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개사 72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12-29  | 수정 : 200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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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총지집의 표현원리) 1. 발심과 수행과 보리 범서총지집의 내용과 표현방식들은 조선시대에 전개된 호부(護符)진언의 전개방식을 결정하고, 건축물의 진언장엄에 활용되었으며, 진언집을 비롯한 진언의궤류들의 성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서도 대일경 백자생품과 관련이 있는 진언표현들의 도식은 불교가 전파된 아시아 각지역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티베트나 중국에 이미 한반도 보다 일찍이 산스크리트본 대일경이 전해지고, 그것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주석서들이 찬술되었다. 그러나 경전이나 주석의 내용에 입각하여 백자생품과 관련된 진언을 도식화한 형태의 진언종자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반도에 대일경이 전래된 이후, 그에 대한 교리와 진언에 능통한 인물이 실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대일경 백자생품의 내용을 근간으로 그것을 응용하여 실지성취를 위한 진언종자도를 도화하였다는 것은 매우 독창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경전의 내용에 입각하여 그 진언종자도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식화된 진언의 표현방식에서 일체불을 의미하는 암자는 발심과 수행과 열반과 보리를 의미하는 네 가지 형태의 백자종자진언들과 결합하고, 이것은 다시 태장십이부를 의미하는 열 두자의 진언종자와 습합하여 일종의 태장백열세자만다라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암(Am')자는 지혜를 갖춘 방편의 광명을 의미하며, 무지(無智)의 암흑을 제거하는 대일여래의 심주(心呪)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암(Am')자는 발심을 의미하는 아(A)자, 수행을 의미하는 아(A')자, 열반을 의미하는 아하(Ah')자와 더불어 보리를 의미한다. 여기에 대해서 티베트에서는 백자생품에서 암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아가는 일백자의 심주를 발심, 수행, 보리, 열반의 네 계통으로 분류하여 이들을 각각 계통에 따라 스물다섯자씩 배당하고 있다. 그리고 최외원에 포치되어 있는 열두자의 종자자에 대해서 선무외삼장은 자륜(字輪)의 중심에 암자를 안치하고, 그 주위에 이(i)자를 비롯하여 열두자를 둔다고 설한다. 이것은 범서총지집에 나타나 있는 백자생법계자륜진언의 도식과 일치하는 형태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진언의 표현방식에서 암자로 나타낸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내측에서부터 외측으로 전개되어 나아가는 형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먼저 중심의 중존으로부터 첫 번째 원에는 발심을 의미하는 종자자 스물다섯자가 나타나 있고, 두 번째 원에는 수행을 의미하는 장음을 가진 종자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세 번째 원에는 보리를 의미하는 아누스바라가 붙은 종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 원에는 열반을 의미하는 비사르가가 붙은 스물다섯개의 종자자가 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태장십이부의 부주(部主)들을 의미하는 열두자의 종자자가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매우 독특한 양상의 진언종자만다라라고 할 수 있다. 2. 삼부와 심주진언의 전개 도식화한 백자생품의 진언가운데에 삼부(三部)진언을 부가하여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의 일이다. 여기서 삼부라고 하면 불부, 연화부, 금강부를 가리킨다. 이것은 대일경의 교리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삼부를 구성하는 것 가운데 불부는 대일여래를 비롯한 오불의 세계를 나타내고, 연화부는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한 관음부족들의 대비를 나타내며, 금강부는 금강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금강부족들의 지혜를 가리킨다. 이것은 대일경의 교리를 사상적 기반으로 한 밀교적 불보살의 활동상을 분류한 것이다. 대일경에서는 원리적인 의미에서 법계에 대정(大定)과 대지(大智)와 대비(大悲)의 세가지 덕성이 함장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불보살의 활동으로 표현했을 때 불부, 금강부, 연화부의 삼부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흔히 "현은 삼부 어둡고, 밀은 달하다 (顯暗三部密能達)"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현교가 설하는 바 원리로써의 세계는 적정한 진여이며, 그것은 무색무형의 적멸체(寂滅體)로써 거기에에 내재된 공덕작용을 언설로써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해서 밀교는 원리로써의 세계에도 삼밀활동이 있고, 무량무변의 공덕이 함장되어 있다고 하며, 그 내적인 덕성은 불부, 연화부, 금강부의 삼부제존의 활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법계의 실상에 곧 지혜의 활동이 있고, 지혜로 부터 당연히 일어나야 할 자비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태장만다라세계의 기본원리이며, 이것을 진언종자로 표현한 것이 바로 대일경의 자륜품이다. 여기서는 아(A), 사(Sa), 바(Va)라고 하는 세가지 진언종자를 가지고 여래의 실상을 삼부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아를 통해서 불부, 사를 통해서 연화부, 바를 통해서 금강부를 나타냈다. 여기에 대해서 선무외삼장은 중앙의 중존과 앞뒤의 제존은 여래부의 존격이고, 그 오른쪽에 여래의 대비와 온갖 선을 갖춘 존격들이 연화부족이며, 그 왼쪽에 대혜력(大慧力)을 갖춘 존격들은 세가지의 장애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금강부족라고 설한다. 나아가서 이것을 종자로 나타냈을 때 아(A)자는 일체제법과 법신을 의미하고, 사(Sa)자는 일체제법이 어느것에도 물들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바(Va)자는 일체법이 언설을 떠나 있다는 의미로 금강을 의미한다고 설한다. 범서총지집에서는 이와 같은 대일경 자륜품의 내용과 백자생품의 내용을 응용하여 대정과 대비와 대지를 함장한 삼부의 활동력은 발심과 수행과 열반의 행법으로 전개되며, 이것은 십이부를 나타내는 열두자의 종자를 통해서 제존의 활동력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