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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회사원

밀교신문   
입력 :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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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돌아보면 너도나도 주식이나 코인에 뛰어들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남들 따라 어설프게 재테크를 하는 대신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때다.

 

대기업을 간절히 바랐던 적은 없지만, 불가능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취업 준비 기간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를 뽑자면, 자기객관화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할 열정은 넘쳤지만, 그걸 숫자로 증명할 길이 없으니 내가 원하는 조건의 회사를 처음부터 노리지 않고 방향성을 같이 하는 회사로 지원했다.

 

한국에서의 첫 직장은 정직원 전환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 인턴 3개월로 시작했다. 워낙 급여가 짜고 업무강도가 높은 거로 유명한 교육업계였지만 IT기술이 접목된 에듀테크 기업이었다. 에듀테크는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터넷 강의가 그 예다. 어디라도 소속된 것에 감사하며 티 나지 않는 일도 책임감을 갖고 임했는데 그 정성이 닿았는지 3개월이 끝나기도 전에 정직원으로 전환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일 년을 채우기도 전에 단 세 명을 뽑는 뉴욕 주재원으로 발탁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주재원 생활도 잠시, 내가 원하는 회사가 나를 원하게 되어 국내 대표 IT기업으로 이직했다.

 

사회초년생 시절, 갓 들어온 대학생 인턴의 당돌한 질문이 떠오른다. “여긴 야근 수당 있어요?” 미처 따져볼 생각도 못 했던 난 벙쪄 버렸다. 똑똑하게 자기 몫을 챙기려는 젊은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받은 만큼 일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1년 차까진 마음 편히 휴가를 써보지 못했고 황금연휴는 꿈도 못 꿨다. 3년 차까지는 판단할 때가 아니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어떻게 하면 사수의 일을 내가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까란 마음으로 노가다 업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계산적으로 일하지 않았다. 달력에 있는 빨간 날에 의미를 두지 않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필요하다면 업무를 했다. 새벽에도 업무 알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머리맡에 올려두고 자는 게 습관이 됐다. 첫 월급으로는 필요한 역량을 보충하는 학원을 등록했다. ‘라는 사람이 곧 자본이기에 어떻게 하면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쉼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IT 업계 특성상 새로운 운영 툴을 배우고 숙지해야 할 게 넘쳐난다. 불규칙한 야근으로 지칠 때도 있지만, 내가 가진 자본을 살찌우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식지 않는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사그라들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임할 수 있었던 건 작지만 단단한 책임감 덕분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맡은 업무는 끝까지 책임지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법이 없었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때는 일을 했다. 일을 더 많이 했다고 해서 억울함이나 분노를 느끼기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으로 여겼다.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서 우직함으로 승부했고 자기 자신을 귀한 자산으로 여기고 뭐든 배움의 기회로 여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나를 원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알게 되었고, 이곳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을 훌륭한 팀원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감격스럽다. 어쩌다 시작한 회사원이지만 남들만큼 일하지 않고 남들보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 가려고 했던 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지만 뜻밖의 기회도 있다는 걸 회사에서 몸소 경험했다.

 

양유진/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