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바라보는 경전 64. 공을 들이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1-25 
+ -

붉은 진주를 얻기까지

thumb-20201229093940_9b7061854922065b3898fef3cc7cf9f3_sdh0_220x.jpg

 
늘 조용히 부처님 곁을 지키는 시자 아난이 어느 날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왕가에서 탄생하시고, 출가하여 고행하시긴 했지만,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지금까지 지내오신 삶을 보면 성불하시기까지 그리 힘든 일은 없는 듯합니다. 아주 쉽게 물 흐르듯 그렇게 부처님이 되신 것 같습니다.”
 
아난 존자의 성품으로 봐서 이런 말씀을 부처님에게 드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워낙 덤덤하게 평화롭게 지내시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부처님은 제자에게 답하셨습니다.
 
“아난이여, 내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옛날에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라 밖으로 다니며 무역을 해서 재산을 아주 많이 모은 사람이어서 이 사람의 보물창고에는 없는 보물이 없었다. 딱 한 가지 보물만 빼고.”
 
“그 정도로 큰 부자인데 어떤 보물이 없었을까요?”
 
“붉은 진주인데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아주 진귀한 보석이었다. 남자는 어느 날 함께 사업하는 친구를 데리고 뭍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바다로 나아갔다. 너무 험해서 웬만한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남자는 날카로운 칼을 꺼내 자기 몸을 찔러 피를 냈다. 기름 먹인 주머니에 자신의 붉은 피를 받아서 잘 봉한 뒤에 바다 깊숙이 던져 넣었다.
 
그때 커다란 조개 한 마리가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오더니 입수관으로 그 피를 빨아들였다. 남자는 그 후로 3년을 기다렸다. 조개가 피를 빨아들인 뒤 3년이 지나 바다 밑으로 내려가 그 조개를 끌어올렸다. 조개의 딱딱한 껍질을 가르자 붉은 진주 한 알이 나왔고 남자는 그 진주를 얻은 뒤 친구와 뭍으로 나왔다. 이제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까지 가지게 됐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켜본 친구는 붉은 진주가 탐이 나서 어떻게든 그걸 빼앗으려고 틈을 보고 있었다.
 
‘이보게. 우리 저기 우물에 가서 물을 좀 길어오세.’
 
친구는 남자를 우물로 데려가서 그대로 깊은 우물 속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그리고 뚜껑을 덮은 뒤 서둘러 친구의 붉은 조개를 챙기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천만다행으로 죽지는 않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가만히 웅크린 채 어떻게 이 깊은 우물을 빠져나가야 할지를 궁리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자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물 속에는 날렵한 사자가 다닐 정도의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그 좁은 우물 속에서 자칫하다가 사자에게 잡혀 먹힐 판이어서 남자는 죽은 척하고 있었다. 다행히 사자는 남자가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을 먹고는 다시 그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남자는 구멍을 따라 나갔고 그렇게 간신히 우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난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아,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목숨을 건졌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요.”
 
부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겠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친구 집을 찾아갔다. 살아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멀쩡하게 나타난 그를 보자 친구는 겁에 질렸다. 그가 말했다.
 
‘그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겠지? 고생 끝에 내가 얻은 그 귀한 보물을 훔친 것도 모자라 나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난 입을 다물겠다. 그 대신 자네가 훔친 붉은 진주를 내놓아라.’
 
친구가 몹시 당혹해서 서둘러 진주를 꺼내서 돌려주었다. 남자는 그것을 잘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이제 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
 
“그렇다, 아난이여. 남자는 붉은 진주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고, 그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의 어린 자식들이 그 붉은 진주를 가지고 놀면서 이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이 구슬은 정말 예쁘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났을까?’
 
‘그건 옷 주머니에서 나왔어.’
 
‘아냐, 우리 집 항아리 속에서 나왔어. 내가 본 걸.’
 
아이들의 아버지인 남자는 자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더니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부인이 웃는 이유를 묻자 그가 말했다.
 
‘나는 이 붉은 진주를 구하려고 내 목숨을 걸었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들게 얻었소.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내력을 전혀 알지 못하니 저런 말을 하는 것이오. 옷 주머니에서 꺼내니 이 진주가 주머니에서 났다고 말하고, 항아리 속에 담겨 있으니 그 속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지 않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 것이오.’
 
남자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부처님은 거듭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이여, 앞서 그대는 내가 이번 생에 부처 된 것만 보고서 전혀 어렵지 않게 이루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동안 나고 죽기를 반복하면서 공부하고 수행한 끝에 이번 생에 얻은 것이다. 그대는 그 일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금 얻은 것만을 보고서 그저 쉽게 얻었다고 말했으니 마치 저 아이들이 붉은 진주를 주머니나 항아리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중경찬잡비유경)
 
아난존자는 왕자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다 성을 나가 6년 고행한 뒤에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번 생만을 보았기 때문에 부처되기가 참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금생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만 가지 선업을 짓고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공을 쌓아야 한다. 그저 한 가지 일이나 행동 하나, 한 번의 몸으로 부처라는 경지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자들에게 부처님이란 존재는 어떻게 비춰질까요? ‘우리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라거나 ‘당신이 지금 그대로 부처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천만에요, 언감생심 어떻게 내가 부처님이 될 수 있겠어요?’라고 기겁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부처가 별 건가? 마음 한 번 잘 먹으면 그게 부처지.’라고 하면서 큰소리를 탕탕 칩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부처님이란 존재를 오해하고 있는 데에서 온다고 봅니다. 사실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단, 거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랜 시간, 수도 없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조금도 생색을 내지 않고 행여 공이 돌아온다면 전부 성불하는 데로 회향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부처님은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나의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거나 손해를 끼치는 자들을 멀리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기꺼이 그들마저도 포용하고 그들을 위해서도 즐겁게 자신을 희생하는 일(보살행)을 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 즉 보살행을 줄기차게 해 오신 끝에 부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가 별거냐?’라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됩니다.
 
사실, 부처되는 일뿐이겠습니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거저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남의 고생은 고생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남이 이룬 것은 다 쉽게 거저 이뤄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남의 떡은 늘 커 보입니다. 그에 비하면 내 인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삶이었고, 그런데도 내게 오는 보상은 다른 이들에 비해 별 볼 일이 없는 것 같아서 허무하다고 탄식합니다.
 
무엇이든 공을 들여야 합니다. 한 번의 노력으로는 모자랍니다. 턱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성공이 부럽다면 성공하기까지 그가 공들인 시간과 노력을 먼저 헤아려봐야겠지요. “나도 저 사람처럼 성공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면 “나도 저 사람처럼 공들이고 노력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과거의 부처님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해야 할 차례입니다.
7면-삽화.jpg
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