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쾌락을 권한 젊은 군주 -빔비사라왕

밀교신문   
입력 : 2022-08-30  | 수정 :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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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두 번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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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나이로서 매우 어여쁘고 단정하며 꽃빛을 즐길 때였으나 궁을 버리고 출가했다”라고 <불본행집경>은 갓 출가한 29세 고따마 싯닷타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29년 동안 왕위 계승자로서 지내오면서 익혔던 위의는 그를 위엄 넘치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남성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어리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젊지만 안정된 탄탄한 29살 남자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뭇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리라. ‘꽃빛을 즐길 때’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카필라 성을 나와 온몸을 장식하고 있던 보석들을 다 떼버리고 낡고 허름한 옷을 입었어도 그가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 역시 황홀한 청춘의 이 남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빔비사라왕은 고따마 싯닷타보다 대략 5살 정도 아래라고 하는데,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품었던 소망이 있었다.

 

첫째는 젊어서 왕위에 오르는 일이요, 둘째는 자신의 국토에서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일이요, 셋째는 자신이 직접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 올리는 일이요, 넷째는 부처님은 오직 자신을 위해 법을 설해주시는 일이요, 다섯째는 부처님이 베푼 가르침을 비방하지도 헐뜯지도 않으며 진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체득하며 받들어 실천수행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바람을 이룬 후, 궁전 안 높은 누각에 오른 빔비사라왕 눈에 고따마 싯닷타가 들어온 것이다. 때마침 수행자 고따마는 사람들 집을 차례로 다니며 음식을 빌던 중이었는데 발우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 연잎 한 장을 따서 그 위에 음식을 받아들고 천천히 동문 밖으로 나가서 공양을 하려던 참이었다.

 

젊은 왕은 신하 둘을 불러 범상치 않은 수행자 뒤를 밟도록 하였고, 신하의 전언을 듣고 급히 달려온 빔비사라왕은 흥분한 나머지 그만 건네서는 안 될 말을 건네고 말았다.

 

“당신은 지금 한창 젊은 나이로 아름답기가 비길 데 없고 그 몸이 반듯하여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기에 다시 없이 좋은 시절입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 이 텅 빈 숲에 홀로 앉아 있는 것입니까? 붉은 전단향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몸에 낡은 가사가 웬 말이며, 세상을 향해 호령하고 지시를 내리며 산해진미를 고루 갖춘 음식을 집어서 드셔야 할 두 손으로 구걸한 밥을 연잎에 받아서 드시다니 당치 않습니다.”

 

왕의 말은 이어진다. 그는 진심으로 이렇게 수행자 고따마에게 물었다.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은 궁중에서 온갖 즐거움을 누려야 할 때이며, 왕위를 물려받고 자식을 낳아 그 왕좌를 물려줘야 마땅합니다. 젊어서는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다 누리고, 중년에는 재물을 구하여 가정을 이끌고, 그러다 노쇠해진 뒤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하려고 나서야 합니다. 젊고 건강한 그 나이에 욕망을 누리지 않고 재물을 구하지 않으면 그것이야 말로 당신의 인생에 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젊어서 왕이 되기를 첫 번째 소망으로 품은 빔비사라왕인 만큼 자신보다 더 위엄 있고 단정한 고따마 싯닷타를 보면서 느꼈을 안타까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수행자 고따마는 어떠했을까. 그는 이 모든 일의 끝을 내다보았다. 젊음도, 건강한 몸도, 아름다운 자태도, 재산도, 쾌락도…. 24세 젊디젊은 왕이 한걸음에 달려와 왕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권했지만 고따마는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고 담담하게 자신이 왕궁을 떠나 수행자가 된 까닭을 설명한다. <불본행집경>에 담긴 길고긴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싯닷타 태자가 수행자가 된 이유는 두 가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첫째는 생로병사요, 둘째는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오욕락)에 시달리는 일이다. 수행자 고따마는 빔비사라왕에게 말하였다.

 

“세상의 즐거움(오욕락)이란 아무리 누려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빼앗기게 마련이요, 빼앗기면 통렬하게 원망하고 원한을 품으며 괴로워 하니 즐겁게 살겠노라고 누린 환락은 이렇게 늘 불안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만을 가져옵니다. 쾌락을 누리느라 자신과 세상을 위해 선업은 짓지 않고 악업만 거듭 지으니 그 끝이 어찌 되리라는 것은 왕께서도 알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세상의 쾌락을 누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어서 왕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게 한 두려움을 말한다. 

 

“대왕이여, 나는 늙음이 두렵습니다. 늙음에 쫓길 때면 젊음의 건장함을 잃고 몸이 굽어지고 뒤틀리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바짝 마른 나무처럼 되는데 그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겠습니까? 

나는 병드는 것이 두렵습니다. 건강할 때에는 모릅니다. 하지만 곱디고운 꽃빛이 한 순간에 초췌하게 시들 듯 하루아침에 병고에 시달리고 시름시름 신음합니다. 누워도 편치 않고 앉아도 편치 않습니다. 이런 병고를 누가 나 대신 겪어주겠습니까?

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사천하를 거느리고 금으로 만든 전차로 세상을 정복하며 날카로운 칼과 창으로 건장한 군사를 호령하는 권력을 지녔다 해도 죽음은 막지 못하고 죽음과 맞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마가다국의 제왕 빔비사라는 수행자 고따마의 대답에 허리를 굽히며 사죄하였다. 그리고 하루 빨리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를 축원하며 이렇게 청했다.

 

“당신께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룰 때 나는 곁에서 공경 공양하겠으며 당신의 몸을 보고 당신의 법다운 성문제자가 되겠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시거든 가장 먼저 내게 가르침을 주소서.”

 

빔비사라왕은 같은 왕족 출신인 수행자 고따마에게 젊음이 주는 특권을 맘껏 누리다가 늙어서 수행을 하라고 조언했지만 덧없음은 기약 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 평생을 권세와 쾌락을 좇으며 보내도 좋겠지만 세상의 행복은 언제나 누군가의 불행을 동반하게 마련이고, 누리는 행복이 클수록 누군가의 시샘과 질투를 사게 마련이다. 

 

자신의 국토에서 수행자 고따마가 부처님이 되었고, 부처님은 약속을 지켜 왕을 찾아와 가르침을 들려주어서 자신의 소망이 다 이뤄졌다고 감격했지만 세속의 권력과 부는 덧없기 짝이 없었으니, 그는 자신의 국토보다 더 강성한 앙가국을 정복하여 제국을 확장했지만 끝내 아들인 아자타삿투 왕자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싯닷타 태자는 세속의 왕좌가 이토록 허망하리란 것을 알았기에 그것을 버리고 깨달음이란 왕좌를 택한 것 아닐까. 성자를 알아보고 찬탄하며 법문을 청한 빔비사라왕의 안목은 뛰어나지만 그 마지막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미령/불교강사/경전이야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