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하루는 없어요. 자신에게 너그러워 지길 바라요.”

밀교신문   
입력 :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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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심인당 신교도 수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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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수석 입학과 전교 1등, 서울대를 꿈꾸던 모범생에게 갑자기 희귀성 자가면역 질환인 ‘루푸스 신염’이 찾아왔다. 병은 진단한 의사는 공부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목표를 바꾸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것만 같아서 스테로이드를 꾸역꾸역 먹어가며 버텨냈고, 그렇게 ‘서울대생’이 되었다. 하지만 꿈꾸던 대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피해가 갈까 마음이 쓰였고, 아프다는 것을 숨기는 바람에 게으르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양쪽 신장의 기능이 멈추고 투석을 시작한 후에야 ‘아프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담담히 그 투병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실상심인당(주교 선운 정사) 신교도 수경화(희우·필명) 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최근 그 투병기가 담긴 두 번째 책 ‘당연한 하루는 없다’를 펴냈다. 본지는 서면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먼저 ‘당연한 하루는 없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전에 첫 번째 책, ‘내 하루는 네 시간’도 쓰는 걸로 아는데요. 꾸준하게 글을 쓰시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글을 쓰면 저를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가 있거든요. 그동안 제가 아픈 저를 오랜 시간 많이 부정해 왔어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은,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몸은 계속 나아가는데 마음은 진단을 받는 18살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몸을 따라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좋았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앞으로 글을 계속 쓰실 생각이신가요? 

“제가 첫 책을 냈을 때, 저와 비슷하게 젊고 아프신 분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고 또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기회들도 많이 생겼어요. 저는 이 병이 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고, 저한테 낙인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울어주시고, 또 저를 병(아픈 사람)으로 보기보다 저로 바라봐주는 시선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먼저 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으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앞으로도 꾸준히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진각종과의 인연을 좀 여쭤볼게요. 평소에도 신행생활을 하고 계신가요?

“네. 지금 아직도 면역억제제들 같은 약들을 많이 먹고 있어서 심인당을 매주 나가지는 못하지만, 사람이 많이 없는 시간에 심인당을 찾아 올해 새해대서원불공도 원만히 회향했어요. 어린 시절, 제가 기억나는 시점부터는 계속 심인당에 다녔어요. 학생회 활동도 꽤나 열심히 했었는데 아프기 시작하면서 비야활동 같은 것은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서울대에 학생회 친구들이 견학을 오던지 하면, 영상편지도 보내고 기념품을 선물하기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던 것 같아요.” 

 

- ‘수경화’라는 불명은 언제 받으셨나요?

“딱 20살이 되자마자 수계불사에 동참했어요. 받들 수, 공경할 경, 화할 화로 알고 있는데 제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날이 서고, 뾰족해졌어요. 그리고 모든 걸 잘 해내려고 많이 애쓰면서 저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수경화라는 불명을 받고 하심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 신행활동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도움이 되었을까요?

“네. 물론이에요. 입원할 때마다 정사, 전수님이 찾아와주셔서 손잡고 위로를 해주신 것이 많은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추석을 앞둔 어느 날, 27살 밖에 안됐는데 몸의 일부가 기능을 다해서 계속 아픈 채로 살아야 하고, 투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때, 3자성 불공을 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고, 나에게 아픔이 찾아온 이유를 찾아보려고 노력도 했어요. 그래서 마음도 많이 다스리고 그 당시에는 제가 많이 잘났다고 생각했고,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이 중요했었는데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하심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또 그때 각자 불공을 하고 계신 각자님, 보살님도 계셨는데 곁에서 제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 보다 그저 저 자체를 많이 아껴주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스스로도 아픈 나를 좀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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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투석기간을 지나, 동생을 통해 신장이식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동생이 자신의 미래는 계산하지 않고 저의 삶을 지켜준 거라고 생각해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처음에서 그래서 되게 많이 미안해하기도 했고, 많이 울기도 했는데 생각할수록 제가 제 몸을 잘 지키고, 동생이나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갚는 거라고 깨달았어요. 그동안 저는 남들에게는 너그러웠지만, 저에게는 유독 더 무자비하게 대해왔던 것 같아요. 이제 제 몸을 동생의 몸이라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대하려고요. 동생이 ‘누나가 받는다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내가 주는 거라고 생각하라’며 자기가 선택한 거니까 미안해하지 말라는 말에 많이 위로받았어요. 원래도 다른 남매들에 비해서는 다정하게 지내는 편이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더 많이 애틋해진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는 흔하지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실까요?

“이식 후에 예전에 비해 밝게 생활하고 있고, 책이 나오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제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그런 모습을 가족들이 뿌듯해하고 있어서 저도 좋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저 자신의 이야기도 좋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확장해서 타인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써보고 싶어요. 지금은 먼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하기는 어려워서 현재 제가 즐겁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해요.”

 

- 끝으로 책을 읽으시는 독자들과 신교도 여러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 제목인 ‘당연한 하루는 없다’가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모든 것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 우리는 그걸 되게 잘 잊고 지내는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성취가 제 인생에 매우 중요한 목표였는데,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아프게 됐을 때 제가 성취한 것들이 저를 붙들어주지는 않더라고요. 행복했던 순간이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들이 ‘그래도 살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해줬어요. 매일 매일이 체크리스트를 지워야 하는 삶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일상과 목표가 없으면 안 되겠지만, 일상과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사이사이에 자신에게 기쁨을 더 많이 선물하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에게 좀 너그러워지고, 마음이 환한 한 해가 되시기를 서원하겠습니다.”   


김보배 기자 84beb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