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동참 공덕으로 하늘같은 종조님 은혜 갚기를 서원”

밀교신문   
입력 : 2021-08-27 
+ -

탑주심인당 신교도 정지심(석복희) 보살


탑주 심인당 정지심 보살.JPG

- 지난 7월 금강원 성역화 불사 후원금을 종단에 기부하셨습니다. 기부의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종조탄생 120주년을 맞아 회당문화축제와 울릉도 금강원 성역화 불사에 진언행자들의 관심과 서원을 바란다는 밀교신문 기사를 보고 외조모님(고 영복인 보살)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짐승보다 못하니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열반 후에 언젠가 울릉도 금강원 성지 성역화 불사를 하게 될 때에 기부금으로 꼭 전달하라는 유언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후원금을 전달한 7월 12일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 오륜탑 봉안불사가 있던 날이었고, 외조모님의 열반 기제일은 7월 18일이었는데, 외조모님의 열반 기제일을 앞두고 유언의 뜻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 금강원 성역화불사가 아니더라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도 기부를 실천하시고, 평소 심인당에도 대중공양을 자주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기부를 시작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외조모님께서는 평소 ‘삼밀행과 정시, 정송, 희사, 절량, 십일희사법을 실천하여 용맹정진하면 지혜가 일어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부지런히 한결같이 변함없이 꾸준하게 실천하라’고 하셨지요. ‘부지런히 복업도 짓고 공덕을 쌓아가야 성장할 수 있다. 법계통장에 부지런히 저축해야 한다’고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아라. 부처님과 종조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오늘의 제가 지금까지 건강하고 넉넉하게 살게 되기까지에는 부처님과 종조님, 외할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고 정성으로 받들어 행한 공덕이었으며, 할머니께서 굳은 신심으로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이 저의 인생철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작은 기부들은 제가 입은 은혜의 공덕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 외조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외조모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할머니께서는 오직 한 믿음을 쥐고 살다가 가신 분입니다. 진각종 창종 초기 부산 정제심인당에서 입교하신 후, 부산 명륜, 대전 신덕, 서울 관음, 탑주심인당에 이르기까지 많은 심인당을 거쳐 오시며 ‘염송보살’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마지막 열반에 드실 때 까지 교전을 가까이 하셨고, 염송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결근, 지각, 조퇴 한번 하지 않고 장기근속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할머니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숨은 불심 원력으로 저는 학교에서도 장학생으로 공부해왔고, 회사에서 스카우트 되어 서울에 올라 온지도 어언 50년이 지났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유독 십일희사법을 강조하셨습니다. 제가 월급을 받고 퇴근해서 이곳 총인원까지 오면 밤 10시쯤이 되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파서 밥만 먹고 십일희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호통을 치시며 지극정성이 없다고 하셨어요. 월급을 받으면 받는 즉시 아무데도 가지 말고 곧장 부처님께 먼저 십일희사를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원에서 10원, 백원, 만원, 10만원, 백만원, 천만원, 1억, 10억… 자유자재로 큰돈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은 십일희사법을 실천한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SCAN0002.JPG
정지심 보살의 외조모님인 고 영복인 보살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탄생성지인 울릉도 금강원 성역화 불사가 부디 원만하게 회향되어 금강원이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이자 마음의 치유 쉼터가 되고 생활불교, 실천불교인 진각종을 널리 알리는 밀교성지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저는 진각종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진각종의 은혜 속에서 살아갔다면 이제부터는 높고 깊으신 종조님과 종단의 은혜에 보답하고 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바로 진언행자 모두가 성역화불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인연공덕을 짓고, 종조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시절인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