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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신문   
입력 :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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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이다. 집 근처 큰길가에 반짝 시장이 선다. 산책로와 맞닿아 있어 새벽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말 그대로 반짝 섰다가 없어지기에 서둘러야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갖가지 채소와 과일 생선 건어물 등 규모는 대수롭잖아 보여도 있을 건 다 있다. 신선하고 값도 싸다. 난전인지라 웬만하면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는 상인들의 마음도 장점이다. 흥정의 열기 속에 찬 바람이 들락거리며 밀고 당기는 시간을 줄이라고 재촉한다. 파는 이와 사는 이, 모두 수월하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즉석 어묵 판매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맛보기로 썰어 주는 걸 먹어본다. 펄펄 끓는 기름에서 방금 튀겨낸 어묵 맛이 고소하다. 한 봉지씩 사서 들고 먹는 사람들 틈에 줄을 섰다. 줄이 줄어들지 않아 목을 빼고 보니 파는 사람이 바뀌었다. 평소엔 부부였는데 오늘은 아빠와 중학생 아들이다.

 

부자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찬바람이 두 사람을 비켜 가는 듯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아이가 간간이 아빠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아빠가 힘들어 보이나 보다. 아이가 대신 튀김 냄비 앞에 서겠다고 하자 어림없다. 위험하니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며 눈도 맞추지 않고 말을 잘라 버린다.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표현이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엷은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아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힐끔 쳐다보더니 어묵 한쪽을 입에 쏙 넣어 준다. 너나 먹으라며 퉁명스럽게 말해도 아이는 여전히 싱글벙글한다. 부자의 사랑놀이가 어묵 맛보다 고소하다. 보기 드문 풍경에 빠진 것인가. 손님들이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묵을 식혀가며 봉지에 담는다. 양을 어찌나 정확하게 재는지 저울 눈금을 몇 번이나 확인한다. 꼼지락거리는 손놀림이 지겹다기보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문량을 조금만 넘어도 덜어내고 조금만 모자라도 맞춰 넣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한다.

 

어린 학생이 효자네. 아침잠이 한창 많을 나인데 이른 시간에 아빠를 돕는 걸 보니 대단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군. 장사를 짭짤 받게 잘하네. 부자 되겠어. 하나 더 줘도 괜찮겠구먼. 덤이 있어야 또 오지.”

뒷줄에 서 있던 할아버지도 거든다.

 

요새 부모들은 너나없이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그게 뭐라꼬. 사람살이부터 먼저 알아야제. 책상머리 앉아 머리만 써서 될 일이 아닌기라. 이기 공부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아니고 뭐꼬. 아부지가 돈을 어떻게 벌어 오는지 현장을 보며 고충도 알고 철이 들어가는 기지. 세상 이치도 배우고 말이야. 그래야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알 수 있지 않겠나. 뭐시든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지 스스로 하면 힘들어도 뿌듯하거든. 험한 세상에 공부만 해서 살아갈 수가 있겠나? 부모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이런 경험을 누가 시켜 주노. 학생처럼 의젓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는 더 고맙제.”

 

고맙습니다. 집에서는 맨날 혼만 나는걸요. 늦잠꾸러기에다 노는 걸 좋아해서요. 아빠를 돕는 건 처음이에요. 엄마가 갑자기 몸살이 나서 대신 나섰어요. 공부나 하라며 혼자 가시겠다는데 억지로 따라붙었어요. 혼자선 바쁘다는 걸 아니까 엄마가 어찌나 걱정하시던지요.시험이 끝나서 여유가 있기도 하고 엄마가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요. 사실

은 모처럼 아이한테 칭찬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일당을 못 받을지도 몰라요. 아빠가 아직 덤에 대해선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오늘은 좀 봐주세요. 익숙해지면 아빠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제 마음은 듬뿍 넣었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또 오세요.”

 

아빠 핑계를 대며 은근히 손님을 챙기는 솜씨가 제법이다. 아이답지 않은 넉살이 밉지가 않다. 아빠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받아 든 어묵 봉지가 묵직하다. 부자의 사랑과 아이가 가득 퍼 담은 마음 덕분인가. 칭찬을 아끼지 않은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도 무게를 더했으리라. 훈훈한 풍경에 추위도 놀란 것인지 매섭던 바람이 잠잠하다.

꼭 보이는 걸 받아야 덤인가.

 

백승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