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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힘

밀교신문   
입력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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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있다. 소설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각색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해안에 칠레의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망명해온다. 그러자 세계 곳곳에서 그를 응원하는 우편물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마을 청년 마리오는 매일 자전거로 섬을 오가면서 네루다에게 그 우편물을 배달한다. 네루다를 만나기 전에 이렇다 할 꿈도 직업도 없던 시골 청년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면서, 특히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를 얻기 위해 좌충우돌하면서 점차 시인의 눈을 갖게 된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시인의 길은 메타포(metaphor, 은유 혹은 비유)에서 시작한다고 격려하고,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 점점 메타포의 세계로 나아간다. 한 편의 시 같은 영화이다.

 

사실 고대부터 많은 문명권에서는 수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그리고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비유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가장 탁월한 인간은 비유적 인간이라 하지 않았던가. 또한 남을 설득하려면 로고스(logos, 논리), 에토스(ethos, 살아온 이력)와 함께 파토스(Pathos,감정, 공감)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왜 비유의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일까. 특히 시와 비유는 일상의 언어에 비해 모호한데도 말이다. 그러나 일상의 언어가 지시적이고 표층적 의미만 전달한다면 비유의 언어는 함축적이고 정서적이며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 시의 모호성은 비유와 상징에서 비롯되지만 오히려 비유의 화살은 바로 인간의 감성을 에워싼다. 그래서 때로는 논리보다 비유가 꽉 막힌 생각을 뚫어주고 어렴풋한 세계를 더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비유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말 대신에 너에게 장미 한 송이를 주고 싶다거나 새 넥타이를 매고 온 동료에게 오늘 아침 넥타이가 푸른 파도 같네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핵심을 향한 짧은 비유를 만나면 우리의 감정은 그것의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연루되고 만다. 비유가 수많은 통계나 명확한 논리를 통해 도출한 결론도 뛰어넘는 호소력을 가지는 이유다.

 

네루다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리오에게 해변을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해보라고 권한다. 이 섬은 물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곳이라는 마리오에게 사람은 의지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며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다독인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짧지만 인상적인 비유의 향연을 벌인다. 이렇게 시인과 우편배달부는 시적 은유로 우정의 언덕을 높이 세워 나간다.

 

후반부에서도 이 영화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메타포를 모르고 오직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시인의 도움을 청했던 것인데 마리오는 이미 훌륭한 시인으로 변신한다. 망명에서 풀려 고국으로 떠난 네루다에게 전하려 섬의 곳곳에 펼쳐진 아름다움을 찾아 사진이 아닌 소리로 녹음한다. 파도소리, 절벽의 바람,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 등을 찾아내는 마리오의 모습이 꽤 진지하다. 우리는 평소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제각각 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지 무심하다.

즘 귀를 열면 비유의 따스한 언어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어들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도층의 언어가 상대방의 파토스를 전제로 하지 못하고 마구 쏟아져 나올 때가 그렇다. 근거가 부족한 일부의 사례를 과장하거나 함부로 단정하는 비난의 언어가 곧 자신에게로 쏟아진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할까.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 철학이다. 주변에도 하고 싶은 말을 즉각적으로 다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감정을 꾹꾹 누르며 몇 번이나 생각한 뒤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일상에서는 전자가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나 돌아서면 자신에게도 상처가 축적된다. 파토스는 다른 사람이 처한 곤경을 자신의 곤경처럼 느끼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비유는 우리들의 불안한 삶도 성찰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내 안에도 남을 향한 독설을 품고 있지 않은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유가 만드는 따뜻한 사회로 함께 진입할 수 있다. 젊은 날 어떤 호사보다도 장미 한 송이에 감동받던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한상권(시인/심인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