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깊고 물 맑은 비처(秘處)

편집부   
입력 : 2007-07-16  | 수정 : 200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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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사지․사자빈신사지


대일(大日)의 법(法)수레가 달빛을 타고 내려와 법륜을 굴린 비처(秘處). 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했다는 이 나라 5대 악산 중의 하나인 월악산 자락에 법신(法身)을 기대고 만월광명(滿月光明)의 법륜을 굴렸던 월광사. 지금에 와서 형체는커녕 몸체에서 떨어진 돌비늘같이 크고작은 석재 몇 가지 정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무질서하게 방치되고 있는 월광사 터는 옛부터 병화를 피해서 숨어 살만한 곳이라고 적어두었던 ‘비결잡록’의 기록처럼 바위산의 험한 산세가 오히려 국가를 위한 비법(秘法)을 행하고, 사자상승하기에는 적소였는지 모를 일이다. 산이 깊으면 물 또한 맑듯이 굴곡이 심한 골짜기마다 흐르는 옥류는 월광폭포 같은 명소를 만들고도 남음이 있어 청송, 녹나무 등 천혜의 희귀 자연자원 또한 길러냈다.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 비처를 찾아가는 여정은 허허롭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고, 표석조차도 보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런 곳이 근동에 있는지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으니…. 낭패를 절감하며 우여곡적 끝에, 여긴 듯 하고 찾아낸 월광사지는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 잊혀진 역사를 내팽개쳐버린 느낌마저 들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9번지. 지난해부터 등산로를 폐쇄하고, 낙엽송 재배지로 이용하면서 온갖 낙엽 속에 파묻힌 채 간신히 목줄기만 빼내 숨이라도 쉬고 있는 듯한 석재들의 쉰 울부짖음 소리마저 들리는 듯해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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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사지는 1987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05자의 범자가 새겨진 대불정능엄신주비와 다라니석당이 발견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대불정능엄신주비에 새겨진 능엄주는 다라니로서 모든 마군과 외도를 항복 받고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판독됐다. 이는 황해도 해주에 있는 대불정다라니석당 외에 범자로 된 비문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국보급 문화재에 다름아니다. 그 때문에 대불정능엄신주비는 지금 인근의 덕주사로 옮겨 대웅보전 옆에 비각을 만들어 세워서 보존하고 있다.

월광사지가 누구에 의해, 언제 창건됐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 있었던 보물 제360호 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에 ‘신라 경문왕이 866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원랑대통의 선덕을 듣고 이 절의 주지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때 이미 창건됐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불교의 훈풍이 이웃한 문경새재를 넘어 월악산 자락 비처에까지 불어 넘나들었음이 입증되는 대목이다.

이름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운, 달빛 그림자의 자태를 닮았을 월광사의 옛 터를 찾은 허허로움은 같은 동네에 있는 사자빈신사지 석탑을 참배하고나서야 어느 정도 가시어졌다. 길옆 밭 가장자리에 덩그라니, 외롭게 서 있기는 하지만 사자빈신사지 석탑은 그래도 세상을 향해 온 몸을 드러낸채 때때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결을 벗하고, 마주보이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와 소통이라도 할 수 있으리니 하는 생각에 답답했던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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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를 갖고, 석탑 앞에 향로며 정화수도 정성스럽게 놓여 있는 사자빈신사지 석탑은 월광사지를 지나 덕주사가 있는 덕주골과 망폭대, 덕주산성을 옆으로 비껴나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002번지에 있는 보물 제94호(1963년 1월 21일 지정) 사자빈신사지 석탑은 사자 네 마리가 불법을 수호하는 사주경계를 하듯, 상층 기단부 네 모서리에 올라 앉아 위층의 탑을 떠받치며, 넓은 공간 속에는 두건을 쓴채 금강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특이한 구조를 지녔다. 탑은 본래 9층이었으나 지금은 4층만 남아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구조를 지닌 탑으로는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 있을 정도다.

2개 도(道)와 4개 군(郡)에 걸쳐 단양팔경, 충주호, 문경새재 등 명소를 두루 거느리고 있는 걸출한 중원의 명산 월악산과 월광폭포, 월악영봉, 자연대, 학소대, 망폭대, 수경대, 와룡대, 팔랑소 등 맑디맑은 송계계곡의 8경이 장관을 이룬 곳에 자리를 잡고 사자후를 토했던 두 사찰. 흘러가 버린 세월을 탓할 것인가. 숱한 사연 속에서 이제 아련한 자취로만 남았건만 무상대도(無常大道)의 변함없은 큰 진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점 흔들림없이 바로 그곳에서 언제나 샘솟고 있다. 인연이 닿으면 새싹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다시 자라나게 마련이듯 대일의 무상법문은 대기방편법으로 꾸준히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자빈신사지 석탑에 공양 올려진 향연(香煙)이 느릿느릿 정화수에 얼비치며 말없이 퍼져나간다. 이 세상 정화를 위해, 이 진토 불국만다라를 위해….

정유제 기자 refine51@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