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는 삶을 그리는 예인(藝人)

편집부   
입력 : 2007-07-30  | 수정 : 20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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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홍원심인당 신교도 우연 각자- 평생 진언행자의 삶에 '보람'

우연 각자.

진각종 총인원 육자진언비 쓴 주인공
부부가 함께 정송으로 하루를 시작해
예술가의 길도 함께한 영원한 동반자

진각종 총인원 뜨락에 우뚝 솟은 육자진언비는 지난날 IMF가 이 나라에 닥쳤을 때 전국 스승님과 진언행자들이 국난극복의 서원을 담아 세운 것으로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이 새겨져 있다. 그 육자진언비에 육자진언을 쓴 주인공이 우연 각자다.

신라천년의 숨결이 살아있는 경주 황성동 그의 서실에서 주인공을 만났다. 서실로 들어서자 열반에 드신 고(故) 안인정 종사의 난 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 액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연 각자는 50여 년 홍원심인당(주교 상제 정사, 복전인 전수·경주 황남동)에서 한결같은 신심으로 마음을 밝혀가고 있는 진언행자이며, 40여년 붓을 잡아온 예술인이다.

'고요한 연못'의 의미가 담긴 우연(于淵)이란 아호가 불명이기도 한 우연 각자는 1980년대 초 국내 유일의 미술대전이었던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의 입상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현재 대한민국 서화예술대전, 경상북도 서예대전, 대구시 서예대전, 신라미술대전 등 각종 예술대전의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위덕대학교 평생교육원 서예반 지도를 9년이 넘게 맡아 오고 있다.

오늘날 그의 활발한 예술가로서의 활동에는 그동안 한결 같았던 신심만큼이나 예술인으로 한길을 걸어온 열정과 순수 그리고 아픔 또한 있었다.

"예술은 끝이 없다"는 첫 마디로 이야기를 풀어낸 그는 "사람의 능력에는 보이는 한계, 청각의 한계, 문자와 기호의 한계, 사고나 철학의 한계 등 표출하고자 하는 작품 형태의 제한된 한계가 방대한 정신적 영역에 비해 너무 작다"며 "자기에 여과된 세계가 좁은 것이기에 예술은 끝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평생의 신조인 정송(하루 중 개인이 정한 염송)으로 하루를 여는 그의 삶. 뿌리 깊은 나무가 뻗어내는 가지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그의 뿌리 깊은 신심과 예술가의 열정이 새하얀 화선지 위에 고이고이 표현돼 왔다.

그의 깊은 삶의 향기는 수많은 창작 작품뿐만이 아니었다. "자기 내면세계 표출이 되어야 창작이 되는데, 마음이 고요해야 창작이 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공식적인 이야기가 아닌 맑은 정신의 힘이 느껴졌다. 또 창작을 하기 위해선 본질적 접근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그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며 "고요함 가운데 감정을 여과시켜야 자기 내면의 접근이 이뤄질 수 있으며,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걸러진 조형 그것이 바로 창작의 작품"이라고 이야기 한다.

자기수양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 그에게 자신의 작품에 진(眞)에 가까운 창작이 녹아나 있지 않느냐고 묻자 "평안하게 웃을 수도, 남과 즐길 수도 없는 수많은 자기와의 싸움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한 그런 모습이 예술가의 본보기요. 그 삶 자체에서 자연스레 나와지는 것이 바로 창작이며 예술이며 진(眞)에 가까운 것"이라며 "진(眞)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뿐, 삶은 줄기차게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다"고 단언했다. '고요한 연못'의 뜻을 담은 '우연'이란 아호와 불명을 왜 그가 지녔는지 알듯 했다.

젊은시절 위장병의 악화로 생사를 넘나들었다는 그는 일찍 생과 사에 대해 고뇌를 깊이 했었다고 한다. 벼랑 끝에 서면 죽음도 두렵지 않은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그. "부처님이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면 살겠다는 생각으로 심인당에서 불공했었다"고 한다. 일심으로 귀명하며 불공한 가운데 병이 호전되고 안인정 종사를 모시며 홍원심인당에서 4년간 처무로 생활을 하기도 한 그는 처무생활 중에도 사택 가득 그림을 그려 걸어 두었다. 교화자의 삶이 아닌 예술인으로 수행을 승화해가는 삶을 서서히 선택했던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고 난 뒤부터였다. "돈 버는 것보다 무얼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자꾸 밀려들어 고민을 한 끝에 대가를 만나면 눈을 좀 열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그림지도를 해줄 선생을 찾아 다녔다"는 그는 지난날 궁핍했던 삶을 소중한 가족들에게 안겨준 것이 미안해서인지 눈시울을 붉혔다. 그 시절 참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 짐작되었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예술가의 길을 걸으면서 단란한 가정도 꾸리며 살아갈 수 있는 현재의 삶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그는 "하고자 했던 그 길, 한길 그대로 갈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과 부모님의 은혜가 지중하죠. 또한 한평생 살아오며 큰 태양이신 종조님을 친견하고, 깨우쳐 주시고 옳은 길로 갈 수 있게 해주신 안인정 스승님을 인연한 것은 제 삶에 더없는 행운"이라고 했다.

그의 곁에는 은혜로운 스승과도 같은 도반이 있었다. 늘 우연 각자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아내 혜일정 보살. 소소히 우연 각자를 도와주다 자연스레 붓을 잡게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년간 서예를 해온 그 역시 초대작가로 활동 중인 예술인이다. "저와 아내는 지금 한 길을 가는 작가"라고 소개한 우연 각자의 말에는 아내에 대한 깊은 고마움과 애정심이 담겨있다.

진각종 총인원 육자진언비에 새길 육자진언을 쓰기에 앞서 종조님을 친견한 예술인이기에 종조님의 화상을 그려달라는 제의가 있기도 했단다. "종조님을 친견했기 때문에 더욱 화상으로 종조님을 표현하기에는 회화의 한계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며 종조님 화상을 그리지 못한 숨은 일화도 전해준다.

사군자를 주로 담아내는 그는 "예술인은 200년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소년기, 청년기 지나 공부시작하면 이삼십대가 훌쩍 되고 깊은 공부는 적어도 50년을 해야 하는데, 어느덧 80살. 공부한 걸 세상에 알리고 후학들을 지도하려면 적어도 인간 수명이 200년은 되어야 가치가 있지 않는가"라고 늘 생각하며 살아간단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우연 각자야 말로 하루를 1년처럼 사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 자신의 예술활동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에서 일반인까지 후학들에게 배움을 전해주고 있는 우연 각자는 창작을 하기위해서는 3년 정도의 기본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3년 정도 갈고 닦아야 붓 잡는 맛을 알게 된다는 것. 그런 다음 창작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는 그는 "붓이 가만 두질 않아요. 늘 제 관리를 하게끔 그렇게 만들어 주는 거 같아요"라고 한다.

계속 공부하는 예술가 우연 각자. 진(眞)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노력할 뿐, 그 진(眞)에 이른 예술세계를 떠올리는 순간마다 가슴이 벅차다는 순수함을 지닌 예술가다.

곳곳이 불교유산인 경주에서 나고 자라 부처님을 인연하고 마음을 밝혀갈 수 있었던 은혜가 있었기에 예술의 혼을 불태워갈 수 있는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는 그는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린 살아갑니다. 변해질 수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라 여깁니다"며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는 자기 책임이 됩니다"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요함 속에서 정진해가는 수행자와 같은 자세로 진(眞)에 이른 예술인이 되고자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늘 고요함 속에서 본질을 찾아가고자 했던 우연 각자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질문을 내려놓자 "재력이 있어 나눠 줄 수 있는 사람, 지혜 있어 그 지혜를 나눠 줄 수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한다. 당연히 '그림 그리는 예술가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던 예상이 빗나간 순간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더 많은 것을 나눠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네요." 그의 이 말 한마디는 진언행자 50년, 예술가 40년 세월의 진한 어우러짐이지 않을까 했다.

혹 만약 다시 태어나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다면 좀 더 어린 나이에 한계를 벗어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 역시 일찍 한계를 벗어나야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었다.

매화나무를 그 자리에서 그려 보이는 우연 각자의 모습에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한 길을 가는 예술가의 혼이 그의 붓끝에서 느껴졌다. 안인정 종사께서 사군자 그리시던 의미 깊은 자리에서 소담한 이야기꽃을 피워 낸 그날. 맑은 그림을 그려내는 예술가를, 큰 마음을 지닌 진언행자를 동시에 만난 가슴 벅찬 또 하나의 의미를 담았다.    

경주= 백근영 기자 mu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