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어느 젊은이의 돌연사

혜심인   
입력 : 2001-07-28  | 수정 : 200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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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려 보지만 이미 늦은 사랑, 자리가 비어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자리에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주위에서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토해지는 추억은 아쉬울 만큼 모자랍니다. 그 동안 당신이 그렇게 갈구했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내달라고 매달리며 여러 분들에게 부탁했건만…. 이제서야 노트에 옮겨 적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는 사람/ 어디에서 온 것이며/ 이생에서 죽는 사람/ 어느 곳에 가는 거뇨/ 나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고/ 죽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멸함이라/ 뜬구름의 그 자체가/ 본래 실상 없는 고로/ 나고 죽고 가고 옴도/ 또한 이와 같음이라." 크고 작은 아름다운 빛이 스러져 갈 때 비로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을 만났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나의 사랑, 당신의 떠남이 더욱 큰 축복임을. 이제는 의심치 않으려 합니다. 종조님 곁에서 고통 없이 행복하기를…. 당신이 아직은 조금 멀리,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8주가 흘렀습니다. 정신없이 보낸 나날이었습니다. 처음 한 주는 오로지 당신을 종조님 전으로 장애 없이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일주일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당신의 빈자리를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면서 2∼3주를 힘들게 보내고, 군데군데 갖추어야 할 서류준비에 많은 시간과 씨름했으며, 4∼5주는 당신이 살아온 삶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들이 정말 힘들게 했습니다. 너무 검소하고 성실하며 근면했던 삶에 나는 멈칫멈칫할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이제야 밝히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배움의 시간으로 가졌습니다. 실천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하며 다시 한 번 고개 숙여집니다. 당신이 가고 난 지금 8주, 많은 것을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실감합니다. 현실의 각박함과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생각, 베푸는 마음과 표현하는 한계를 말입니다. 살벌한 현실을 극복하고 내 앉은 이 자리를 평온 그 자체로 만들어야 할 텐데…. 노력해볼게요. 그런데 당신은 뭘 그리 두려워 하셨는지요. 저 세상에 들어설 때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하고 걱정을 하셨지요. 무얼 그리 걱정 하셨나요. 당신은 한 마디로 훌륭한 삶을 살다 가셨고, 많은 교훈도 남겨 주셨습니다. 군데군데 흩어지고, 깨지는 곳마다 화합의 끈을 단단히 묶어 주셨고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길지 않은 54년의 삶으로 하여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삶을 살다 가셨죠. 각박한 현대생활 속에 흔치 않는 베푸는 삶과 어진 마음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저는 말이 앞서 걱정을 했었지만 당신은 그것을 꼭 실행하시는 분이셨어요.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갈수록 당신이 살다간 삶이 위대해 보입니다. 잘못된 의료체제 때문에, 수술이 촉박해 시간을 다투는 암 환자들이 미처 의사의 손길을 기다리지 못하고 묵묵히 생을 달리하게 된 수많은 아까운 영령들의 간절한 함성에 힘들다고 하셨지요. 당신이 그 일을 해결하고 떳떳하게 "내가 이 일을 해결하고 왔다"고 하고 싶어했었지요. 병원장을 그렇게 찾고, 담당교수를 찾았지만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용서해주시구려. 당신이 가시기 이틀 전 침대에서 제게 동전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호주머니에서 100원 짜리 동전 한 개를 얼른 내밀었습니다. 제가 무엇에 쓰려는지 묻기도 전에 당신은 "이게 아니다"며 단번에 되돌려 주셨죠. 그리고 저에게 정사님이 쓰시는 동전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른 정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얼마 후 동전(강도표)을 가지고 정사님이 오셨고 하얀 봉투에선 동전소리가 났습니다. 그 동전을 당신의 손에 쥐어 주자 표정이 좋아 보였습니다. 저도 처음 보는 일이었고 당신 역시 본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그것을 찾았는지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놓칠세라, 빼앗길세라 힘없는 손에 그렇게 동전을 야무지게 쥐고는 이불 속에 손을 감추었습니다. 한 번 보자고 하니 완강하게 거절을 했고 조금 후 혹시 침대에 흘리지나 않았나 해서 이불을 걷어 보려고 하니 놀랄 정도로 동전을 꽉 움켜쥐었죠. 그래서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흘렸나 해서 본다고 말해주면서 긴장하지 않게 했었습니다. 당신은 그 동전(강도표)은 종조님 뵈러 갈 때 쓸 노자이며 종조님께 보여드릴 표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종조님 뵙고 금방 다시 돌아오겠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내내 하셨죠. 하루 24시간을 꼬박 눈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 할 때 저는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시간이 촉박한데 할 말은 많고, 어찌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일은 하루 뒤를 모르는 우리 중생이 가엽기만 합니다. 당신이 한 사람씩 꿰뚫어보는 눈동자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초점을 맞추어 침대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을 꿰뚫어 보고는 내게 눈을 맞추고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당신만 나를 끝까지 따라 가는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너무 잠을 못자 지쳐 있었지만 저는 힘들어하는 당신이 저쪽과 이야기하거나 또 따지며 대화를 할 때마다 눈이 번쩍 띄었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옴마니반메훔'의 염송에 위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줘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주위(응급실) 환경도 개의치 않은 채 큰 소리로 염송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좀 더 편안하게 '옴마니반메훔' 녹음 소리를 계속 들려주었더라면 힘든 시간이 훨씬 줄었을 텐데 하는 마음부터 말입니다. 애닯은 당신의 모습을, 더 손을 쓰지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당신은 용서할 수 있을는지…. 뭐라고 하면 충분한 표현이 될지 그 단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인정을 못하시었습니까. 아직까지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눈을 감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생의 많은,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남은 가족들의 염려 때문에…. 모든 것을 잊으소서. 모든 것을 인정하소서. 그 동안 당신이 그렇게 갈구했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내달라고 매달리며 여러 분들에게 부탁을 했건만, 저도 이제서야 노트에 옮겨 적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이 지금에야 마음이 놓였는지, 6월 6일(불공 45일째 되는 날 밤)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의 죽음을 알려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고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배포되는 밀교신문 에라도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미흡한 저의 성의로 이 글을 올리려 합니다. 정사님의 동전(강도표) 20개를 받고 적다고 하셔서 그 뒷날 20개를 더 쥐어드렸죠. 그래도 당신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종조님 심부름 가신다며 종조님께 잠시 갔다 오겠다는 말씀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었죠. 올 때까지 차비로 부족하다기에 침대에 떨어뜨릴세라 움켜쥔 당신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저려 옵니다. 거듭 부탁하고 싶은 말은 이생에 다시 오시려 하지 말고 세세생생(불교에서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하는 때) 고와 낙이 없는 불보살의 세계에서 부디 왕생극락 하시옵소서. 그리고 저희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당신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 나의 힘닿는 데까지 잘 키워 볼께요. 지켜봐 주시옵소서. 당신이 너무 보고싶습니다. 1년에 단 한번씩이라도 당신의 건강한 모습을 만져볼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용기를 내어 살아보겠습니다. 아니 그것이 안되면 꿈속에서라도 건강한 당신의 모습을 한번 보여준다면…. 당신이 나에게 보여준 그 모습엔 내가 너무 힘들어요. 날이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견디기 힘들어져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뼈 속 깊이 사무치는 그 무엇에 나는 너무 힘듭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는다는 것,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한낱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을 눈물로 알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왜 아픈지를, 왜 같은 시간이 그리도 긴지를 이제는 묻지 않겠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며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습니다. 차가운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려 보지만 이미 늦은 사랑, 자리가 비어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자리에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이제야 그 추억을 꺼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주위에서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토해지는 추억은 아쉬울 만큼 모자랍니다. 하지만 이제 편히 보내렵니다. 좋은 세상에서 편히 사시길, 이 생에서의 사랑, 미움, 애착, 집착 모두 끊어 버리고 이제는 다시 인간세상으로 윤회하지 마시길 거듭 바라며 이 글을 당신에게 올립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 했던 수많은 나날들과 우리의 인연이 먼 훗날 우리를 다시 만나게 묶어줄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으로 당신을 보내며…. 옴마니반메훔. 창원심인당 신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