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70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10-25  | 수정 : 2004-10-25
+ -
(밀교적 세계상의 구현) 1. 진언장엄의 표현방식 통도사는 우리들에게 금강계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재로 이 사찰을 밀교적 입장에서 관찰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전각들의 내부가 각각 '신구의'를 통한 표현방식인 존형과 진언과 삼매야형의 세 가지 특징으로 장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이 형상으로 봉안되어 있고, 대웅전의 뒤편에는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종형의 삼매야형을 안치하고, 그 전각의 내부는 석가모니불의 종자진언 뿐만 아니라 제불의 종자진언으로 장엄되어 있다. 나아가서 그 외의 전각들에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통된 진언들인 육자진언과 준제진언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존상과 진언과 삼매야형을 통한 조화로운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찰이 밀교적 양상으로 장엄된 것은 신라시대 석종형 삼매야형의 전승과 17세기 중반이후에 이루어진 중건과정에서 진언장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웅전의 경우는 조선시대 인조 2년인 1644년에 우운대사가 중건하였고, 대광명전은 조선 영조원년인 1725년, 영산전은 숙종 30년인 1704년에 중건되거나 중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의 건축물들은 여느 사찰과 다를 바 없이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사찰의 특징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써 대웅전의 경우 전각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금강계단의 진신사리를 향해서 예경을 올리게 되어 있다. 이것은 일종의 불사리에 대한 신앙이자, 밀교적 입장에서 보면 부처님의 진신을 상징화한 삼매야형에 대한 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사찰은 크게 상로전과 중로전, 그리고 하로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구획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상로전에 속하는 대웅전과 응진전에는 각각 제불의 종자와 준제진언이 표현되어 있고, 중로전에 속하는 대광명전에는 금강박인을 한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거기에 육자진언으로 장엄하였으며, 관음전에는 아미타불의 종자와 육자진언으로 장엄된 연화문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중로전이면서도 용화전에는 준제진언으로 장엄되어 있다. 한편 하로전에는 영산전과 극락전, 그리고 약사전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약사전에는 육자진언으로 장엄되어 있다. 이와 같이 통도사의 진언장엄은 제불진언으로부터 전개되는 육자진언과 준제진언의 표현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불로부터 전개되는 보살의 활동력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사리신앙과 문자불 우리들은 통도사 대웅전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진언의 표현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는 특징 이외에 형상이 아니지만 문자로 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대웅전의 내부를 보면 수많은 진언종자들로 장엄되어 있다. 천정은 물론 대들보에 이르기까지 온갖 진언들로 가득 차 있다. 참으로 신비감을 더해주는 장엄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들 진언장엄 중에는 보살을 나타내는 진언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대웅전의 장엄에 보살의 진언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금강계단의 석종(石鐘)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거기에는 형상으로 된 본존을 봉안하지 않는 대신에 연화문 중에 석가모니불의 종자를 중심으로 제불의 진언종자를 표현했다. 그 장엄 중에서 중심이 되는 종자는 석가모니불을 의미하는 바(Bha)와 만(卍)자의 두 종류이다. 여기서 바(Bha)는 세존을 의미하는 바가바트(Bhagavat)의 첫 자를 가지고 만든 종자이다. 예로부터 인도에서는 폭 넓은 의미를 지닌 말이나 뜻 깊은 낱말, 특히 성자들의 가르침을 전할 때에는 하나의 문자에 많은 의미를 함축시켜 오래도록 기억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것은 훗날 42자문(字門)이나 50자문이라는 상징문자로 정착되고, 이것은 다시 반야경전계통의 진언들과 습합하여 밀교의 종자진언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종자진언이 경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밀교계 경전에서는 아예 함축문자로 불보살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등상불이나 보살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표현방식이다. 또한 형상뿐만이 아니라 소리를 표상화한 문자로도 불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통도사 대웅전의 경우,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대신 삼매야형에 해당하는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모시고, 예경하는 장소인 대웅전에는 형상이 중복되지 않도록 문자로 된 진언종자로 석가모니불 및 제불(諸佛)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사리신앙과 더불어 밀교의 진언종자신앙이 어우러져서 이루어진 복합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석가모니부처님의 육신을 대신한 사리로와 더불어 문자로 된 상징불이 법음을 전파한다는 구도(構圖)를 나타낸 형식이다. 한편 바자(Bha字)로 된 석가모니불의 종자대신에 연화문(蓮華紋) 가운데에 만자(卍字)로 석가모니불을 나타내고, 그 주위에 여섯 부처님의 종자를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종자로 된 석가모니불의 주위에 제불의 종자를 표현한 것과 같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중심에 실담문자로 된 종자를 써넣은 것과 그렇지 않고, 만자를 새겨 넣어 표현한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만자는 문자로써의 의미와 더불어 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고대인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수용되어 태장만다라에서 일체편지인(一切遍知印)을 나타내는 삼각의 좌우에 사용한 예도 있다. 이 때 만자는 끊임없이 활동하는 원력을 나타낸 것으로 불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처님의 원성한 가르침이 그치지 않고, 수레바퀴가 구르듯이 법륜의 바퀴가 구른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와 그 분의 종자진언인 바(Bha), 그리고 만자(卍字) 상징문자로 이루어진 통도사 대웅전의 장엄방식은 불의 신(身)과 구(口)를 통한 활동력을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