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4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3-14  | 수정 : 200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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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한반도의 비로자나불) 1. 비로자나불 신앙의 유전 대승불교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비로자나불은 교리적 측면이나 신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비로자나불은 일반불교로부터 밀교사원에 이르기까지 신앙적 대상으로써 다양한 전각에 모셔져 있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신앙적 대상이 되고 있는 비로자나불에는 지역과 시대와 역사에 따라서 그 존형의 모습이 다르다. 한국과 티베트와 중국과 몽골과 일본에서 전개된 비로자나불의 존형은 인계나 머리의 모습이나 몸의 장엄과 색깔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외형적인 모습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교리적인 측면에서 근간으로 하는 경전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신앙적인 측면에서 그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각 지역의 불교는 인도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지만 인도에서도 대승불교의 흥기 이후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수많은 경전들이 결집되었고, 그들 경전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동북아시아 각 지역의 불교는 인도로부터 전파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인도의 어느 시대에 융성하던 경전에 의거한 것이며, 언제 그 지역에 정착하였느냐에 따라서 각 지역불교의 특성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각 지역에서 전개된 불교나 밀교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비로자나불에 대한 신앙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 시점에서 티베트나 일본지역을 제외한 여타의 지역에서는 밀교적 전통이 온전히 계승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이 과거의 한국밀교나 중국밀교에 대해서 접근하려해도 어쩔 수 없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역사서나 한역된 경전들을 근거로 하여 그 시대의 밀교를 사변적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와 더불어 물증적 전거가 될 수 있는 문화유산들을 근간으로 하여 과거에 살아 숨쉬던 밀교의 모습을 유추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우리들이 한반도의 밀교를 연구하는데 한계성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밀교는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경전에 의거한 행법적 전통의 전승이 강조된다. 특히 경전과 의궤의 가르침을 철저히 체질화시키기 위한 행법체계가 사자상승의 과정을 거처서 법맥상승하는 것이 밀교이다. 어느 면에서 이런 측면들이 밀교에 대해서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 밀교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던, 그렇지 못하던 간에 밀교가 전파된 지역에서 그 신앙적 중심을 이루는 것이 다름 아닌 비로자나불, 대일여래, 대비로자나, 마하비로자나로 불리는 존격이다. 2. 한반도와 티베트의 비로자나불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존형은 대부분의 경우, 지권인에 나발을 하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지권인을 나타내지 않은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고정된 관념을 떠나서 좀더 시야를 넓혀서 포괄적 관점에서 티베트나 중국, 일본, 몽골지역에서 전개된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보면 보다 많은 유형의 존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특히 비로자나불의 인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주변 지역의 비로자나불과 한반도에 현존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에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티베트나 몽골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인계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전법륜인을 하고 있다. 서티베트의 타보사나 알치사, 중앙티베트의 쿰붐사, 그리고 몽골 엘텐죠사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은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생소한 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티베트 밀교가 무상유가계 경전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당나라 때 유물인 법문사의 사리함에 부조된 비로자나불의 모습은 지권인에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며, 일본의 경우도 금강계 비로자나불의 경우, 지권인에 보관을 쓰고 있다. 이런 모습도 나발형에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의 형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게 하면서도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에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 이외에 외박보주인을 한 비로자나불, 법계정인을 한 태장만다라 계통의 비로자나불과 같은 유형도 전승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로자불의 유형은 보관을 쓰고 전법륜인을 나타낸 티베트계와 지권인을 나타낸 중국계의 두 가지 유형으로 정리되며, 그 외에도 다수의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초회의 금강정경을 근간으로 한 중국계와 무상유가계 경전, 즉 구희야탄트라, 헤바즈라탄트라, 카라차크라탄트라 등을 근간으로 한 티베트계 사이의 경전해석상 상이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가장 일반적인 것이 나발형에 지권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이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존격의 명칭은 단정지을 수 없지만 전법륜의 형상이나 외박보주인의 형상도 발견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 지권인과 전법륜인, 그리고 외박보주인을 한 형상이 등장하게 된 것은 지역적 특성과 시대상황에 따라서 중국계나 티베트계의 존형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알치사 벽화에 도화된 전법륜인에 나발형을 한 비로자나불의 존형이다. 이것은 티베트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형상이지만 이와 같은 모습의 비로자나불 존형은 고려시대 조성된 속리산 법주사 마애불의 형상을 비롯하여 충북 제천 덕주사의 마애불, 그리고 송광사의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비로자나불의 존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