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6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3-30  | 수정 : 200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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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과 삼밀진언) 1. 통도사와 옹화궁의 삼밀진언 우리들은 조선과 청나라간의 불교문화적 연관관계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조선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웃나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청나라는 원나라 이후 티베트의 불교문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통로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청나라가 티베트나 몽골지역의 불교문화를 수용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중국전토의 문화적 통일성을 기하고, 티베트와 몽골에 대해서는 우대정책을 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청나라의 불교문화정책은 중국대륙은 물론 서로 반목관계에 있었던 몽골지역까지 새로운 티베트의 불교문화가 전파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현재에도 몽골지역에 산재해 있는 사찰들은 대부분 청나라의 영향권 하에서 건립된 티베트계 사원들이다. 그것은 중국본토에 전해지고 있는 청나라 때 건축된 사찰들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순수한 티베트양식도 아니면서 어딘지 모르게 청나라 양식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는 건축양식에서는 차이를 보이면서도 단청의 진언장엄은 청나라 때 유통되던 것들이 대부분 수용되었다. 거기서 청나라에 유포된 티베트의 불교문화는 자연스럽게 조선에 전해지게 되었고, 한반도에 전파된 티베트의 불교문화는 그 이전에 전승되고 있는 불교문화와 융합하여 우리나라 특유의 진언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18세기 중반에 티베트의 불교사원으로 융성했던 옹화궁의 밀종전 및 여타 전각에 장엄된 진언들과 통도사 대광명전에 단청된 진언 중 삼밀진언은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우리나라에서 단청으로 장엄된 진언가운데 삼밀진언이 표현되고, 그것이 존격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사찰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통도사 대광명전의 삼밀진언은 티베트불교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법신 비로자나불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즉 1744년부터 밀교의 사원으로 활용된 옹화궁에는 다양한 진언들이 장엄되어 있지만 특히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 삼밀진언이다. 그러나 여기서 삼밀진언은 불격과의 관련성보다는 육자진언이나 아미타불 종자들과 더불어 장엄용으로 함께 쓰이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그 보다 좀 늦은 1759년에 도화된 통도사 대광명전의 삼신불도와 진언장엄들은 진언과 존격간에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2. 삼밀진언과 비로자나불 삼밀은 지극히 밀교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실제로 화엄에서 불의 법체를 삼밀로 표현하고 있으며, 밀교에서는 이것을 보다 구체화시켜서 법체로서 뿐만이 아니라 신구의를 통해서 활동하는 실체로써 표상화 시켰다. 그 결과 삼밀은 불격의 활동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것은 삼밀진언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삼밀진언은 옴, 아하, 훔의 세 글자를 통해서 불의 의밀과 구밀, 그리고 신밀을 표현한 것이다. 즉 옴은 의밀, 아하는 구밀, 훔은 신밀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종자자이다. 즉 옴은 생성과 유지와 소멸의 원리가 담겨 있는 의밀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아하는 가장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생명의 소리 아자에 열반점이 붙은 것을 구밀의 표현으로 보았다. 나아가서 훔은 힘과 활동을 상징하는 음으로써 지혜의 활동력을 나타내는 신밀의 표현으로 인식하였다. 이와 같이 삼밀의 종자는 불의 신구의 삼밀을 함축해서 문자를 통해서 표현한 종자진언이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에서는 불의 신구의를 문자로 표현할 때, 이 세 글자를 가지고 나타냈고, 현재에도 티베트에서는 문자로 된 장엄 중에서 삼밀진언은 육자진언 및 아미타불 종자와 더불어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진언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티베트에서 이 삼밀종자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의(意)라고 하는 추상개념에서부터 순차적으로 구(口)라고 하는 음성개념, 그리고 신(身)이라고 하는 활동개념을 옴, 아하, 훔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통도사의 대광명전에는 삼밀진언 뿐만이 아니라 오륜종자, 정법계진언, 준제진언, 육자진언 등의 다양한 진언이 장엄되어 있는 가운데 정법계진언과 삼밀진언과 오륜종자는 보신인 아미타불과 법신인 비로자나불과 화신인 석가모니불의 삼신과 함께 도화되어 있다. 즉 통도사 대광명전의 존격과 진언의 배당형식을 보면 세 종류의 진언종자의 아래쪽에 각각 삼존을 벽화로 표현하였고, 그들을 각각 진언에 배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본래 그들 존격들이 가지고 있는 진언과는 무관하게 정법계진언과 오륜종자, 삼밀진언과 비로자나불, 오륜종자와 석가모니불이라고 하는 매우 예외적인 진언의 배대형식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들 진언가운데 삼밀진언과 법신, 그리고 법신과 비로자나불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삼밀진언과 비로자나불의 배대형식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나 보신과 화신에 정법계진언과 오륜종자를 배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그것을 긍정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와 같은 진언과 존격을 배대하여 그 심층적 의미를 살리려 한데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하여튼 우리들은 티베트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는 삼밀진언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비로자나불의 존격과 습합한 것은 조선시대 불교가 청나라를 통해서 티베트와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단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