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설법 33-관행금계(觀行禁戒)

밀교신문   
입력 :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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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밀선정법(三密禪定法)은 각자(各自) 매일 정(定)한 시간, 간궐(間闕)하지 말 것이니, 만약 간궐하게 되면 법을 성취 못 할지며, 금강진언 세워두고 다른 태장잡진언(胎藏雜眞言)을 염송하지 못함같이 육자진언 세워두고 다른 염송 못 할지라.
 
불교 수행은 관법에 있습니다. 관행은 각자의 근기와 덕성과 서원에 맞추어 행합니다. 관에는 현(顯)의 사무량심(四無量觀)과 밀(密)의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을 비롯하여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쉽게 행하는 관행이 탐욕을 다스리는 부정관(不淨觀), 성냄을 다스리는 자비관(慈悲觀),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인연관(因緣觀), 번뇌를 다스리는 수식관(數息觀), 집착과 애착을 다스리는 백골관(白骨觀), 참선하는 선관(禪觀), 생활 속에서 삼세인과를 증득하는 육자선정의 삼밀관행이 있습니다.
 
진각성존은 불의 진리와 자연의 이치와 만물 운행을 하나로 표현한 육자관념도의 만다라를 제시하였습니다. 육자관념도를 표본으로 삼밀관행을 하는 데는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진언은 반드시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합니다.”
진언은 부처님의 진실함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8만4천 종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 음을 ‘옴’으로 시작하면 금강계(金剛界) 진언과 여타의 음으로 시작하는 태장계(胎藏界) 진언이라 합니다. 진언은 진언마다 공능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서원에 따라 진언을 다르게 염송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하여 진각종은 ‘옴’자로 시작하는 금강계 진언 가운데 비로자나불의 본심이요 일체 불보살의 본심이며, 일체중생의 본심을 뜻하는 옴마니반메훔을 수행본존으로 하는 밀교종단입니다.
 
옴마니반메훔은 비로자나불의 청정성을 바탕으로 영원성·견고성·불변성·항상성을 담은 총지(總持)진언으로 비로자나불의 좌우보처인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과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공능을 모두 갖춘 관세음보살의 본심을 표현합니다. 중생계는 소리로 다스려지는 세계입니다. 진언 염송 속에 서원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관세음보살은 서원의 염송 소리를 관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진언의 소리를 관한다는 것은 잠자는 자신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마음을 일깨우려면 울림의 소리로 염송해야 합니다. 울림의 소리에 밝음과 맑음과 강함과 부드러움이 있어 잠자는 세포들을 깨워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정미하고 슬기롭게 활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자신의 염송 소리를 듣고 하는 음성염송과 입을 다물고 입안 소리를 하는 금강염송과 진언 자를 관하면서 하는 삼마지 염송과 진언의 의미를 관하는 진실염송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방법이 있고, 처음 음성염송으로 시작하여 금강염송⇒ 삼마지염송⇒ 진실염송⇒ 다시 음성염송으로 회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 방법이든 깨달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서원 있어 육자진언 염송할 때는 금강지권을 결하여야 합니다.”
비로자나불의 청정성을 가지 받으려면 비로자나불과 부합하는 금강 합장과 금강지권을 결하고 염송해야 합니다. 금강지권을 결하는 것은 오로지 비로자나불에 귀명하여 서원을 약속하는 신밀(身密)입니다.
 
결인은 부처님도 설법하실 때는 전법륜인, 선정에 들 때는 법계정인, 원을 들여 줄 때는 여원인, 마를 항복시킬 때는 항마촉지인, 두려움을 없앨 때는 시무외인을 결합니다. 금강지권인은 이 모든 것이 결집해 총지 결인입니다. 금강지권을 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몸 중앙으로부터 ‘옴 비로자나불,’ 왼편으로 ‘마 아축불,’ 명문으로 ‘니 보생불,’ 오른편으로 ‘반 아미타불,’ 단전으로 ‘메 불공성취불,’ 인후에 ‘훔 금강보살’을 부르며 가지(加持)합니다. 가지는 자기 몸에 정확한 위치에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결인 중에는 남과 말을 하지 못하며, 정한 시간 동안 결인(結印)를 깨지 않아야 합니다.
 
“관행자는 다른 이에 비방되게 하지 말며, 수원(讐怨) 맺지 않아야 합니다.”
중생계는 상대성입니다. 상대성은 비교하는 마음에서 강하게 일어납니다. 사바세계는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나의 인연으로 모였습니다. 어느 생에서는 부모였고, 형제였고, 부부였고, 친구로 지내면서 도움을 주고받고 고통을 나누면서 함께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좋아하는 사이, 미워하는 사이, 빚진 사이, 은혜로운 사이 등 다양한 사이로 엮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현생에 같은 국토에 태어나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생각으로 좋은 관계만 유지하면 즐겁고 행복할 텐데, 나쁜 관계로 미워하고 싫어하고 원수지는 마음으로 또 다른 악의 인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진언행자는 인과 이치를 깨달아 나쁜 것은 참회로 녹이고, 좋은 것은 더욱 좋은 인을 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비방을 멈추고 시기와 질투를 멈추고 수원을 맺고 원수 맺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비방과 시기와 질투와 수원심으로 원수 맺음을 멈추지 않으면, 내가 가장 필요할 때, 사회로부터 도움받지 못하며, 가장 외로울 때 이웃은 나를 멀리하며, 성공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장애가 일어나며, 가장 행복할 때 모진 병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진각성존은 실행론에서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 말고 수원은 일시라도 두지 말라.” 하는 실천법을 말씀하였습니다.
 
“수행 공덕으로 얻은 재보, 널리 단시 행할지요. 간린(慳吝)하지 말지니라.”
진언 수행은 좋은 공덕을 쌓아 현생에서 가난과 병고와 불화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구경에는 윤회가 없는 부처 세계로 귀향하는 것입니다. 부처 세계는 본래 나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삼계 가운데 욕망으로 이루어진 욕계(欲界)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서 탐욕에 맛이 들어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탐욕을 근본으로 하는 세상이므로 탐욕에서 성이 나고, 성이 나면 어리석어지고, 어리석음에서 교만이 생기고, 교만에서 의심을 낳아 집착으로 제2 고향이라 합니다. 이곳에서는 마음 밝히고자 수행하면서 욕망을 채우는 기복적(祈福的)인 수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욕망의 탐심은 아끼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탐욕심과 아끼는 마음을 다스리는 행이 보시입니다. 특히 기복 불공으로 얻은 공덕이 있다면 반드시 보은하는 마음으로 희사부터 해야 합니다. 육바라밀 실천이 보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익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청정한 보시행이 계행이 되고, 인욕행이 되며, 정진행이 되고, 선정행이 되며, 지혜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도 과거 인행(忍行)시에 몸을 아끼지 않은 보시행으로 현생에 원만한 부처 몸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공덕으로 얻은 것을 보시하면 이 보시는 일회성의 공덕이 아닌 장원한 공덕으로 이어지는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관행하여 얻은 묘득(妙得), 자랑하지 말 것이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과 상대의 단점을 태산처럼 들추고, 자신의 잘못과 상대방의 잘함은 티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상대와 비교하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상대의 잘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칭찬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돌아서서 배 아파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파하는 마음이 얕고 깊고, 늦고 빠르고, 숨기고 나타냄이 다를 뿐 누구나 다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은 부자간도 나누지 않으며, 재물은 형제간도 다툼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충만한 세상에 살면서 특히 수행으로 얻은 공덕을 자랑하면 안 될 것입니다. 자랑하는 순간 상대로 하여금 칭찬보다는 비방하는 인을 짓게 하여 공덕이 감해지게 됩니다. 수행자가 중생에게 해탈공덕은 주지 못할지언정 고통의 인을 지을 여건을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삼가고 삼가야 합니다.
 
“시간 정진할 때는 시간을 넉넉하며, 수마(睡魔)를 끊어야 합니다.”
시간 정진할 때는 첫째 정한 시간을 여유롭게 마쳐야 합니다. 비유하면, 익지 않은 열매를 추수하는 것과 같이 시간이 부족하게 마치면 서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둘째 정진 중에는 수마(睡魔)를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졸음은 자성을 잃게 하는 마원(魔怨)으로 서원성취의 제일 큰 장애물입니다. 정진 중에 오는 졸음이 한편으로는 공덕성취의 어려움을 알려주는 법문이기도 합니다. 졸음이 법문으로 나타나는 것은 간밤에 잠을 적게 잤거나 피곤하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졸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졸음을 겁내지 말고 용맹심으로 다시 희사법을 세우고 염송하면 졸음은 자연히 물러가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금계법을 실천하여 오상성신(五相成身)이 구비한 서원이 성취하여 복지구족한 삶을 이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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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