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믿음은 능히 강을 건넌다

밀교신문   
입력 : 2018-09-14  | 수정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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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능히 강을 건넌다

 

병이 나아야 내가 믿을 마음을 내고 서원이 성취되어야 계속 다닐 것이라는 중생심으로 부처님의 숭고한 법을 의심하여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 꽃나무 모종도 여기저기 자꾸 옮기다 보면 말라 죽지만 옮길 때쯤 되어 모종을 하게 되면 처음엔 시들해지나 좀 시일이 지나가면 다시 새잎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잘 자라면 좋은 꽃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믿음은 능히 강을 건넌다.”(실행론 제3편 제11장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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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진언행자 기문 각자와 묘행장 보살의 추석강도불사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시조부모님 추석명절강도불사가 끝났다. 선주는 시동생의 말끝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휘둘러본 다음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정사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선주로서도 처음 시도하고 겪었던 일이다. 강도불사가 어떻게 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댔던 일이라 안도감은 더 컸다. 시동생이 모든 절차를 잘 이끌어 주어 고맙기 그지없었다.

 

강도불사로 차례를 대신하자고 처음 말을 끄집어냈을 때부터 시동생은 두 팔을 들어 찬성했다. 손뼉을 치면서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거들어주기까지 했다.

 

시동생과는 언제나 생각이 같았다. 무슨 결정을 할 때도 두 번 되풀이해서 말을 주고받을 여지가 없었다. 늘 장단이 잘 맞고, 마음으로 통했다.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던 차였다. 시동생의 배려였다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이었다. 아랫동서와 더욱 각별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계기도 됐다.

 

어제만 해도 선주는 온갖 수행을 감행했다. 말이 수행이지 참고 견뎌야 했던 것이다. 지치고 거북스러운 마음이 들 때마다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넘겼다. 맨 정신으로는 한 순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다. 추석이라고 시집을 찾는 여정부터 멀고 험난했다. 차가 밀릴 수도 있다는 말에 잠을 설쳐가면서 서둘러 새벽출발을 했어도 도착한 시간은 예상대로 매 한가지였다. 새벽에 출발하자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달리는 차가 왜 막혀서 한 바퀴도 제대로 구르지를 않는지, 생각하기조차 싫고 지치게 하는 것 천지였다. 소통이 문제였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원활하지 못한 교통상의 소통 때문에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두 번째 시련은 시집에 도착해서 맞닥뜨렸다. 시동생은 일찍 도착해 있었지만 아랫동서는 공무원이라 하루 일을 마치고 밤늦게나마 도착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시동생은 에둘러 미안한 표현을 하면서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를 했던 듯싶었다. 평소 시동생의 호의적인 태도와 넉살을 봐서 너그럽게 넘길 수 있었다. 대신 남편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남편은 알 듯 모를 듯 표정을 짓고 있다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눈앞에 놓여있는 산더미 같은 일은 도와서 같이할 테니 제발 화만 내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비쳤다. 제수를 마련하면서 세 번째로 수행의 강도를 높여야 했다. 믿음이 없었다면 도저히 그냥은 넘을 수 없는 산과 건널 수 없는 강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도와서 일을 같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남편은 밭일을 나가는 바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로 전락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푸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숨바꼭질놀이를 하느라 선주 혼자 놔두고 모두 숨어버린 듯싶었다. 무를 씻어서 다듬는데 고추나 양파, 마늘을 손질하는 것처럼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났다. 산악정복에 나선 사람을 위해 등짐을 지고 뒤따르는 셰르파가 된 냥 등짝부터 허리, 다리가 차례대로 아프고 손발이 저리기까지 했다. 몇 시간 째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앙다물고 있는 입에서는 단내도 났다. 시큼털털한 맛 같기도 하고, 떨떠름한 맛 같기도 한 것이 고약하게 느껴져 진저리가 쳐졌다.

 

“아버님.”
“으∼응. 날 불렀나?”

 

밭일을 나갔다가 돌아온 시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느닷없이 날아든 며느리의 부름에 움직임까지 멈춘 채 엉거주춤 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말로 대답했다. 순간적으로나마 며느리 혼자 두고 들로, 밭으로 나간 것이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르춤해 있었다.
“네. 아버님. 불렀습니다.”

 

며느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부를 때도 그랬지만 대답을 할 때는 더 직설적이고 단조로웠다. 머뭇거리면서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쏘아붙이는 투였다.
“그래, 왜 그러느냐?”
“나 혼자…….”
“그래. 우리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부터 출발해서 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잠을 좀 더 자라고…….”
“그게 아니라, 차례를…….”
“차례가, 뭐, 왜? 일은 있다가 모두 같이 하기로 했는데…….”
“차례를 뭐 어쩌겠다는 말이 아니고요. 불교식으로 바꿔서 제대로 지내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좋습니다. 형수님. 아버지, 우리도 이번 추석부터는 그렇게 하시죠. 불교식이 아니라 아예 강도불사로 바꿔서 해요. 나는 적극 찬성합니다. 다른 사람은……. 형은 어때?”
“나야 뭐. 매번 일도 그렇고……. 그렇게 하면 당연히 찬성이지, 찬성이라니까.”

 

시동생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렵사리 끄집어 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쌍수를 들고 찬성한다면서 형의 무덤덤한 태도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뭔가 찜찜한 표정을 하고는 말이 없었다. 마당을 빙빙 돌면서 시동생의 닦달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멀찌감치 딴전을 피우고 있는 시어머니의 눈치만 살폈다. 시어머니가 한 마디로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며느리를 타박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듯도 했다.

 

“나도 좋다. 며늘아기 말이 맞다. 명절도 그렇지만 기제사까지 인젠 싹 그렇게 하자.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 장만하기도 진절머리가 난다. 당신도 고마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시요마.”

 

시아버지는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집 모퉁이에 서있던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정자 위로 올라간 시아버지는 먼 하늘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선주는 괜한 말을 끄집어냈나 싶어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하는 것을 느꼈다. 순간 기우뚱하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찰나였다.
“수민이 어미 이리로 와 바라.”

 

시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였다. 선주는 풀린 다리지만 잔뜩 힘을 주고 간신히 바로서서 허적허적 마당을 건너 정자 쪽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까 잔뜩 겁을 집어먹은 탓에 충혈된 눈은 잠을 설쳐서 짓눌린 눈꺼풀을 뚫고 튀어나올 정도로 아렸다. 정자 아래 도착해 간신히 시아버지를 올려다보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이번 명절부터 우리 집 차례나 기제사는 모두 강도불사로 대신한다. 알았는가? 탕, 탕, 탕.”
시아버지는 옆에 끼고 있던 지팡이를 들었다가 세 번 바닥에 내리 꽂으면서 허락한다는 말을 했다. 믿음을 갖고 던진 말이 온 집안사람들에게 통하는 날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