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종교생활

밀교신문   
입력 :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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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어떠한 예고도 없이 우리를 닥쳐왔습니다.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2020년은 통째로 암울한 현실의 모습으로 기억되며 어느 듯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랐습니다. 백신도 치료약도 확실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들은 이름조차 생소한 질병이 놓은 덫에 털썩 발목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세상은 멈추고 말았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머물러 있던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픈 요즘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겐 정박자로 가지 못하고 엇박자로만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2020년 11월 현재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긍정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속을 헤맬지라도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종교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간의 삶과 정신에 마치 유전자처럼 깃들어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 만큼 종교는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를 해석하는 개인적 차원은 물론 공동체의 연대감이나 도덕적·윤리적 가르침을 제공하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사회가 극도로 고도화되어 있는 현대 물질시대에는 종교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강화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인류는 극심한 좌절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거기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19’는 생명의 실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합니다. 현대문명의 미혹된 어두움이 이 병을 낳았다고 봅니다. 물신숭배주의 사상과 감각적 기쁨에 매몰된 우리 삶의 방식이 이 병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코로나19’는 정녕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함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선이든 악이든 어떤 영적인 뜻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이라 하고 ‘당체법’이라 부릅니다. ‘코로나19’는 정녕 우리 인류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서로 나누고 이야기해야 하지요. 이제는 미혹의 문명을 넘어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가야 할 시점입니다. 그 길을 종교가 제시해 주어야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는 분명 그 길이 있습니다.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바탕으로 인간·자연·사회가 어우러지는 깨달음의 문명으로 담대하게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위기는 분명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성찰’이라는 과제를 통하여 ‘성숙’의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코로나 위기가 인류에게 던져주는 과제는 자연 생태계와 환경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바라는 것은 그러한 위기와 과제를 통하여 코로나는 우리가 하나임을 자각하고,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게 하는 ‘성숙’의 모습입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돌아보고 살펴보는 조견(照見)과 내관(內觀)의 시간을 통하여 지심참회를 이끌어 내고, 잃어버린 본성(本性)을 밝혀가는 깨달음의 계기가 되어야합니다.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비싼 수업료를 내고 우리가 얻을 것은 분명 얻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종교의 모습은 그렇게 낙관적인 모습만은 아닙니다. 코로나 위기 때문에 각 종교마다 ‘온라인 쪽으로 진출해야 된다’ ‘좋은 콘텐츠를 양산해야 된다’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작금의 종교문화를 들여다보면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종교의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가 많습니다. 온라인에서 살아남는 거는 생존 목표이고, 각 종교는 종교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당이나 법당의 대형화, 그리고 신도들을 많이 끌어 모을 생각만 하지 말고, 한 명이라도 천국으로 보내고, 한 명이라도 견성의 길로 나아감에 도울 수 있는 초기의 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947년 진각종 창종의 당위성은 ‘각성종교(覺性宗敎)’의 부재였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은 ‘사상적 물질적 혼란으로 모든 질서가 문란함에도 각성종교가 일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민거개가 대소병은 막론하고, 의약으로는 완치할 수 없는 질병이 말할 수 없이 허다하였든 특수한 시대’였습니다. 진각종 종문의 개창은 그러한 특수한 시대에 육자진언을 중심으로 한 ‘심인공부’를 통하여 어떠한 병환자라도 다 낫게 되는 방편의 문이었습니다. 그 방편은 바로 ‘본심’을 밝히는 방편이었고 ‘본성’의 회복이었으며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아 가는 ‘귀명’의 방편이었습니다. 종교의 왜곡과 불교의 왜곡을 바로잡고, 불법(佛法)의 근본을 바로 이어가기 위한 회당대종사의 자내증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혁명에 가까운 불교개혁이었습니다. 2020년 오늘의 인류위기의 현실을 되돌아 살펴보면 진리법계에서는 우리 인류에게 던져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종교의 본질을 찾아가는 종교개혁 내지 진각종 창종의 근본정신을 되살려 가야합니다. 본성을 깨달아가는 참 진리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진리를 체험할 수 있고, 진리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종교문화로 가야합니다.
 
우주법계는 스스로의 자정(自淨)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평형 혹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면서 균형이 무너졌을 때 다시 균형을 잡도록 하는 정화의 프로그램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 우주의 본질(本質)이고 인간의 본성(本性)입니다. 코로나 위기는 그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작용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건강해지려는 본질과 본성의 활동인 셈이지요. 그렇기에 내재되어 있는 프로그램의 작용과 본성의 움직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몸이 피곤하고 아프면 몸의 균형이 깨어졌으니 몸을 쉬어주라는 신호입니다. 마음이 피곤하고 아프면 마음의 균형을 다시 잡도록 하라는 당체법입니다. 만물의 평화와 조화(造化)로움은 우주법계의 본질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과 안식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성(本性)의 회복입니다. 심인(心印)을 밝히는 것이고 불성의 현현(顯現)입니다.
 
병에 걸리는 것도 자신이고 병을 이겨내는 것도 자신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에 균형을 잃었을 때 병에 걸리고, 그 잃어버린 균형을 다시 찾았을 때 병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 자신의 몫이지요. 완벽한 균형 상태, 즉 본성의 회복이 ‘나’를 살려내고 우리를 숨 쉬게 합니다. 그 핵심이 종교의 본질이고 진각종문을 개창한 당위성입니다. ‘육자심인 - 옴마니반메훔’ 진언염송을 통하여 본심을 찾고 심인을 밝혀나가는 수행은 나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지구촌의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고, 우주법계의 본질을 깨달아가는 종교적 실천입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