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지상법문

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

밀교신문   
입력 : 2022-08-02 
+ -


thumb-20220127140643_e93b0c0f6c0158edaa005af10886abc5_trk0_220x.jpg

 

올해 3월 새해 49불공을 마치고 조카 결혼식을 보러 정사님과 오랜만에 같이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게 되었다. 기차를 타기 전 2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를 다부지게 한쪽 팔로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잡고 서 있는 엄마가 여유롭게 보였다. 기차를 타고 한 십여 분이 지난 후 뒤쪽 칸에서 아이를 야단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 잘해주니까 막 기어올라? 엄마가 우스워? 집에 가서 좀 보자. 혼날 줄 알아!” 큰애를 야단치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아까 2살짜리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좀 지나치다 싶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아이가 타면 생기는 흔한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좀 울다가 말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야단의 수위는 듣기 부끄러울 정도로 점점 강해지고, 오는 내내 대략 10분 간격으로 계속 애를 데리고 나가서 때리는 소리가 안에까지 다 들릴 정도로 강하게 때렸다. 아이는 계속 큰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서 한두 명의 연배가 있으신 어르신들이 아가, 왜 울어? 울지마.”라고 몇 마디 하시고 아기엄마 힘들지요.”라며 걱정 반 짜증 반 한두 마디씩 하셨다.

 

종착역인 용산역이 되어서 미리 기차 내리는 문 앞에 서 있는 곳에서도 아이는 계속 울었다. 처음에는 나도 작은 소리로 아유, 씩씩하게 생겼네.”라고 칭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변 분위기는 말은 안하지만 엄마에게 짜증스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큰소리로 괜찮아, 울어! 아이니까 우는 거지.”라며 말하니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기차에서 내리는 엄마에게 애쓰셨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 때문에 너무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을 하였다.

 

나는 그 엄마와 아이의 모습에서 17여 년 전 저녁불사 시간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낮에는 어린이집에서 카리스마 있는 원감 선생님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날 저녁불사 시간에는 영락없는 초보엄마의 모습이었다. 불사 시간에 뛰고 떠드는 아들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엉덩이를 때리는 것으로 마무리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이집에서 멋진 엄마 선생님을 심인당에서 보니 반갑고 좋아서 그 앞에서 관심을 받으려고 그렇게 설쳤을 아이의 마음을 조금만 알았다면 그렇게까까지 아이를 훈육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엄마도 공공질서를 지키고 우아한 모습으로 아이를 다루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초보 엄마는 주변의 눈을 의식하느라 자기 아이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갑갑해 하는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답답함을 해소시켜주고 우는 모습을 가만히 기다려 줬더라면 아이는 스스로 안정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성가시고 화가 났다. 즉 구겨진 본인의 체면 세우는게 우선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종조님은 상대방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에 담긴 본질은 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인식하고 그 마음으로 남의 허물을 볼 때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남의 잘못은 나와 상관없다고 그 사람을 나쁘게 보기가 싶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그와 비슷한 잘못을 했거나 앞으로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의 허물을 내 허물로 볼 수 있는 인격이 된다면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한 다툼은 없어지고 화합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승수지 전수/항수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