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65-의지하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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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겨자씨를 구하지 않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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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 나간 적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구해오라는 부처님의 명을 받은 키사 고타미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저 역시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었고 여러 매체에서 칼럼으로 쓰기도 하고 강의에도 수없이 풀어놓았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빤한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법이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을 겪으면서 새삼 음미하게 된 키사 고타미 이야기가 진정 제게 새로운 일깨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저와 함께 키사 고타미와 부처님의 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키사 고타미는 코살라국의 슈라바스티성(사위성)에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키사라는 말은 야위다, 말랐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서 이 여인이 아주 깡마른 몸매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타마 붓다, 즉 우리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카필라성의 마야부인에게서 태어날 때 키사 고타미는 슈라바스티 성의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고타미’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으로 시집을 갔지만 천대와 구박을 받았습니다. 가난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집안의 여인이 부잣집에 시집 와서 호강한다며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서러운 결혼생활에 마침내 아들을 낳았습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첫째 아이로 아들을 낳았으니 키사 고타미의 어깨가 펴졌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멸시를 했지만 아들을 낳으니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는구나.”
 
그간 받았던 인간적인 설움을 이 자그마한 아이가 순식간에 다 날려버렸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하고도 귀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아들이 엄마 품을 벗어나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키사 고타미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움직이지도 뛰어다니지도 않고 숨도 쉬지 않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계속 어르면서 눈을 뜨라고, 엄마를 보라고 다그쳤습니다. 가족들은 그녀의 품에서 죽은 아이를 떼어내 장사를 치르려 했지만 키사 고타미는 아이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가 있어 나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귀한 아이를 밖에 내다 버리려고 하는구나.’
 
아이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지만 어머니 키사 고타미는 그게 바로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약을 구해 먹이면 아이가 다시 활짝 웃으며 엄마에게 달려올 것만 같았습니다. 키사 고타미는 아이를 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졸랐습니다.
 
“약 좀 주세요. 우리 아이에게 먹여야 해요.”
 
사람들은 죽은 아이를 보고 기겁을 하고서 달아났지만 키사 고타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보다 못한 어떤 사람이 생각했습니다.
 
‘자식 잃은 슬픔에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구나. 이 여인이 찾는 약은 부처님만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서 키사 고타미에게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가보시오. 그분이라면 당신의 아들에게 약을 줄 것이오.”
 
키사 고타미의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리고 한달음에 부처님 계신 절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시신을 등에 업은 채로….
 
그녀가 찾아갔을 때 마침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엄숙한 법회 자리에 이성을 잃어버린, 깡마른 여인이 죽은 아이를 업고서 들이닥쳤습니다.
 
“부처님, 제 아들에게 약을 주십시오.”
 
다짜고짜 죽은 아이를 살려낼 약을 달라고 여인은 외쳤습니다. 사방팔방 헤매고 다녔지만 약을 구하지 못한 어머니는 이제 마지막 희망을 품고 부처님을 향해 간절히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에게 법문을 들려주시던 부처님은 막무가내로 매달리는, 이 기막힌 상황에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오직 하나, 이 어머니가 마음 공부할 인연, 수행하며 구도자의 길을 걸어갈 인연이 무르익었다는 그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여인이여,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자식이라도, 배우자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집착을 내려놓으십시오.”
 
하지만 자식이 죽은 지 오래인데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부처님은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자, 그럼 그대는 즉시 성으로 들어가서 흰 겨자씨를 구해오십시오. 단,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구해 와야 합니다.”
 
‘역시 부처님이시다. 이제 흰 겨자씨만 구해오면 아이는 다시 예전처럼 웃고 뛰놀게 될 거야.’
 
키사 고타미는 기쁜 마음으로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희망에 가득 차서 성에 도착한 그녀는 첫 번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인이 나오자 이렇게 청했지요.
 
“제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내 아들을 위해 흰 겨자씨를 구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이 댁에서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죽은 적이 없다면 제게 흰 겨자씨를 주십시오.”
 
집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흰 겨자씨야 있지만 우리 집안에서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녀는 발길을 돌려 다음 집으로, 또 그 다음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집마다 똑같았습니다. 겨자씨야 달라는 대로 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죽어나간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키사 고타미는 생각했습니다.
 
‘집집마다 죽어나간 사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구나. 그런데 흰 겨자씨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흰 겨자씨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명약이라면 집집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그 겨자씨를 써서 살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집집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조상들이 여전히 지금껏 살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살리고 보겠다며 울며불며 매달리고 막무가내로 약을 구하며 다니던 어머니 키사 고타미는 천천히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이 성 안 어느 집을 다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집마다 사람 사람마다 죽음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 부처님은 자식을 잃어 미쳐버린 나를 가엾게 여겨 자비로써 이런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다.’
 
키사 고타미는 죽은 자를 내다버리는 공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업고 있던 아들의 시신을 내려놓았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것은 사실이며 진리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한 사람, 한 가정, 한 도시에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다. 온 세상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진리다.”
 
키사 고타미는 다시 부처님을 찾아갔습니다. 부처님은 멀리서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물었습니다.
 
“흰 겨자씨를 구해왔습니까?”
 
“세존이시여, 더 이상 흰 겨자씨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저의 의지처가 되어주십시오.”
 
키사 고타미는 구도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진리의 스승과 가르침, 그리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들을 의지처로 삼아 해탈의 경지로 나아갔지요. 훗날 그녀는 거친 옷을 입고 수행하기로 으뜸간다는 칭찬을 부처님에게 들었고, 자신에게 훌륭한 벗이 있음을 찬탄하는 시를 남겼습니다.(전재성 역, <테리가타-장로니게경> 참고)
 
“나는 ○○ 때문에 산다.”
 
“나는 ○○ 보는 낙으로 산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자기 삶의 보람을 ○○에게 기댑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으니 전적으로 기댔던 의지처는 속절없이 나를 떠납니다.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지만, 인간은 모두 비극의 공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사별의 아픔을 겪은 친구를 위로하지만 내일은 내가 울 차례인 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 슬피 울면서도 흰 겨자씨를 찾으러 온 세상을 헤매고 다닙니다.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키사 고타미는 아마 처음에는 괜찮은 남편감을 구했을 테지요. 그 다음엔 아들을 구했을 것이고, 그 다음엔 아들을 살릴 흰 겨자씨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이제 키사 고타미는 “더 이상 흰 겨자씨를 구하지 않겠다”라고 부처님께 다짐했습니다.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리지 않고 그 처절한 슬픔을 딛고 지혜를 품었습니다. 부처님은 불사의 약을 주지 않았지만 불사의 경지로 나아가는 데 의지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인생이 안겨주는 비극에서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성숙할 것인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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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