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72. 사람을 평가하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8-27  | 수정 :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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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술꾼의 다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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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그대와 같다면 평생 술을 마신들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이렇게 행동하면 복이 생길지언정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도 나쁜 업을 일으키지 않고 기꺼운 마음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면 이 착한 마음을 인연으로 즐거운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그대가 다섯 가지 계를 지니는데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술을 마시면서 계율을 생각하면 그 복이 더하리니, 우선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니고 이어서 열 가지 선업을 지키겠노라 다짐한다면 그 공덕은 열 가지 선업의 갑절이 될 것입니다.”(『불설미증유인연경』)
 
부처님이 코살라국의 기타태자에게 들려주는 말입니다. 벗들과 술 한 잔 나누는 즐거움을 양보할 수 없어서 불음주계가 들어 있는 오계를 받지 않겠다는 기타 태자를 이렇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경전에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는 권고가 나옵니다. 그 내용에 비추어 보면 기타 태자는 술을 끊지 못했으니 가장 기본적인 계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죽어서 다음에 어떤 생을 살아갈 것인지 빤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입장은 사뭇 다릅니다. 이 경전 내용에서 ‘술을 마시면서 계율을 생각한다’는 구절을 곰곰이 음미한다면 술을 못 끊겠다는 기타태자를 향한 부처님의 관대한 입장은 ‘술을 마셔도 된다’가 아닌 ‘계율을 생각한다’에 더 중점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도덕적(계율, 윤리)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술주정뱅이에 지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늘 계율을 지킬 것을 잊지 않고, 술에 취했더라도 자신의 마음과 몸을 반듯하게 지닌다면 오히려 복이 늘어난다는 것이 부처님 입장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또 있습니다.
 
인도 석가족 사람으로 언제나 술에 취해 살아가고 있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라카니. 그런데 이 남자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은 그의 사망 소식을 들으시곤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성자의 첫 번째 단계인 수다원과에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나쁜 곳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며, 마침내는 올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수다원과라고 하면 성자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속(俗)에서 성(聖)으로 나아갔으니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고 말하는 경지입니다. 이 경지에 들어간 사람은 비록 윤회를 완전히 끊어버리진 못했어도 지옥, 아귀, 축생의 괴로운 갈래로 나아가지 않고 인간과 천상세계에 태어나며, 최대한 일곱 번을 그렇게 생사윤회한 뒤에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사라카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석가족 사람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흥, 좋겠구만. 살아생전 술이나 퍼먹더니 죽어서도 부처님에게 저렇게 축복을 받았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이 세상에 성자가 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겠어.”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들이 경악하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늘 술을 마시던 사내였는데 어떻게 거룩한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고 하는지요.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절대로 거짓말이나 헛말을 하지 않으시는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의 불평이 터져 나오자 석가족의 마하나마가 부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가 이런 정황을 자세하게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답했습니다.
 
“마하나마여, 생각해 보십시오.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이 오랜 세월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죽어서 나쁜 곳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사라카나가 붓다와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한 재가신자였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삼보에 귀의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나쁜 세상으로 윤회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믿음은 확고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부처님은 삼보에 굳건하고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서 번뇌를 끊으려고 노력한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들려주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지혜를 갖추지도 못해도 괜찮습니다. 믿음, 정진, 새김, 집중, 지혜의 다섯 가지 능력을 익혀 지니고서 이 능력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사유하는 사람 역시 삼악도를 벗어난다고 부처님은 말합니다.
 
그뿐인가요? 설령 삼보를 향한 믿음이 굳건하지 않아도 부처님을 향한 적당한 믿음과 적당한 호감을 품고 있는 사람 역시 삼악도를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아니, 그럼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난 불교를 좋아해’라고만 말하면 지옥에 안 간다는 거야?”
 
“그러니까 믿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맹목적인 미신과 무엇이 다른 거야?”
 
이렇게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을 향한 적당한 믿음과 호감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악을 두려워하고 선으로 나아가려는 성품을 지닌 사람입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단정 짓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은 어느 곳 어느 경우에서라도 악업을 멈추고 선업을 지으려고 하니, 이런 사람이 어찌 죽어서 나쁜 곳으로 가겠습니까?
 
부처님은 주변에 있는 커다란 사라나무를 가리키고서 “이 나무가 잘 설해진 말과 그렇지 못한 말을 구별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커다란 사라나무조차 성자가 되어 올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리라고 예언할 것입니다. 하물며 석가족 사람 사라카니에 대해서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죽을 때에 자기가 공부해야 할 것을 이미 이루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살다 보면 술 한 잔을 마셔야 할 때도 있고, 그러다 주구장창 술에 절어 살 수도 있습니다. 또 어쩔 수 없이 거짓을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으로 옳고 선한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그 사람은 성자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것이지요. 경전에서는 사라카니가 어떻게 일생을 살아왔는지에 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으로 짐작하건대 그는 악업을 짓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저 술을 자주 마셨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군가의 일생을 두고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정이 사납고 행동거지가 흐트러져 보여도 그 사람이 지금의 나보다 한결 성숙해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사람을 알아보신 부처님의 혜안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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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