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3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2-14  | 수정 : 200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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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법계오불의 세계) '불교의 흐름' 한 공간에 표현 근본불교에서 대승까지 형상으로 후기대승과 밀교세계는 진언으로 오불종자·비밀실지·정법계진언 하나의 전각에 구현한 것도 이채 1. 천은사의 전각장엄 천은사(泉隱寺)는 전남 구례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828년에 창건되어 도선국사에 의해서 중수된 이후, 고려시대 충렬왕(1275∼1308) 때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이라 불릴 정도로 융성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 임진왜란 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되는 전란의 참화를 겪어야 했다. 그 후 1610년 중창불사가 이루어지고, 1679년에는 단유선사가 대대적으로 중수불사를 하고 나서 감은사라는 사찰명을 천은사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715에는 팔상전에 영산회상도, 1749년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하고 봉안하였다. 그 후 1774년 혜암선사가 그 전해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중수하면서 대대적으로 중창불사를 봉행하였다. 이와 같이 천은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매우 번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말의 일이다. 그러나 근간에 사찰의 보수작업이 거듭 이루어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은 부분들도 발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은사에 관련된 자료들은 국보나 문화재로 지정된 불화와 불상에 대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느 사찰의 경우에서나 그러하듯이 이 사찰의 경우도 진언표현방식에 대한 관심은 전무한 상태이다. 현재 이 사찰에는 극락보전 내부의 진언장엄을 비롯하여 응진당 외부의 진언장엄, 그리고 응진전 천장의 진언장엄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이들 장엄들은 각각의 전각에 안치된 존상들과 어울어져서 형상불과 문자불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서 여기에 나타난 문자불의 표현방식인 진언장엄은 실재로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널리 활용되었던 것들이며, 조선시대 중수자들의 신행적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좋은 흔적이기도 하다. 2. 응진전의 법계오불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존으로 양옆에 문수와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그 배면에는 아라한이 함께 안치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천은사의 응진전은 다른 여타 사찰의 전각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언장엄이 발견되고 있다. 즉 응진전 내부의 존상과 진언을 통한 표현방식에는 불교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석존을 시원으로 하는 근본불교로부터 소승의 아라한, 대승의 보살, 그리고 대승불교의 수행방식 중 하나이자 종교적 이념의 표출인 진언종자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이 전각의 진언장엄은 밀교가 동북아시아권에 전파되면서 전해진 진언 중에서 오불의 종자진언과 비밀실지진언, 그리고 정법계진언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세 종류의 진언만을 가지고 하나의 전각에 표현한 예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응진전 장엄방식의 경우, 거기에 봉안된 존상과 진언장엄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형상불과 문자불이라고 하는 이원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석존과 아라한과 보살이라고 하는 형상으로 표현된 근본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에 이어서 진언이라는 문자를 통해서 표현된 법체 즉 문자불의 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언의 표현방식도 가운데에 정법계진언인 옴람을 나타내고, 그 둘레에 오불종자진언과 비밀실지진언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용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중심의 정법계의 세계를 비밀실지진언과 오불종자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구체화시켜 나아가는 형식이다. 결과적으로 근본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형상을 통해서 표현하고, 오불을 근간으로 한 후기대승 즉 밀교의 세계를 문자를 통한 진언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여기서 오불종자는 오불진언의 일부를 종자진언으로 활용한 것이다. 예들 들면 아축불의 진언인 '옴 악쇼브야 훔 스바하'에서 '훔'자를 진언종자로 독립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진언종자는 단순히 문자로써가 아니라 보다 미세한 진리의 정보를 함장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훔자는 하(ha), 아(a), 우(u), 마(ma)의 네 가지 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거기서 근본이 되는 하자에는 모든 진리의 실상인 인연조작, 우와 마는 인연 속에서 생멸 하는 모든 존재들의 현상, 거기에서도 우는 생, 마는 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아는 생멸의 세계를 떠난 본불생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서는 오불종자 중에서 아축불의 종자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오불종자의 각각에는 한음 한음에 수많은 정보가 함장된 씨앗과도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나라 때의 중요한 진언장엄에는 오불종자를 불보살의 장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한 예를 들면 법문사의 봉진신보살상의 좌대배면의 오불종자 진언장엄이다. 다음으로 비밀실지진언인 암밤람함캄은 대일경의 오자엄신관에 등장하는 종자진언으로 암자는 금강부로서 동방의 아축불, 밤자는 연화부로써 서방의 무량수불, 람자는 보부로써 남방의 보생불, 함자는 갈마부로써 북방의 불공성취불, 캄자는 불부로써 대일여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오불종자와 비밀실지진언의 경우, 서로 문자는 다를지라도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오불과 오부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정법계진언인 옴람은 오불과 오부의 세계를 총합한 법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천은사 응진전은 그 규모나 사찰 내 전각의 위치 상으로 볼 때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