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 20.금강인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8-12-10  | 수정 : 2019-04-12
+ -

발심하자마자 법륜을 굴리는 보살


20181122100241_f3a6c34e675f748b67625ee90a589fd4_62tn.jpg

 

 

연꽃이 가진 상징적 의미 가운데 화과동시(華果同時)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꽃은 꽃이 지면서 열매를 맺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힌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꽃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의 도리가 함께 함을 볼 수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처럼 원인에는 이미 결과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백미터 단거리 경주나 마라톤의 경우에 맨 처음 내딪는 걸음에는 목적지까지의 결과가 이미 담겨있다. 모든 걸음에는 처음의 원인과 나중의 결과가 깃들어있어서 걸음이 시작에 가까운지 목적지에 가까운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시작과 끝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것을 더 확대하면 지금의 이 순간은 무한한 과거의 결과이면서 무한한 미래의 원인이 된다.

 

매 순간 순간은 인(因)이면서 동시에 과(果)이기도 하다. 우주의 모든 것이 원인이면서 결과로서 무한한 가능성으로서 흐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만일 어떤 모임에 갔다고 하면 지나간 온갖 인연의 결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동시에 미래에 전개될 무한한 원인으로써 그 자리에서 인연이 전개되어가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 내가 일으킨 마음, 나의 행위 모두는 결과이면서 원인이고, 무한한 수렴과 확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발심을 하면 그 시작이 되는 발심속에는 결과로서의 바른 깨달음이 담겨있게 된다. 이것을 초발심시변성정각이라 하며 처음에 발심할 때에 문득 바른 깨달음의 결과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이루면 또한 궁극의 목적인 중생교화에 나서야 한다. 대일경의 삼구법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보리심을 인으로 하면 대비를 근본으로 하고 궁극적으로 중생교화의 방편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심하자마자 법륜을 굴릴 수도 있게 된다. 대승불교 보살의 이념인 자리이타가 전후 구별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발심과 동시에 법륜을 굴리며 어떠한 대상이든 남김없이 설복하여 진리에 눈뜨게 하는 위력을 갖는 이러한 가능성을 재발심전법륜보살이라 한다.


법륜이란 법의 바퀴를 가리키는데 륜(輪)이란 범어로 차크라라고 하며 바퀴처럼 둥근 모양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우주의 바퀴를 범천의 바퀴라 하여 이를 돌리는 자는 신들 가운데서 최고의 신이라 생각했으며, 지상에서도 이상적인 왕은 7개의 보물을 소유하고 그 하나인 윤보를 굴리는 자라고 하여 전륜성왕이라 불렀다. 륜은 일종의 무기로서 커다란 바퀴 양쪽에 창을 달았기에 굴러가면서 적들을 무찌른다고 해서 고대 인도에서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가 없었다. 그래서 륜을 굴리는 왕은 인도를 통일하여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륜왕이라고 하였으며, 윤보는 어떠한 적들도 다 물리치는 고대인도제왕의 표치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를 불교에서 가져와 부처의 교법이 중생의 번뇌 망상을 없애는 것이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가 산과 바위를 부수는 것 같으므로 법륜이라 하였다. 또 교법은 한 사람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늘 굴려서 중생들을 이롭게 함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으므로 법륜이라 한다. 법륜을 지닌 부처님은 전륜성왕이 윤을 가지고 사방을 제압하듯이 부처의 설법도 외도들을 모두 설복시키는 법의 바퀴를 굴린다고 비유되었고, 이를 전법륜이라 한다. 굴려야 할 법륜 가운데 특히 밀교의 가르침을 금강륜이라 한다. 진리를 상징하는 8폭의 법륜은 밀교를 가리키는 말로서 금강승과 함께 사용된다.


재발심전법륜보살의 이미지는 금강계만다라에 들어오면서 금강의 명호로써 금강인(金剛因)이라 개명하였다. 그리고 진리를 펼치는 전법륜의 특성에 따라 서방 월륜 중 무량수여래의 좌측, 즉 북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 보살은 '금강정경'에서 일체여래의 큰 바퀴라고 부르며, 또한 전법륜대보살ㆍ평등심을 일으켜 법륜을 굴리는 대보살ㆍ금강장ㆍ보리도량ㆍ재발심전법륜보살이라 한다. 기타 다른 경전에서도 금강륜보살, 전법륜보살, 재발심보살로 표현된다. 백팔명찬에서는 금강륜ㆍ마하이취ㆍ대견실ㆍ묘전륜ㆍ금강기라고 하는데 모두 법륜을 굴린다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밀호는 불퇴금강이다. '금강정경'에서 그 출생을 밝힌 문단은 다음과 같다.


“이때에 세존은 다시 평등심을 일으키는 전법륜대보살삼매에서 출생한 법가지의 금강삼마지에 들어가시니 이 이름을 일체여래의 대륜삼매라 한다. 곧 일체여래심이다.
금강륜의 상을 출현시키고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 머문다. 그런 다음에 저 금강륜의 상 가운데로부터 일체세계에 극히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여래상을 내어서 이에 평등심을 일으켜 묘한 법륜을 굴리는 등 일체부처의 신통과 유희로써 일체세계에 널리 시여하고 나서, 저 평등심을 일으켜 법륜을 굴리는 성품은 금강살타삼마지에서 아주 견고한 까닭에 합하여 한 몸이 되어 평등심을 일으켜 법륜을 굴리는 대보살의 몸을 출생한다.”


금강인보살을 출생한 일체여래의 대륜삼매는 큰 법륜을 굴리는 삼매이다. 이 삼매로 인해서 중생들 모두가 법계만다라에 깨달아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다시 '성위경'에는 이 보살의 삼마지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비로자나여래는 내심에서 금강인전법륜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 금강인전법륜삼마지지로부터 금강륜광명을 유출하여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고, 사섭법으로 일체중생을 포섭하며, 무상보리에 머물게 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 하기 위하여 금강인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관자재왕여래의 왼쪽 월륜에 머문다.”


중생을 포용하며 무상보리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업을 위한 설법을 해야 한다. 설법하는 것이 윤을 굴리는 것으로 비유되며, 그 윤은 전륜성왕의 윤처럼 어떠한 상대든지 설파하여 보리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용맹심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보살의 인계를 결하면 오묘한 법륜을 굴릴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전법륜의 지혜가 설법교화의 인이 되며 전법륜지를 내증으로 하는 보살을 금강인보살이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스스로 깨달은 즐거움을 자신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돌려 함께 이익케하고자 법륜의 바퀴를 굴리되, 그 견실하기가 금강과 같다. 그 설법하는 교화의 인은 물러섬이 없는 전륜성왕의 천하평정의 보륜과 같아서 중생심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법신과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만다라세계의 법을 굴리는 보살이다. '금강정경'에 금강륜의 인계를 견고하게 결하기에 모든 만다라를 주재하게 된다고 하며, '제불경계섭진실경'에는 다음과 같이 견고한 금강법륜이 중생교화의 굳센 서원[因]을 상징함을 설한다.


“나는 금강인보살이다. 나는 세간의 아주 귀한 감로이다. 나는 금강의 위대한 가르침의 바퀴이다. 내 몸의 색과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 온갖 중생, 시방세계의 산천과 강, 연못, 초목, 수풀은 다 홍련색이다. 나는 지금 금강법륜을 시방세계에 세 번 굴린다.”


앞에서 금강리보살의 반야의 바른 지혜를 인으로 해서 금강인보살은 금강의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따라서 '약출염송경'에 ‘금강륜의 인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일체여래가 설하신 법륜을 굴린다’고 그 결인의 공덕이 찬탄되며, '이취석'에서는 ‘재발심전법륜보살’이란 서남쪽의 월륜에 있으면서 일체여래의 네 가지 륜을 나타낸다. 그것은 금강계륜, 항삼세륜, 변조복륜, 일체의성취륜이다. 진언행을 닦는 보살은 이와 같은 륜에 들어감으로 해서 사종지인에 의지하여 십육대보살을 성취하고 문득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한다’고 금강인보살의 동체인 재발심전법륜보살의 묘용을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묘용을 상징하기 위해 금강인보살은 삼매야형으로 오른손에 팔폭륜을 가지고 가슴 앞에 대고 있는데, 이것은 팔정도의 지혜를 바탕으로 해서 금강법륜을 시방계에 굴리는 자세를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를 수인으로 나타낼 때에는 양손을 금강권으로 하고 두 집게손가락을 나란히 펼쳐서 가슴 앞에서 돌린다.

 

 

20.jpg
금강인보살
 
김영덕 교수/ 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