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69-은혜를 갚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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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버린 어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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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당신의 아들, 당신은 제 어머니입니다.
 
오래 전 인적 드문 곳에 저를 버리신 어머니. 남몰래 내다버린 뒤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버렸고, 저는 몸에 두르고 있던 옷가지마저 다 사라져 버리고 발가벗겨진 채로 한데에서 하루 또 하루를 지내야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무슨 사연이 있어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빈터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요 삼아 저는 그렇게 누워서 지냈습니다.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한적한 곳을 오가는 이리와 여우, 들개들이 저를 찾아왔고, 제 몸을 핥아주면서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빈 터에 아이가 버려졌는데 야생동물들이 그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요. 사람들은 제 딱한 모습에 혀를 차며 안쓰럽게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다들 편안한 표정으로 저를 들여다보고는 떠나갔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저는 두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롭지 않았고, 무섭지 않았습니다. 동물들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사람들이 자주 찾아 인사를 건넸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어린 아이에게는 그 무엇보다 부모의 따뜻한 품이 가장 필요하지요. 하지만 저는 세세생생 수행자로 살았으며, 금생에 다시 한 번 태어나 수행의 마침표를 찍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려고 몰려들면 저는 그들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당신도 계신가 궁금해서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를 빈터에 남몰래 버리고 떠난 뒤 두 번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조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번 생에 제가 꼭 만나야 할 분이 두 분 계시는데, 첫째가 부처님이요, 둘째가 어머님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이 두 분을 만날 것이나, 그 때가 언제인지 알 길이 없어 속을 태웠습니다. 빈 터에 누운 채 오른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면서 그저 그 때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오늘, 그토록 기다리던 부처님께서 저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저는 누운 채 부처님을 향해 투정이 섞인 말씀을 올렸고 부처님은 제 마음을 다 읽으셨는지 가만히 오른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부처님은 저와 사위성으로 탁발하러 들어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전생의 업이 무르익어 그 과보도 다 받았다. 너는 아주 오래 전 선근을 심었으니 그때의 일을 떠올려보려무나. 네가 보여줄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을 펼쳐보여도 좋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불러일으킨다면 좋겠구나.”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아주 높은 곳에 이르러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온몸에서 말할 수 없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빛을 뿜어냈습니다. 그 빛이 어찌나 화려한지 하늘의 신들이 모두 다 내려왔을 정도입니다. 하늘의 신들은 하늘의 꽃을 흩뿌려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살의 빛이 참으로 대단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빛을 쬔 사람들 마음에서 번뇌가 사라지고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니, 이 어린 보살의 이름을 ‘생각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빛’이란 뜻의 부사의광(不思議光)이라 지었으면 합니다.”
 
부처님은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게 부사의광이란 이름을 붙여주었고, 제가 허공에서 내려와 대지에 안착하자 제석천은 하늘의 옷을 공양 올렸습니다.
 
어머니, 믿어지십니까?
 
당신께서 남몰래 내다버린 그 아이가 하늘의 신 제석천의 옷 공양을 받았다는 사실을요. 그 옷은 세상 사람들이 탐착하는 세속의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 옷에는 자비심이 담겼고, 모진 괴로움을 훌륭하게 견뎌내는 인욕이 담겼고, 끝내 게으름 피지 않는 정진이 담겼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어리석음을 씻어주는 방편이 담겼고, 나를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온갖 번뇌가 다 사라진 지혜가 담긴 옷입니다.
 
제가 제석천이 공양올린 옷을 입고나자 부처님은 저를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셨고 마침내 이른 집은 바로 어머니, 당신의 집이었습니다. 아침 탁발을 나선 부처님께서 어머니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시자 저는 밖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이렇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어린 저를 보시자 소스라치게 놀라시는군요.
 
어머니, 접니다. 오래 전 빈터에 어머님께서 버린 그 아들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달아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마음을 놓으십시오. 마음을 편히 잡수시고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올리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어머니에게는 허물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귀한 목숨을 낳으셨으니 오히려 크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버리신 일이 씻지 못할 죄업이라 여기시겠지만 저는 어머니를 탓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아주신, 커다란 복을 지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이제 저는 어머니에게 그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
 
어머니, 지금 저 문 밖에 부처님께서 와 계십니다.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이 어머니에게서 아침 공양을 받으려고 와 계십니다. 어머니, 어서 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나가서 부처님에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지금 몹시 동요하고 계시는군요. 괜찮습니다. 집안에 음식이 있다면 그걸 들고 나가서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십시오. 부처님께 공양 올린 음식이 마땅치 않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게 이 옷을 준 제석천이 지금 하늘의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꽃과 향을 제석천에게서 건네받아 어머니에게 드리겠습니다.
 
자, 이 꽃과 향을 받으십시오. 저를 낳으신 부모님 은혜는 산해진미를 다 갖춘 음식으로도, 태산같은 금덩어리로도 갚을 수 없습니다. 진리로 인도하는 것, 바로 그 일만이 부모님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는 길입니다. 어머님, 어서 이 꽃과 향을 받아 들고 저 문밖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문 밖에 서계신 부처님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꽃과 향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뒤에 부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차분히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진리를 향해 몸을 숙이고, 진리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위해 어머니의 낮과 밤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머니, 어서 부처님에게 나아가셔서 이 꽃을 부처님에게 뿌리고 이 향을 흩뿌리시고서 부처님에게 이렇게 청하십시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 앞에서 선근을 심었으니 이제 저는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이 굳은 마음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어머니를 찾아온 것은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그 인연에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낳아주셔서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빈터에 버려졌던 그 어느 날, 저는 깊은 명상에 잠겨 제 전생을 들여다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세세생생 보살도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 보살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 기뻐하십시오.
 
어머니가 낳은 자식은 장차 부처가 될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버리신 것을 지금까지 괴로워하며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태는 제게 복밭이었습니다. 제가 버려진 그 외진 빈터는 제 수행의 완성을 위한 진리의 문 앞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더 큰 부모인, 진리의 어머니 부처님에게 건네주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낳으셔서 이번 생에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저를 만나 놀라셨을 테지만 머지않아 커다란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장차 어머니가 한 사람의 수행자가 되시면 진리의 정원을 함께 거닐기로 하지요. 이번 생에 부처가 되려고 발심한 자식을 잉태하고 낳으셨으니 그 선업으로 어머니, 당신은 훗날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어서 이 꽃과 향을 받고 부처님에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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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