 탐사대장의 혹한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다반사다. 고도의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해 바다까지 이어진 탐사여정은 그래서 무지개를 좇아가는 동심과도 닮아 있었다.

정유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