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78-정진하다

밀교신문   
입력 :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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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달아난 여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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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여우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사자와 호랑이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남긴 고깃덩이를 얻어먹으며 살아갔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여우는 그만 고깃덩이를 얻어먹을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깊은 밤, 마을로 들어갔고 몰래 민가로 숨어들어가서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지요. 여우는 그만 지쳐서 으슥한 곳을 찾아 잠시 쉬려다 잠들고 말았습니다. 

 

어느 사이 밤은 지났고, 여우는 인기척에 놀라 화들짝 깨어났습니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이어서 들키지 않고 마을을 몰래 빠져나가기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자칫 잡혀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그냥 머물러 있자니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역시나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습니다. 여우는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옴쭉달싹도 하지 못하고 말았지요.

 

‘아, 모르겠다. 그냥 죽은 척 땅에 쓰러져 있자.’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여우를 발견하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 여우를 보고 죽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아, 잘 됐다. 난 여우 귀가 갖고 싶었어,”

 

그러더니 귀를 잘라 갔습니다. 여우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여우는 생각했지요.

 

‘그래, 내 몸통을 잘라간 건 아니니까….’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여우 꼬리가 필요했었다면서 꼬리를 잘라 갔습니다. 여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역시 참았습니다.

 

‘그래, 내 몸뚱이에서 꼬리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까….’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이빨은 어때? 내가 그전부터 여우 이빨을 가지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러면서 이빨을 뽑아 가져갔습니다. 이쯤 되자 여우는 아픈 건 그만두고라도 더럭 겁이 났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네. 이러다 누군가 내 머리까지 통째로 잘라가겠다고 나서는 건 아닐까. 죽은 척 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진짜로 죽게 생겼네.’

 

여우는 죽은 척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이미 몸뚱이 이곳저곳이 잘려나갔지만 그대로 참고 있을 수는 없었지요. 여우는 죽을힘을 다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도망쳤습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가장 소중한 목숨은 건졌지요.(<불설패경초>)

 

“이러다 내가 죽을 것 같아.”

 

어떤 힘든 상태가 지속되면 처음에는 그냥저냥 버팁니다. 아직은 견딜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일을 가지고 힘든 내색을 보이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합니다. 슬슬 몸이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소화가 안 되고 자꾸 감기몸살에 시달리고 두통이 오고…. 이 정도 단계가 되면 심각함을 인지하고 어떻게든 해결하거나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결국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뒤에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입니다. 미련스레 버티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도망친 여우처럼 가장 소중한 목숨은 챙겼으니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경이 있습니다. <잡아함경>(채찍그림자경)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네 종류 말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마부의 의도를 파악해서 빠르게 달려 나가는 말입니다. 마부의 사소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속도를 늦추거나 높이는 일, 왼쪽으로 가거나 오른쪽으로 가는 일을 척척 해내는 것이지요. 

 

두 번째 말은 채찍이 털끝을 스치기만 해도 이내 마부의 의도를 알아서 속도를 늦추거나 높이고, 왼쪽이나 혹은 오른쪽으로 달리는 말입니다. 

 

세 번째 말은 위의 두 마리 말과 같이 민첩하지는 않지만 채찍이 살갗에 와 닿으면 그때 놀라서 곧 마부의 의중을 알아 달려 나가는 말입니다.

 

네 번째 말은 채찍이 아프게 살갗에 닿아도 달릴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마부가 송곳처럼 뾰족한 도구로 옆구리를 찌르고 뼈를 다치게 한 뒤에야 놀라서 달려 나가는 말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 중에도 네 종류 말처럼 네 부류가 있다고 하지요.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 지역의 사람들이 병들어 괴로워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자 그 일이 자신에게도 닥칠 아주 시급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부지런히 마음공부에 나서는 사람이 첫 번째 부류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먼 지역 사람들의 생로병사 소식을 들어서는 꿈쩍도 하지 않다가 자기 눈으로 저들이 괴로워하다가 끝내 목숨을 마치는 모습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에게도 이런 일들이 닥치리라 인지하고 마음공부에 나서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먼 지역 사람들의 생로병사 소식을 듣거나 보고서는 남의 일처럼 여기다가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생로병사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자신에게도 벌어질 일이라 여겨서 마음공부에 나서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먼 지역이나 가까운 친지의 생로병사에 전혀 깨닫는 바가 없다가 자신의 몸에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닥쳐야 그때 비로소 자신에게 이 심각한 현상들이 벌어졌음을 실감하고 늦게나마 마음공부에 나서는 사람입니다. 

 

두 이야기를 보자면 여우는 분명 네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귀가 잘리고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히고 나서야 ‘어이쿠, 큰일 났다. 이러다 죽겠구나’라며 몸을 일으켜 달아났으니까 말이지요. 그렇게 될 때까지 죽은 척 눈감은 여우는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설마 내가 죽겠어? 하는 그 ‘설마’였지요.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닙니다. 

 

여우는 가장 소중한 목숨이라도 건졌는데 우리는 어떤가요.

 

천천히 나이가 들어가도 의식하지 못하고 ‘아직은, 아직은…’이라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는 사람, 병이 들었을 때에도 ‘아직은, 아직은…’이라며 강 건너 불을 보듯 자신의 중요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이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구태의연한 나를 과감하게 버리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내 생애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면서도 미뤄왔던 일에 용감하게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모든 것은 덧없다. 그러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이루어라.”

 

부처님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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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컬럼니스트

 

이번 회차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연재를 마치게 됐습니다. 그간 제 글을 읽고 격려해주신 불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