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거룩함은 왜 낮은 곳에서 솟아나는가

입력 : 2011-08-31  | 수정 : 201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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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13655
작성 : 편집부

우보(牛步) 민태원 선생의 명수필 ‘청춘예찬’에는 젊은 석가세존의 설산고행과 젊은 예수의 광야와 사막고행을 구도의 당연한 의례요 청춘의 특권으로 찬미하고 있다. 스스로 낮춤으로 왕세자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지난한 ‘노동’으로 지고지순의 경지를 득하였으며 이 깨달음과 계시로, 우리는, 보듬어주는 큰 스승이자 위대한 성인(聖人)으로서 당신의 거룩한 가르침을 노래한다. 가난하고 슬퍼하는 자의 공감을 뛰어넘어 성현 자신의 아픔으로까지 껴안는 능력은 스스로의 혹은 예정 속의 득도(得道) 또는 영적능력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능력은 제도권의 가르침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독학으로, 깊은 영적인 기도로 획득한 천부적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짧은 공생애든 45년 간 노령의 교화여행이든 많은 제자들에게 큰 진리를 가르치고 입멸하셨다.

가난한 사람과 배움이 짧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동정심이 많으며 친사회적이라고 하며 유튜브 검색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버클리대학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 박사의 2010년 연구저술(The Compassionate Instinct․共感)에도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잘 체득하며 부자나 학벌이 높은 이는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석가세존의 마지막 가르침의 현장까지도 당신의 표정과 목소리와 신체적 접촉을 통한 높은 공감과 서사적인 감화를 통하여 훨씬 친밀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제자들이나 사도들에게 전달되었으리라 추정해본다. 진화적 적응관점에서의 동물사회 소통도 그러하다(공감능력이 높다)는 것이다. 국가간의 결과에서도 영국을 포함한 부국(富國)일수록 어린이의 공감결핍도(또는 자신감)는 증가한다고 한다. 이런 연구는 자본주의에서 돈의 흐름이 왜곡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적하주의나 분수효과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의 원인연구 중에 거론되는 뇌과학과 연관하여 설명하는 사회심리학의 최신 이론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계급’에 대한 논의와 인식은 성숙되지 못하였다. 이는 스스로 노동계급인 노동자가 자식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노동계급을 부정하려는 심리적 회피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노동으로 사는 삶이 자랑스럽지 못한가. 설산과 사막의 숭고한 고행의례의 거룩한 헤게모니를 부자와 많이 배운 자들의 성공과정담론으로 빼앗겨 버린 것은 아닌가.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통한 여러 가르침도, 또는 후대에 현현하는 미륵, 도솔천(하늘의 임금)의 희망적 기다림도, 부자청년이 예수를 따라나서지 못함도 이삼천 년 동안 ‘그대로’다.

온 생애를 통틀어 가르치려고 수고한 요체 중에는, 낮고 비루한 곳으로부터 거룩함이 솟는다는 가르침은 오히려 분명하다. 우리 교육은 스스로 높아지고 공감능력을 퇴화시키며 탐욕을 가르치며,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스스로 낮아지는 가르침, 공감능력을 발전시키고 노동이 자본의 모태임을 근간으로 하여, 부처님의 자비와 공감을 더 많이 받고 있는, 받아야 하는, 주체들의 연대를 꿈꾸어본다.

강태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