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선악에 대한 과보

밀교신문   
입력 : 2018-12-10  | 수정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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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큰 착한 일을 하나 하는 그것보다 일상생활 하기 쉬운 작은 착한 일이라도 많이 하여 습관 되면 크게 착한 것이 된다. 적소성대(積小成大)되므로 그 과보도 무량이라. (중략) 이지불(理智佛)은 선과 악에 화와 복이 평등하여 남모르는 선일수록 그 복과가 무량하고 남모르는 악일수록 그 재화(災禍)가 더욱 크며 오래 지은 선업과(善業果)는 그 복보(福報)도 장원(長遠)하고 장원하게 지은 악은 그 재앙(災殃)도 오래니라.”(실행론 제3편 제12장 제1절 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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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있다
 
해가 바뀌었다. 해넘이를 하느라 분주했던 몸과 마음은 새해맞이불공을 하면서 간신히 추슬러졌다. 겨우내 소란스럽고 벅찼던 일을 훌훌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새해가 되면 홀가분할 것처럼 여겼던 생각은 순전히 착각이었다. 새로운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해 동안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는 일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짐도 보통 짐이 아니었다.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보, 당신도 이제 매일 아침마다 10분씩 염송을 더 하세요.”
“…….”
 
아내의 말은 굵고 짧았다. 새해 첫날, 그것도 새벽 1시 30분에 아내의 입에서 떨어진 작전명령은 그야말로 어마무시 했다. 집안에서 서열 1위의 위세를 당당하게 유지하고 있는 아내의 말이었기에 거역하기는커녕 한두 마디의 말을 더 보태거나 뺄 수도 없었다. 아내의 말은 입 밖으로 뱉어지면 곧 그대로 지켜야 할 명령이었다. 심지어 법으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가족의 일원이라면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살다보면 어쩌다 깜빡할 수 있는 일이 있기도 하는 법이거늘 간혹 잊어버리고 명령을 어기거나 불문율처럼 정해진 법을 위배한 일원이 생기면 가차 없이 벌칙이 내려졌다. 심지어 지구를 떠나야 할 수준 이상으로 그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생각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초 새벽에 새로운 명령이 하달되니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하지 못하겠다느니 다른 변명을 하려거나 토를 달려고 하지는 마세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나는 지은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쭉 해왔던 염송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따라주시기를 바라고 또 믿어요.”
 
무려 1년 간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매일 10분씩 염송을 더하라는 것은 상호씨에게 적잖이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1시간의 염송에 10분을 더하라는 말은 아예 아침잠을 최소한 10분은 더 줄이라는 명령처럼 들렸다. 이제 막 땅을 헤집고 올라온 싹이 무참하게 댕강 잘려나가면서 차디찬 얼음판 위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온몸으로 오싹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큰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탓을 하며 의기소침해지는가하면 몸이 쪼그라드는 심정이기도 했다. 무기력해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이렇게 또 무너지는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아내의 말에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여튼 어떤 한 마디도 덧붙일 수 없었던 까닭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책감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다. 누구를 원망할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지은이를 탓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노릇이라는데 생각이 머물자 자포자기상태에 빠져들면서 무기력증이 엄습했다. 아내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술술 풀려서 쉽게 일구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뭐를 하던 보석에 티 슬듯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해도 해도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부러질 수 있다는 이치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래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 둥 입에 거품을 물면서까지 장광설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믿음을 말하고 기도를 권한다. 믿는다고 해서 안 될 일이 이루어지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오를 수 없는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정성이라는 것도 온도차는 있는 법이다. 상호씨는 그 생각을 하면서 한 해 동안 매일 10분씩 염송을 하느니 차라리 7정진으로 몰아서 몇 번만 하는 게 낳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내보았다. 그런데 무려 여덟 번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입이 쩍 벌어졌다. 한두 번은 고사하고 무려 여덟이라는 숫자에 기가 눌려 어지럽기까지 했다. 엉뚱한 생각이 생뚱맞게 가하는 일격에 다시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7정진의 고단함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염송을 시작하고 처음 1시간여 동안은 얼떨결에 시간이 흘러가는듯하지만 그 다음 부터가 문제다. 1분이 한 시간 같고, 10분이 10시간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결인을 한 손가락의 저릿저릿함은 3시간여가 지나면서 찾아온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강도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상호씨의 경우는 분명히 그랬다.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왼손 검지에서 안티푸라민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상호씨는 왜 하필이면 안티푸라민 냄새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만병통치약처럼 발라대서 코에 밴 영향이려니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분명 알지를 못했다. 한 자리에서 정진하던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먼저 끝내고 자리를 털면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갈 때의 부러움은 절망감까지 안겨주기도 했다. 새해대서원불공을 회향하는 날처럼 여럿이서 함께 정진할 때 이삼십 분 여를 남겨 두고 솟아나는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졸음이라도 찾아왔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감출 수 없는 바람이었다. 대부분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심인당 이었던지라 경적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비해서 정진하는 시간은 왜 그다지도 늦게, 또 천천히 흘러가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순간을 맞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 않은가 말이다. 한 번은 고사하고 여덟 번을 해야 할 7정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을뿐더러 입 밖으로 쏟아낼 일도 아니었다.
 
정성을 들여서 얻고자 했던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례는 많고도 많을 것이다. 그야말로 차고 넘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을 시키기 위한 부모의 정성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코 부정할 일이 아니었다.
 
“지은이가 꼭 좋은 대학에 가기만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가 공부한 만큼, 그리고 원하는 대학엘 가야 후회가 없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부모로서 뒷바라지를 해주자는 것이니까 당신도 꼭 명심하고 절대로, 또 하루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꼭 명심해주세요. 아시겠지요.”
 
아내는 다시 쐐기를 박고 나섰다. 아내의 말을 좇아서 그렇게 하겠다고 시원스런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아예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도록 빗장을 치고 대목을 박아두려는 심사처럼 보였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술을 빼물었던 상호씨는 말문을 닫고 시무룩하게 창밖만 내다보았다. 때마침 요란스럽게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캄캄하던 밤하늘이 불빛으로 반짝였다. 젊은이들이 길거리에 몰려다니면서 폭죽을 터트리는 모양이었다.
 
“저, 저, 저, 저 봐요. 우리가 지은이를 위해서 1년짜리 불공을 하려고 마음먹으니 법계에서도 환영의 축포를 쏘아 올려서 반겨주시는 것 같지 않아요, 여보…….”
 
“…….”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