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아름다움 대신 어른다움

밀교신문   
입력 : 2021-12-28 
+ -


thumb-20210928093605_e303357035ad58ff612ae75ff08a9d91_tdi9_220x.jpg

 

물건이 담긴 봉지보다 봉지를 건네는 손에 주름이 더 많은 걸 알게 될 때, 집을 나가면서 스마트폰보다 휴대용 장바구니를 먼저 챙길 때, 내 앞에 끼어들려는 운전자를 보고 찡그리는 대신 길을 터줄 때, 할 말이 잠시 끊겨도 침묵이 주는 편안함을 알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기다려줄 때, 주변을 살피는 여유가 생기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던 비좁은 세계에 틈이 생기고 더 넓은 세계에서 비추는 빛이 들어오면서 어릴 때 이해하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서서히 풀린다. 가령 엄마가 맛있게 먹던 나물의 맛을 이젠 내가 찾아 나서게 되거나, 봄을 알리는 꽃봉오리를 보고 설레는 모습을 따라 하고 있거나, 시장에서 사는 채소의 싱싱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어른 형세를 하며 으쓱거리다가도, 막상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 내 모습은 어릴 때 내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울까?’ 막내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어느새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업무 성과를 인정받는 것만큼 신입사원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 역시 내 역할의 일부가 되었다. 여전히 가족 앞에선 어리광을 피우고, 오랜 친구를 만나면 허물없이 웃지만, 관계 유지에는 많은 힘이 들어가고 끝나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있다. 철부지와 어른스러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어른스러운 모습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어른다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와중, 햇살처럼 따뜻하게 나지막한 위로를 건네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유튜브에서 논나 할머니로 더 유명한 장명숙 선생님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이렇게 늙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닮고 싶은 어른을 만난 건 참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늙음이 낡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며, 고집스러움이 아닌 고유함을 갖춘 어른의 모습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신경 쓰며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잘 골라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덕분에 막연했던 어른의 모습에 윤곽이 잡힌다.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추면서 주변을 이해하고 안아주는 어른. 성공보다 성장을 권유하며 인생 내공으로 탄탄한 멋을 갖춘 어른.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 것.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가장 비범한 진리다.

 

양유진/네이버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