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3년째 재택근무 중입니다.

밀교신문   
입력 :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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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시작했다. 첫 상담에서 코치님이 자꾸 다른 클럽을 이용하라고 말씀하시길래, ‘다른 데로 가라는 건가?’ 라고 이해할 정도로 골프 지식이 전무했다. 학습하고 평가받는 공부와 달리 몸으로 익히는 배움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운동뿐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새로 배운 게 많다. 어느 때보다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요즘, 이 모든 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근무환경의 변화다.

 

분당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북새통을 이루는 대중교통에 몸을 싣던 때가 까마득하다. 비가 오는 날, 축축한 발걸음으로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철 안의 꿉꿉한 냄새가 흐릿하다. 묵직한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메고 헐레벌떡 몸을 꾸겨 넣으며 출퇴근하던 날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출퇴근으로 도로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은 방구석에서 사부작사부작하는 재미로 채워진다. 회사--회사였던 단조로운 일상의 시작과 끝에 방치해두었던 취미생활을 알록달록 이어 붙였다.

 

예전에는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허물 벗듯 옷을 던져 놓고 씻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졌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날 기운은 없지만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에 눈이 시뻘게지도록 휴대폰을 보며 바깥세상과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유튜버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이젠, 퇴근 후에도 남아있는 에너지가 있고, 업무 외적으로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설렌다. 회사원 아무개가 아니라 오롯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다.

 

하루 세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게 하루의 만족감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단 한 가지, 이제 식단 때문에 다이어트가 힘들다는 핑계는 영원히 댈 수 없을 뿐.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같이 살아도 제대로 얼굴 보기 어려웠던 가족들도, 이젠 하루 한 끼는 카톡 메시지가 아닌 실시간 음성으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팀원 간의 단절이 가족 간의 소통으로 채워지고, 회사 소속감이 옅어지는 만큼 가족 간의 화목함이 짙어진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고 돌아올 때면 정적이 가득한 공간에 은은한 간접 등이 날 반겼다. 혹여나 가족들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진 야식을 야금야금 꺼내 먹기 일쑤였다. 집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는 먹기 좋게 차려진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함께 참여하며 요리에도 내 취향을 얹어 볼 기회를 얻는다. 유난히 소란스러운 주방이 소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재료 손질하며 들리는 칼질 소리, 물로 씻는 소리, 팔팔 끓는 소리에 후각과 촉각이 되살아난다. 오늘 식탁엔 새로운 종류의 김치가 잔뜩 놓여 있다. 제일 좋아하는 아삭아삭한 오이소박이가 내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놓여있다. 냉장고에 아직 먹지 못한 반찬이 많은데, 엄마는 또 새로운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사랑을 쌓아두고 산다

 

양유진/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