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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을 되새겨 용맹정진

밀교신문   
입력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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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덕일정사 기고문 사진-입암시비.jpg

내 고향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입암(立巖)이란 지명은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개울에 우뚝 서[立] 있는 큰 바위[암(巖)]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입암(立巖)은 우리말로 ‘선바위’이다. 선바위 부근 입암서원 개울가에는 조선중기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盧溪) 박인로(朴仁老)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필자도 당시 시비건립추진위원으로 참여한 바가 있습니다.

 

입암은 선생이 ‘입암(立岩) 29곡’과 ‘입암별곡’을 노래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난 곳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도 입암의 풍광에 마음을 뺏기어 이곳에 머물면서, 28곳의 빼어난 풍광 마다 각각 이름을 붙이고 절경을 노래했으니, 그 글이 ‘입암(立岩) 28경(景)’입니다.

 

그 28경 가운데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선생은 구인봉(九仞峯)이라 이름 하였습니다. 중국고사 ‘위산구인공휴일궤(爲山九仞功虧一簣)’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아홉 길의 작은 산을 쌓아올리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라도 게을리 쌓으면 완성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끝까지 전력을 다해야 완성할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줄여서 ‘공휴일궤(功虧一簣)’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여헌 선생이 이름 지은 구인봉(九仞峯)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 분명합니다.

 

‘위산구인공휴일궤’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여오편(旅獒編)’에서 비롯되었는데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 주(周)나라 무왕은 폭정을 일삼는 상(商)나라를 멸하고 바른 나라를 세우겠노라는 아버지 문왕의 정신을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는 여러 세력과 힘을 합쳐 기어이 상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차지하게 됩니다. 반발세력의 저항도 만만찮았으나, 무왕은 기어이 그들을 평정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칩니다. 정세가 안정이 되자 다른 여러 부족들이 모두 주나라에 복종하여 공물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그 중 서쪽에 있는 여(旅)부족은 그곳의 특산품인 오(獒)라는 큰 개 한 마리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무왕은 이 기이한 개를 받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처음의 다짐보다 마음이 느슨해져 안일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안일했던 한 순간이 그동안 기울인 공을 다 허물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무왕 또한 개를 선물 받고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나라 정권을 멸할 때보다 훨씬 안일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아우 소공(召公)이 염려가 되어 무왕에게 다음과 같은 경계의 글을 올렸습니다.

 

“ …먼 곳의 물건을 보물로 여기지 않으면 먼 곳의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며, 어진 사람을 귀중히 여기면 가까운 사람들이 편안하게 될 것입니다. 아아!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하지 않을 때가 없도록 하십시오. 사소한 행동에 신중하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아홉 길 높은 산을 만드는데 ‘흙 한 삼태기가 없어 공을 헛되이 해서는 아니 됩니다[위산구인공휴일괘(爲山九仞功亏一簣)].’ 진실로 이와 같이 한다면 백성들은 자기가 사는 곳을 지킬 것이고, 대대로 왕업을 누릴 것입니다.”

 

‘위산구인(爲山九仞)’에서 ‘위산(爲山)’은 ‘산을 만들다’는 뜻이고, ‘인(仞)’은 길이를 재는 단위인 ‘길’을 뜻하니, ‘구인(九仞)’은 ‘아홉 길’이 됩니다. 따라서 ‘위산구인’은 아홉 길의 높은 산을 조성한다는 의미입니다. ‘공휴일궤(功虧一簣)’에서 ‘공(功)’은 일에 들이는 노력과 정성, ‘휴(虧)’는 한쪽 귀퉁이가 없거나 동그라미에서 약간 차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궤(簣)’는 흙을 담아 나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삼태기를 뜻하니, ‘일궤(一簣)’는 한 삼태기를 뜻합니다. 

 

고로 ‘공휴일궤’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지금까지 들인 공적이 한 삼태기 정도 모자란다는 의미가 됩니다. 결국 ‘위산구인공휴일괘(爲山九仞功亏一簣)’는 아홉 길 높은 산을 만드는데 흙 한 삼태기가 없어 공을 헛되이 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니, 힘들게 벌인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해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만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 됩니다.

 

소공은 이 말로써 무왕에게 사소한 것 때문에 쌓은 공이 무너지듯이, 작은 행동도 조심하지 않고 방심하면 주나라 창업의 공적이 헛수고가 될 거라고 충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왕은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정치에 온 마음을 기울여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나라의 발전에 힘쓰게 됩니다. 이 고사에서 ‘위산구인공휴일궤’는 목적 달성에 실패하는 것이 한순간의 방심임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논어>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데에 한 삼태기를 채우지 못해 중도에 그치는 것도 내가 그치는 것이며, 땅을 고르게 다지는데 한 삼태기만 덮더라도 진척시켰으면 내가 한 것이다.”

 

회당대종사께서도 <실행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홉 길의 성(城)을 쌓자면 마지막 한 소쿠리의 흙을 얹어야 되는데 얹지 못하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용맹을 세워서 전진을 못하면 옳은 실천이 안 된다.”

 

마음공부 또한 그러합니다. ‘위산구인공휴일괘(爲山九仞功亏一簣)’하지 않으려면 초발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기껏 정진했다가 순간 초발심을 잊고 방심하면 그간의 노력이 소용없게 됩니다. 그래서 초발심을 유지하는 것이 마음공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덕일 정사(무애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