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설법 36-추선불사

밀교신문   
입력 : 2021-04-30  | 수정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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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 열반 후에 칠일부터 사십구일 추선불사(追善佛事) 짓게 되고 조여부모(祖與父母) 기제일과 내지 누대(累代) 추복(追福)하면 조상불(祖上佛)의 가지력을 그 집에서 입게 되어 그 자손의 복업공덕 한량없게 되느니라. 


이것은 나만이 알고 있거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생각이 나지 않을 뿐입니다. 오대서원 가운데 “여래가가 없는지라 섬기기를 서원이라.” 하였습니다. 이때 여래는 인간 세상에 나타난[如來] 모든 것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은 법신 비로자나불의 청정한 자성(自性)을 근원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자성이 무시겁에 진리와 법에 맞게 삼계로 옮겨온 것입니다. 법답게 오고 법답게 돌아가는 것을 여래요 여거(如去)라 합니다. 과거에도 왔다 갔으며, 현재에도 오고 갈 것이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는 것을 좋아하고 가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여거란 말은 사용하지 않고 여래란 말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옮겨 오고 옮겨 가는 가운데 언젠가는 해탈과 열반을 지나 성불할 것입니다. 중생은 다만 윤회에 맛을 들여 성불 시기를 늦추고 있을 뿐입니다. 

 

옮겨 오고 옮겨 가는 가운데 가장 인연이 깊은 사이가 부모요 조상입니다. 과거 7세 부모님과 현재세의 부모님도 모두 법답게 왔다가 법답게 갔습니다. 옮겨가는 중간에 중음의 귀신(鬼神)이 되기도 합니다. 조상이 귀신이 되어 환생하지 못한다면, 그 집안은 후손이 태어나지 않아 집안이 번창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조상과 부모가 어디엔가 환생하므로 그 인연으로 우리 가문에 후손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음신은 환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조상을 귀신으로 섬기는 것은 잘못하는 일입니다. 부모와 조상은 여래하고 여거하는 것이므로 불보살처럼 생각하여 불위(佛位)로 공경하여야지 신위(神位) 모시는 것이 안됩니다. 위(位)는 자리를 뜻하는 것이며, 이 자리는 고정된 자리가 아닌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회의 직위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므로 회전의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바뀌는 자리므로 좋은 이름의 자리로 옮겨갈 수도 있고, 나쁜 이름의 자리로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불위는 영원한 자리로써 힘이 있고 자유롭고 존경받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부모님과 조상을 신위가 아닌 불위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와 조상은 은혜로 만난 사이입니다. 몸을 받은 자체가 이미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시 은혜를 더하였습니다. 부모는 평생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면서도 항상 자녀들이 부족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가진 것 중에 최고의 것을 주고자 합니다. 이에 반하여 자식들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부모가 늙을 때까지 도움받고자 합니다. 자신이 받을 때는 좋고 나쁨과 많고 적음을 탓하면서 부모를 생각할 때는 아까워하고 주저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렇게 끝없이 도움만을 생각하다가 부모님이 열반하면 생각이 바뀝니다. 부모님이 살았을 때는 소홀히 하고 때로는 귀찮게 생각하였으나, 열반한 뒤에는 두려워하고 겁내는 마음으로 바뀝니다. 왜 그럴까요? 행여나 잘못한 것에 대하여 벌이라도 내릴까 하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마음에서 길한 시간을 택하고 양지[明堂]를 찾아 모시면서 보호의 음덕(陰德) 입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이 흐를 때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불이 탈 때는 위로 향합니다. 물과 불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래로 흐르고 위로 타는 것이지, 물과 불이 마음대로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세상에 오고 가는 우리도 자연과 만물이 얼기설기 얽히어서 성장하는 것처럼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자연과 만물과 사람이 가진 힘의 섭리가 같다는 뜻입니다. 좋은 과를 받으면 행복할 것이요, 나쁜 과를 받으면 불행하게 살 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타의 힘을 빌려서라도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원에 맞추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고 있습니다. 타의 힘 가운데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부모님의 힘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힘 받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은공과 음덕을 입으려면 평소에 은혜하는 마음으로 보은행을 행하여 빚이 없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빚이 있으면, 부모의 은공과 음덕을 마음으로만 받고 현실로는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가진 공덕이 없고, 자식 또한 받을 복이 없으면 이때는 마음으로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들을 평등하게 사랑하면서도 베풂에서 평등하게 베풀지 못하는 것은 받을 자녀들의 인지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자식이라도 정이 가고 정이 가지 않는 자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깊은 인연과 낮은 인연, 복으로 맺어진 인연과 화(禍)로 맺어진 인연의 차이입니다. 만일 복으로 맺어진 인연이라면 자연히 좋은 것을 주면서도 더 많이 주고자 할 것이요, 화로 맺어진 인연이면 좋은 것을 주고자 하나 마음대로 주지 못할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재산을 주고자 하지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소모한 연후에 자식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수중에 한 푼도 없다가도 복으로 맺은 자식을 만날 때가 되면 우연히 재물이 생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가 살았을 때는 인정으로 약간의 바꿈이 가능하지만, 열반 후에는 터럭만큼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인 지은 대로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과 이치며 자연의 섭리입니다. 

 

이 땅에서 지은 것은 이 땅에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이 땅에 떨어진 빗방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웅덩이를 채우고 넘쳐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허공으로 올라 빗물이 되어 떨어집니다. 시간에 따라 머무는 장소가 다를 뿐, 언제나 이 땅에서 옮겨 오고 옮겨 가는 것입니다. 물의 흐름과 불의 태움에 방편을 쓰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고 타게 할 수 있습니다. 방죽을 만들어 필요할 때 수문을 열고 물길의 방향을 조정하여 사용하듯이, 이 땅에 있는 부모님과 조상의 음덕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유자재할 수 있습니다. 자유자재 하는 법이 추선(追善)과 추복(追福)불사입니다. 부모님이 가진 공덕과 열반 후 음덕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여건을 만드는 불사입니다. 이것은 욕심도 아니며, 기복(祈福)도 아닙니다. 부모님과 조상을 불위로 공경하면서 그분들이 지은 악행의 업은 대신 소멸시키고, 선행의 업은 지어 미루므로 화복은 자연히 인연을 찾아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입니다. 열반하신 부모님이나 조상은 이미 알 수 없는 곳에 환생하였습니다. 후손이 부모님과 조상이 남긴 음덕을 입을 때, 부모님과 조상은 환생한 그곳에서 무주상보시를 행한 것이 되므로 이곳의 후손이 음덕을 입을 때, 그곳에서 함께 복덕을 누리게 될 것이며, 부모와 조상이 남긴 악행을 소멸시켜 재화(災禍)가 사라질 때, 그로 인하여 부모님과 조상은 그곳에서 악업의 고통이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추선하고 추복하는 상호공양으로 바꿔 나타나는 공덕입니다. 

 

자신이 어느 가문에 태어나 부모님과 조상을 만나는 것은 받을 것이 있거나 갚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을 받고 양육을 받은 것은 받을 것을 이미 받은 것이 됩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받을 일이 아닌 보은할 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하여 받고자 생각합니다. 사회도 불효의 벌은 없지만, 보은한 효자에게는 빚을 갚았다는 증서로 효자문을 내리면서 덤으로 영광을 누리게 합니다. 진각성존은 은혜를 아는 마음으로 보은하는 법을 실행론에 “비로자나 대비원력(大悲願力) 삼세 중에 꿰었으니 사람에게 의뢰(依賴) 말고 귀신에도 빌지 말고 부처님의 가지원력(加持願力) 조상불(祖上佛)이 입게 하여 자손만대 드리우게 추복불사(追福佛事) 할지니라. 부모를 위해 추복하면, 삼복전(三福田)을 짓게 되니 보은복전(報恩福田), 공덕복전(功德), 회향하여 빈궁복전(貧窮福田)”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세계에는 인간보다 7.5배의 중음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중음이 이렇게 많다하여 두려워할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하늘보다는 약하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힘은 중음의 귀신보다 강합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덕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성스러운 강한 힘을 가지고 좋은 기회를 만났으니, 이제부터 부모도 복되고 자신도 복된 길, 부모도 선행하고 자신도 선행의 길로 향하는 추선과 추복의 상호공양을 실천하면 됩니다.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으므로 참회로 대처하고, 머물지 않는 현재는 넓은 마음과 평등한 자비를 베풀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세상에 희망의 복된 씨앗을 넉넉하게 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순행이며, 추선 추복의 불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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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