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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는 삶

밀교신문   
입력 :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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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토론을 가르친다. 그런 이유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여한다며 조언을 구한다며 연구실로 찾아 왔다. 그 학생들과 몇 차례 진득한 대화를 나눈 그 시간에 행복했다

 

사실 나는 가르친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 속에는 어떤 수직적 관계에 따른 강제와 강요, 일방적인 전달 같은 묘한 뉘앙스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말이다. 이 점이 항상 어려운 지점이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학생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뿐이다. 내가 무엇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권위적으로 가르치려드는 인간의 습성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른다는 태도로부터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해 하며 결국 상대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이것이 곧 겸손한 삶을 살게 하는 인식의 출발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려고 한다. 그래야 그들을 알기 위해 질문하고 경청하게 된다. 이게 곧 토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 되뇌여야 하는 주문이다.

 

토론은 말을 통해 사실과 가치, 정책에 대해 판단하는 의사소통이다. 특히 토론은 우리 일상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통 과정이며,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을 규정하고 해결하는 의례이다. 따라서 토론은 각자 가지고 있는 사실의 인식, 가치의 판단, 미래에 대한 결정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의사소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자체를 가르치는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토론의 과정 자체로 들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그 경험은 말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상대를 공감해보는 시뮬레이션이다

 

토론(討論)은 논쟁(論爭)이라고도 하며, 어떤 주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나누어 말로 싸우는 것이다. 결국 토론은 말로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게임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그 승패는 토론을 직접 수행하는 찬성과 반대가 결정하지 않는다. 토론의 청중이 그 승패를 결정하는데, 법정 토론에서는 판사가, 정치 토론에서는 국민이 바로 그 청중이다. 따라서 토론은 찬성과 반대가 서로를 설득하는 게임이 아니라, 청중인 제3자를 설득하는데 누가 타당한가를 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토론을 할 때는 누구를 설득하는 것인가에 대해 잘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간혹 오해하고 있는 것이 토론은 상대를 설득하는 게임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토론에서 상대는 결코 설득할 수 없다. 결국은 토론은 모두를 위한 의사소통 과정이다.

 

이처럼 토론은 우리 삶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소통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는 말을 통한 주장과 반박이 이어진다. 그 결과 승패가 갈린다. 결국 우리 삶이 문제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토론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통과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토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념 규정 속에서 상대를 경쟁의 상대로 인식해야 한다. 상대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는 것과 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경쟁의 대상이라면 이기고 지는 것을 인정하고 토론과 타협이 가능하지만,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 나 아닌 어떤 것도 존재하면 안 된다는 절대 악으로 빠진다. 토론하는 삶은 결국 수행(修行)하는 삶이다.

 

김인영 교수/위덕대 융합기초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