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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걷다2

밀교신문   
입력 :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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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발자국이 당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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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란 어떤 분인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도 좋습니다.

 

부처님은 평생 길을 걸은 분입니다.”

 

평생을 길을 걸어 다니셨고, 마지막 최후의 자리에 이르러 누우실 때까지 그 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호에 부처님 걷기의 두 가지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수레나 동물의 등에 올라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걷는 본새가 편안하고 당당하며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걸음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이 또한 흥미롭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마지막까지 좇으신 분이어서 그리하셨을 테지요. 과거 생 헤아릴 수 없이 큰 공덕을 쌓은 덕분에 황금신발을 신을 정도의 과보도 얻었지만 부처님은 맨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부처님은 정확하게 언제부터 맨발이었을까요? 분명 카필라국의 왕자였을 때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폭신한 신발을 신으셨을 테지요.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고 보석으로 장식하고 황금실로 꿰맨 신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행하려고 성을 나왔을 때, 칸타카를 타고 달려서 아노마강에 이르러 마부 찬나에게 당신이 지금껏 지니고 있었던 모든 것을 건네주었을 때, 어쩌면 바로 이때 싯다르타 태자는 자신의 황금신발을 벗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발을 벗어 마부 찬나에게 건네준 뒤, 그 날 이후 맨발이었고 반열반하실 때까지 쭉 그렇게 맨발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가리켜서 맨발의 붓다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과 승가의 모든 스님들이 전부 맨발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발에 문제가 있는 제자들에게는 신발을 신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들은 신발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 당신은 맨발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맨발이어서 어디를 가든 당신만의 독특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특징을 보자면, 가장 먼저, 부처님은 평발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흙바닥을 걸을 때면 여느 사람들의 발바닥처럼 울퉁불퉁하거나 고르지 못한 자국이 아닌 아름다운 타원형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으로는, 발바닥에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있어 그 자국을 고스란히 땅 위에 남긴다는 점입니다. 여느 사람들의 손바닥과 발바닥에 지문이 있는 것처럼 부처님도 그러하신데, 특히 부처님 발바닥에는 수레바퀴 모양의 지문이 가득 있다고 경전에서는 말합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발자국만 보아도 부처님께서 방금 지나가셨다는 걸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얽힌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꼬살라국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자리한 나라 꾸루(Kuru)국의 도시 깜마싸담마에 살고 있는 바라문 마간디 이야기입니다. 바라문이란 인도 사회에서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신에게 제사지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계층의 사람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식자층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간디 바라문이 아침 일찍 마을 밖으로 나가 신에게 등불을 바치는 의식을 올린 뒤 돌아오던 길에 저 멀리서 부처님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길을 걸어오는 부처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마간디 바라문은 그 모습에 반해버렸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저 수행자야말로 내 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다.’

 

마간디 바라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온 나라의 청년들이 탐을 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름다운 딸에게 정말 훌륭한 짝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인품이 훌륭한 남자-아버지 마간디 바라문이 찾던 사윗감의 조건은 이뿐이었습니다. 돈이나 지위, 권력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부처님을 보자 자신이 찾던 사윗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마간디는 서둘러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바라문의 아내 역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윗감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딸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렸고, 그리하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 혼사의 주인공인 예쁜 딸까지 세 사람이 그 정체불명의 사윗감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처님은 당신의 발자국을 길 위에 남겨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관련한 불교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님은 모든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께서 특별히 뜻하는 일이 있을 때에, 특별한 장소에만 발자국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 발자국을 보고 부처님이 지나간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은 불연(佛緣)을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날 아침도 그랬습니다. 부처님은 이 마간디 부부가 수행의 길에 들어설 인연을 맺을 때가 되었음을 알고 일부러 그 앞에 나타나셨고, 그리고 홀연히 사라지면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남편인 마간디 바라문은 부처님이 어디론가 가버렸음을 알고 당황했지만 그의 아내는 현명했습니다. 바닥에 찍힌 남다른 발자국을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돌아갑시다. 이 분은 결혼 같은 것은 아예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오. 당신이 직접 그 수행자를 봤다면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것이오. 우리가 그토록 찾던 사윗감이란 말이오.”

 

땅에 남긴 발자국을 보면 알아요. 이런 발자국을 남기는 분은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 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욕심 많은 사람의 발자국은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어 그 모양이 고르지 않고, 화 잘 내는 사람의 발자국은 뒤꿈치 쪽이 유달리 깊이 내리 눌려 있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발을 질질 끌며 걷기에 발자국과 뒤꿈치 자국이 선명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발자국을 보세요. 모든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사람의 발자국입니다. 이런 발자국을 남긴 분은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입니다.”

 

아내의 노래를 듣고서야 남편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부부는 딸의 사윗감을 찾으려는 열망을 접고 그대로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됐을까요? 두 사람은 부처님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해 듣고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성자의 세 번째 단계인 아나함과에 들었습니다. 최고 성자라 할 수 있는 아라한보다 한 단계 낮은 단계로서, 두 사람의 불연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습니다.(이 이야기는 무념·응진 역 법구경 이야기2와 밍군 사야도 지음, 최봉수 역주 대불전경6을 참고했습니다.)

 

성자의 발자국을 따라간 사람도 성자가 되었습니다. 이 일화를 보자면, ‘걷는다는 매일의 행위에 담긴 의미가 아주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서산대사는 이런 노래를 하셨지요.

눈 덮인 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은 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평생을 걸은 부처님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우리는 행자입니다. 우리 역시 길을 걷는 사람이지요. 부처님의 자취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수행하셨기에 그런 발자취를 남겼는지를 궁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궁리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인생을 걸어가야겠지요. 그러지 않고 함부로 살다가는, 내가 남긴 발자국을 본 어느 눈 밝은 이에게 이 사람은 지금 마음에 번뇌가 가득 차 있구나. 불자라면서 어떻게 이런 자취를 남길 수 있지?”라며 들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산다는 것은 걷는다는 것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입니다. 아직은 부처님처럼 완성된 이는 아니지만, 길을 걷는 행자인 당신, 발자국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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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