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지상법문

입맛이 바뀌는 불공이 참 불공입니다

밀교신문   
입력 : 2022-07-06 
+ -


thumb-20211228100004_c6b2e5a3ebe4df343fe292e953e2a259_ig92_220x.jpg

 

한 보살님께서 자식의 결혼을 서원하는 불공을 시작하였습니다. 100일 불공 마치면 이어서 또 100일 불공 또 100일 불공 이렇게 불공을 해나가던 중에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걱정 한 번도 끼치지 않았던 그 자식이 접촉사고를 두 번이나 내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꽤 큰 돈을 사기당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왜 결혼서원 불공을 하는데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번뇌스럽기도 했지만, 이제껏 성실하고 착하게 자라온 자식에 대한 애착을 끊으라는 법문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진을 굽히지 않고 이어 나갔습니다. 다섯 번째 100일 불공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고 실토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고 합니다. 지인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고 얼마 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힘들었을 때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나가는 계기가 되어 결혼까지 생각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았을 텐데 불공하면서 왜 하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부처님의 큰 그림이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다섯 번째 100일 불공을 회향하고는 사기 사건도 해결되어 돈도 돌려받았습니다. 애착을 끊는 서원으로, 진리에 수순하는 마음으로 정진하다 보니 일련의 사건들이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원망심을 극복하여 흔들리지 않는 신심으로 정진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왜 넘어지고 전도 될까요? 시련, 난관, 환경 때문이 아니라 중심이 흔들리고 뜻이 흐릿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성취를 바라는 중생심과 업장소멸의 과정을 통해 나를 밝혀가는 부처님의 뜻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이고 진리에 수순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수순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조바심 때문에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혼탁한 상태의 흙탕물 기도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맑은 것과 오염된 것이 혼재되어 구분되지 못하는 그런 흙탕물 같은 기도 말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거듭하면 할수록 수정된 기도를 하게 되어 맑은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오래 할 필요가 있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야 됩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서원하지만, 정작 꼭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무지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지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잘 알고 있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은 잘 알지 못합니다.

 

돈 버는 법은 잘 알지만 돈 잘 쓰는 법은 잘 알지 못합니다.

 

꼭 써야 할 곳에는 아끼고 정작 쓰지 말아야 할 곳에는 흥청망청 낭비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잘 아는데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잘 모릅니다.

 

바른 기도는 입맛이 바뀌는 기도입니다. 미성숙했던 중학생 때 좋아하던 걸 지금도 좋아하시나요? 식성이 바뀌듯 인생의 입맛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입맛이 바뀌지 않는 기도는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불공하다 보면 부처님께서 다 정리해주시고 입맛을 바꿔주십니다. 진리에 대한 무지로 중생들은 괴로움이 일어나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끊임없는 정진입니다. 하루하루 이어가는 정진력으로 더욱더 맑아지고 영글어지기를 서원해봅니다.

 

선법지 전수/보정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