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배려하다(1)

밀교신문   
입력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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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부처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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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다국의 속국인 앙가국 수도 짬빠 시에는 바라문 쏘나단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바라문의 명성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웃 나라인 마가다국 빔비사라왕까지 그에게 기름진 땅을 하사했을 정도이니까요.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에서 바라문이란 계급은 여느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 집안이 7대를 거슬러 올라가도록 다른 계급과 핏줄이 섞이지 않은, 순혈의 계보를 자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바라문들은 오랜 세월, 세상은 브라만신이 창조했고, 인간의 행불행은 오직 신에 달려 있으며 신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 행복을 빌어야 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 브라만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찬송할 자격과 권리는 오직 자신들에게만 있고, 신의 계시를 인간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알려주는 일도 자신들 계급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가장 높은 신에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들 계급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속적인 이익과 명예와 권력을 막강하게 누렸으니, 인도 사회의 종교적, 문화적, 정신적인 차원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선 계급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쏘나단다는 바로 그 바라문 계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유명세는 혈통에서만 오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자산가요, 모든 학문에 정통했고, 심지어 외모도 훌륭하고 윤리적으로 흠이 없었고, 말솜씨도 뛰어났고, 바라문 계급의 스승으로서 모든 바라문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게다가 나이까지 지긋한 데다 왕이 하사한 땅에서 왕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쏘나단다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왔습니다. 그 소문은 금세 퍼져 쏘나단다 바라문 귀에까지 들렸고, 그는 호기심이 일어 당장 부처님을 만나 뵈러 가겠다며 나섰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바라문 계급 사람들이 말렸지요. 사회적 계급으로 보나 혈통으로 보나 심지어 나이로 보나 고타마 붓다는 바라문 쏘나단다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쏘나단다는 저들을 간곡하게 설득하면서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손님에 대한 예의로라도 우리가 그분에게 나아가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과연, 쏘나단다의 권위는 대단하다 싶습니다. 그토록 완강하게 반대하던 모든 바라문들이 다 설복 당했고 다함께 부처님에게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정작 쏘나단다는 슬슬 걱정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해서 모두 거느리고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지만, 그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혹시 자신이 고타마에게 질문을 했다가 그가 ‘그렇게 질문하지 말고 이렇게 질문하십시오’라고 말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고타마의 질문에 자신이 어떤 대답을 했을 경우 그가 ‘그렇게 대답하지 말고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기라도 한다면…? 아, 이 얼마나 낯 뜨거운 일입니까. 자신을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 게 빤합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 사람들은 나를 경멸하겠지. 저 수행자 고타마에게 제대로 질문도 못하고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서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그런데 바라문 쏘나단다가 자기 명성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들이 나를 비웃고 업신여기면 내 명성은 곤두박질 칠 것이야. 명성이 땅에 떨어지면 재산도 줄어들 테지. 우리는 명예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던가.’
 
결국은 명성과 재산이 줄어들까 그게 걱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라도 이런 점이 가장 마음 쓰일 것입니다. 우리 사는 게 다 그런 법이니까요. 지금 이 바라문 쏘나단다는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습니다. 이제 그의 위선에 가득 찼던 명성이 산산 조각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부처님 계신 연못 가로 나아가면서 바라문 쏘나단다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부처님께서 너무 어려운 걸 물어보시면 어쩌나….’
 
그러다 부처님 앞에 도착해서는 급기야 그는 이런 바람까지 품게 됐습니다.
 
‘내가 아는 걸 물어보셨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우리 스승에게서 전해 받은 가르침에 관해서 질문을 하신다면 나는 막힘없이 대답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고타마께서도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쏘나단다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제 마음을 괴롭히고 있구나. 그러니 그가 바라는 대로 그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을 물어야겠다.’
 
부처님은 그를 맞아들인 뒤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바라문 쏘나단다여. 그대들 바라문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바라문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까?”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바라문 쏘나단다의 마음에는 기쁨이 솟구쳤습니다. 이 질문은 그가 ‘제발 고타마께서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바로 그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문제가 나온 시험지를 받은 학생도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자기 명예를 지켜준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이 솟구쳤습니다.
쏘나단다는 기쁜 마음에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깨끗한 혈통을 이어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베다와 기타 학문에 정통해야 합니다. 셋째는 겉모습에서도 위엄이 넘쳐야 합니다. 넷째는 계행을 잘 지켜야 합니다. 다섯째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어야 바라문이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그 다섯 가지 조건 하나하나를 짚어보게 하면서, 바라문 쏘나단다로 하여금 다섯 가지 조건 전부가 바라문의 자격 조건이 아니라 계행과 지혜 두 가지만 있어도 족하다는 대답까지 하도록 논쟁을 이끌어갑니다. 순간, 그를 뒤따라온 수많은 바라문 계급 사람들 사이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그토록 존경하던 바라문 쏘나단다가 고타마에게 휘말리고 있다며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바라문들은 그 무엇보다 혈통의 청정함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라문 쏘나단다는 지금 무엇에라도 홀린 모양입니다. 자기 계급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들을 부처님 질문에 맞춰 하나씩 무의미한 조건이라고 답하더니 급기야 혈통도 사실
 
바라문 자격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대중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지금 이 바라문 쏘나단다가 배운 것도 없고 말도 잘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해서 고타마와 논쟁을 벌이자마자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바라문 쏘나단다를 무시하고 그대들이 나와 토론하기로 합시다. 하지만 만일 그래도 이 바라문 쏘나단다는 현명하고 말도 잘 하니 고타마와 논쟁할 만하다고 여긴다면 그대들은 침묵하십시오. 나는 쏘나단다 바라문과 토론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이 제안은 참 묘합니다. 그대들의 대표라 여긴다면 끝까지 대화를 들어야 할 것이요, 이렇게 자꾸 끼어들고 비난하려거든 그대들의 대표는 무시하고 그대들이 나의 논쟁 상대자로 나서라는 것입니다. 대론자인 쏘나단다의 위신을 세워주면서도 대화와 논쟁에 질서를 잡아서 휘말리지 않으려는 부처님의 이 제안, 어떻습니까? 바라문 무리들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쏘나단다는 자신들 계급에서 우두머리입니다. 고타마와의 토론에 자신들이 끼어들면 쏘나단다 한 사람만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라문 계급 전체가 무시당하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이때 바라문 쏘나단다는 부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타마시여, 저들은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저들을 상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동료들에게 자세한 예를 들어가면서 이 대화에 귀 기울여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토론장의 모양새가 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토론을 벌이던 두 논쟁자가 어느 사이 한편이 되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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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