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태과(太過)가 큰 병이다

입력 : 2011-08-16  | 수정 : 2011-08-16

뉴스 원문 정보
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13554
작성 : 편집부

얼마 전에 지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 새로운 기록들을 갱신하면서 수많은 수해 이재민과 인명, 그리고 재산피해를 야기하였다. 그것은 우리 국토의 국지적 상황에만 그치는 재난이 아니라 전 지구적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기상이변과 기후변화의 모습은 기후온난화 심화(深化)현상의 일환이거나 생태적 과정의 흐름이라고 보는 관점이 대다수이다. 그러한 문제해결의 접근으로 국가 단위의 녹색운동(green Movement)과 보호대처 및 세계의 공동과제로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결실의 수확을 눈앞에 두고 농부들의 땀과 정성으로 여물어가던 사과, 배, 수박 등의 과실들이 비바람에 힘없이 떨어지고 벼, 채소 등의 농작물이 물에 잠겼다. 그런가하면 집중호우로 산사태나 삶의 터전 황폐화, 도로유실, 침수 등 전국의 대부분이 홍수피해로 큰 몸살을 앓았다. 농사가 하늘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인간 사회의 능력한계가 보잘것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들이다. 그러나 극도의 상황 속에서 그래도 아름다운 미담들과 극복의 정신은 언제나 삶의 새로운 희망으로 나타나곤 한다.

다가오는 미래의 안위가 불확실해지고 그러면서도 대부분이 시간의 흐름 속에 불감증이거나 무관심으로 무뎌 가는 삶의 무게들을 이제는 새롭게 느껴보며 깊게 통찰해 보아야한다. 현대의 인류가 첨단과학 정보화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면서 점점 발전의 속도를 가속화해 가고 있다. 이것도 인류의 이상인 평등과 평화의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보되어 가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외형적 치부(置簿)에 불과하다. 물질만능의 집중적인 생활패턴은 항상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므로 장기적인 안목의 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안을 채우는 정신의 각성과 성숙, 그리고 의식변화의 실천이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과 기후변화의 주범을 여러 가지로 들 수 있겠지만 그 근본은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이나 습관이 큰 원인이 되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질중심의 넘치는 사회, 그리고 극도의 빈곤, 이러한 양극(兩極)의 현상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이다. 오늘 날 대부분의 국가와 사회가 이룩한 눈부신 개발성장의 시작은 16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과학혁명과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지만 처음으로 일반화된 것은 영국의 경제사가인 아놀드 토인비(Toynbee, Arnold Joseph)에 의해서였다.

이후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오늘날 경제성장과 발전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인류의 혁명적 기술과 조직체계의 변화를 시작으로 하여 전 인류의 시스템구조 변화와 생활개혁을 주도해 가는 주축이 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질문명의 이기와 거침없는 개발성장을 통하여 인류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는 있으나 자연훼손과 무절제한 생활, 정신문화의 불각(不覺) 내지 정체성 혼란으로 정신개혁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욕심과 다툼을 다스리는 길은 바른 정신과 의식의 전환, 그리고 통찰력이다.

그것은 인류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바꿔 가는 지비용(智悲勇)의 실천으로 전 지구적 실천의 대안이 되는 길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지비용이란 지혜와 대비와 용예이다. 지혜는 인과를 밝게 깨닫는 것이며, 대비란 대자비의 행으로 부처와 보살의 바탕이 되는 마음이다. 그리고 용예란 물러남이 없는 바른 실천이다.

회당대종사 실행론 말씀 중 문답에 이르기를 "(문)불급보다 태과병이 큰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답)현실에 좋은 것이라도 너무 많을 때는 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불급도 병이지만 태과가 더 큰 병이 되는 것이다. 태과는 지나치게 넘친다는 말이며 물질뿐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어서도 한 곳에 치우치거나 과욕을 부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급과 태과를 다스리는 방편은 절제와 자신의 역할을 깨치는 본분자각(本分自覺)에 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대가족정신의 실현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모두가 잘 사는 길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삼밀수행과 육행불공도 곧 진리의 생활실천이다. 이와 같은 진리의 실천은 현실의 부적절하고 의뢰적이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모든 문제상황들을 조화롭게 풀어 가는 덕력(德力)을 갖추는 것이며 지비용의 실천이 된다. 지비용은 진언행자 수행의 덕이며 이러한 지비용의 실천증득으로 확고한 신념과 종지를 굳게 세우고 함께 큰길을 가도록 해야만 한다. 큰길은 정도(正道)이며 지혜이며 이원주의(二元主義)이며 육바라밀의 길이다. 그리고 바로 불법(佛法)이 큰길인 것이다.

지정 정사 /종조법어연구모임 연구위원·불승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