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82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8-17  | 수정 : 200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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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의 밀교적 상징과 시륜경) 1. 석탑과 불상의 밀교적 의미 운주사는 불상과 석탑, 그리고 그간 발굴된 유물들을 통해서 고려말 이후에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불상의 안치와 석탑의 상징문양은 그 구성과 표현방식으로 볼 때 티베트계 불교의 장엄양식과 유사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기와조각에 새겨져 있는 '옴파라(om pa ra)'라는 명문은 육자진언과 더불어 고려시대 말부터 유행했던 진언으로 이미 고려시대 말에 융성했던 강화도의 선원사지에서도 다량 출토되었다. 창건 이후 이 사찰은 1495년 중건불사가 이루어졌고, 임진왜란(1592)때 크게 훼손된 본당과 석탑들이 1661년 대대적인 중수불사를 통해서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후 사찰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20세기 중엽에는 213존의 석불과 30기의 석탑이 남아 있었고, 오늘날에는 70존의 석불과 12기의 석탑만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들은 이 얼마 남지 않은 문화유산 가운데에서 몇 가지 밀교적 색채를 띤 표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로 변형된 형태의 부모합체불(父母合體佛)과 탑에 나타난 시륜경(時輪經) 교리의 상징적 표현을 들 수 있다. 먼저 운주사의 제존은 입상과 좌상과 와상의 세 종류로 표현되어 있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모두가 부모존(父母尊)의 구성을 하고 있다. 즉 모든 존상은 두 존이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티베트나 몽골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부모존의 형태이다. 이것은 후기 밀교경전의 교리를 표상화 시킨 부모합체불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용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존상들은 입상이나 와상, 그리고 좌상을 막론하고 서로 마주본 합체불의 형태가 아니라 존상을 측면에 나란히 두거나 등을 맞댄 형태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아무래도 티베트의 후기밀교에 나타난 부모합체불 즉 얍윰(Yab yum)의 표현방식이 우리나라의 정서에 적합한 형태로 전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석탑은 탑의 형식으로 볼 때 원형계의 탑과 방형계의 탑으로 분류되고, 탑신(塔身)에는 문양들이 음각되거나 양각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X자형 상징문양이다. 방형의 탑신에는 X자형이 한 개만 표현되어 있는 경우와 두 개가 한 쌍을 이루어 나란히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운주사 불상의 부모존 구성과 X자형의 상징문양을 통해서 존형의 안치와 석탑의 건립에서 밀교경전 시륜경의 사상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X자형 상징문양은 티베트에서 남추방덴(十相自在)의 상징문양과 병용하여 쓰는 문양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서 남추방덴은 부적의 일종으로 활용하고, X자형 문양은 운주사의 석탑장엄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2. 시륜경과 석탑의 상징문양 시륜경은 밀교의 경전들 중에서 비밀집회경, 호금강경과 더불어 후기 밀교의 교리와 행법을 대표하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시륜경은 인도에서 결집된 경전이면서도 중국의 음양오행 사상이 수용되고, 천문역학적인 내용들이 강화된 경전이다. 그야말로 시륜경은 밀교경전의 역사 속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국의 사상이 인도에 역수입되어 형성된 경전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시륜신구의(時輪身口意) 만다라는 티베트계 만다라이면서도 매우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만다라 외곽륜의 내측에는 사각의 구획들로 이루어진 중층구조(重層構造)가 적용되었다. 이 만다라는 시륜존의 신구의밀의 세계를 방형으로 이루어진 구획과 거기에 채색한 색상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티베트 만다라들은 중층의 방형 구도보다는 원형 구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만다라의 표현방식에서 원형은 우주를 상징하며, 사각형은 왕궁과 성곽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시륜만다라와 같이 사각의 구도가 강화된 형식은 왕궁과 성곽, 즉 권위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만다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만다라가 존재하지 않지만 고려시대 후반부터 조선시대에 걸처서 석탑의 건립과 장엄에서 방형과 원형, 그리고 상징문양들이 활용되었다. 그 중에서 운주사는 시륜경의 상징적 표현방식을 십분 활용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즉 티베트계 부모합체불적인 요소를 띤 한 쌍씩의 존상들을 안치하였고, 석탑의 장엄에서 X자형 상징문양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근래에 접어들면서 제기되고 있는 내용이지만 도량배치에서 천문역학적인 이론을 적용하였다. 이것은 모두 시륜경의 교리나 표현방식과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X자형 상징이다. 이 문양은 티베트 불교에서 남추방덴과 더불어 시륜의 상징문양중 하나이다. 시륜경에서 X자형의 문양은 음양의 원리를 상징하며, 인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티베트에서 X자형 시륜 상징문양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대부분 중앙티베트나 서티베트, 그리고 북티베트 등에서는 남추방덴의 문양과 장엄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으나 X자형 시륜상징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들은 운남성 동남티베트의 동죽림사 본당 입구의 좌측 기둥에서 X자형 시륜상징 문양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문양을 운주사의 석탑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히 양자간의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티베트 밀교의 시륜상징문양과 운주사 석탑장엄의 X자형 상징문양간에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