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전염병이 돌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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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이 질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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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강대국인 코살라국의 연로한 바라문들이 부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이들은 계급으로도 사회의 최고위층이었고, 막대한 재산까지도 거느린 대부호였으며 나이도 아주 많았습니다. 나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고대 인도 사회에서, 바라문 계급 출신에다 대부호이고 연로하기까지 하다면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존중을 받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이 든 바라문들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타마시여, 요즘의 바라문들은 예전의 바라문들이 실천했던 그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부처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의 바라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전 바라문들은 요즘 바라문들과 달랐다는 말이지요.
 
‘바라문’이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의 지식인 계층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그 당시에는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이들이 바로 바라문 계급이었으니까요. 조금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 시대 양반이자 선비 정도로 짐작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부처님은 나이가 많고 부와 권력을 갖추고 신에게 열심히 제사를 지내는 바라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 본래 바라문들은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는 수행자였습니다. 철저하게 고행을 하면서 욕망을 다스렸고, 소유물을 지니지 않고,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면서 신에게 이르는 청정한 수행을 고집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바라문에게 진실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애초에 바라문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이성과의 성관계를 일체 하지 않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아내와는 서로 사랑하며 함께 화목하게 살아갔습니다. 계를 잘 지키고 정직하고 친절하고, 절제하고, 온화하였고 남을 해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쌀과 침구와 의복과 버터와 기름을 올바르게 모아서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 당시 바라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알았고,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안락하고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바라문들 사이에 이성을 탐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귀족 여성들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더니 훌륭한 말이 끄는 수레를 탐내기 시작했고, 멋진 집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소떼와 미녀들을 거느리며 인간 세상의 막대한 부를 누리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권력자인 왕에게 다가가서 권했습니다.
 
‘왕이시여,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많은 재물로 큰 제사를 지내십시오.’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를 받고 엄청난 규모의 제사들을 지냈습니다. 제사를 위해 가축들을 희생했고, 인간도 희생했으며, 온갖 행태의 제사가 넘쳐났습니다. 왕은 제사를 지낸 뒤에 바라문들에게 재물을 주었습니다.
 
재물을 얻어서 쌓는 재미에 빠진 바라문들은 더더욱 욕망이 쌓여 갔습니다. 그들은 또다시 왕을 찾아가서 권했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의 많은 재산으로 제사를 지내십시오.’
 
왕은 바라문의 권고를 받아들여 더 커다란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들을 거침없이 살해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습니까?
 
예전에는 세상에 질병은 세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탐욕과 굶주림과 늙음이었지요. 하지만 많은 가축들을 서슴지 않고 죽이게 되자 이 세상에는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의롭지 못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생명들을 무참히 죽이는 일이 오래전부터 벌어졌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자들은 정의를 파괴한 것입니다.”
 
‘숫타니파타’에 들어 있는 경(브라흐마나담미까 숫타)의 내용입니다. 경 속에서 세상에 질병이 많이 생기게 된 원인이 다름 아닌,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 동물들을 서슴지 않고 무참히 살해한 까닭이라고 보는 이 관점은, 지금 중국 우한에서 터져 나온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대체 이런 전염병이 왜 생겨났는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한 대학에서 멸종 위기 포유류 천산갑에서 사람에게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천산갑에서 나온 균주 샘플과 확진 환자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게놈 서열이 99퍼센트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중국의 화난농업대학 연구진이 밝힌 것입니다. 2016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천산갑은 포획이나 거래를 할 수 없지만 보양에 좋다는 믿음 때문에 중국에서 고가에 밀거래되고 있으며 그 결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이 질병의 정확한 원인으로 확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이런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정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합니다.
 
부처님은 나이 든 바라문들에게 세상에 질병이 창궐하는 데에 그대들의 욕심이 근본원인이라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좋은 집과 멋진 이성과 근사한 수레와 수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고픈 욕망 때문에 권력자를 부추겨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을 도살하게 한 바라문들의 모습은 참으로 닮아 있습니다.
 
‘찬집백연경’(제2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염병이 돌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마을에 들어가 그들을 치유하고 위로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증일아함경 제32권)에도 같은 내용이 조금 다르게 실려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머물고 계실 때 ‘나라(那羅)’라는 마을에 전염병이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에 기도를 올려서 전염병을 없애달라고 빌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지요. 그때 마을의 한 불교신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머무시면서 중생 모두를 이롭고 편안해 지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불러서 이 전염병의 재앙에서 구원해달라고 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처님, 모쪼록 대자대비하신 마음으로 저희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스런 외침에 귀를 기울이시던 부처님은 그 소식을 듣고 즉시 제자들과 함께 그 마을로 향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들, 병에 걸릴까 겁에 질린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위로해주면서 좋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내도록 권하셨지요. 경전에 따르면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역신)이 부처님의 그 교화에 겁을 내고 한꺼번에 달아났고, 그 마을은 이후로 병고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전염병이 사라지자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꽃과 향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친 뒤에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감사의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의 일이라, 질병을 대하는 모습에는 괴리감이 있습니다. 병에 걸리면 부처님을 찾기에 앞서 병원부터 찾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염병은 귀신이 퍼뜨리는 것이 아님은 말할 가치조차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의 이런 내용은 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전염병에 휩싸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두려움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이런 병이 왜 찾아왔는지, 왜 내가 병에 걸렸는지를 생각하다보면 한없는 절망에 사로잡히고, 어쩌면 원망하는 마음도 커져갈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마음은 전염병에 맞서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이 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모두가 선량한 마음을 품고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힘을 합쳐 병을 고치고 세균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도 바이러스 감염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비록 경전에서는 믿음의 힘으로 질병 귀신을 물리쳤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두 팔을 걷고 힘을 합쳤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세상은 전염병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럴 때 늘 고개 드는 것이 있습니다.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매점매석을 한다거나, 정확한 정보를 은폐하고 왜곡한다거나, 일부 사람들에게만 치료가 집중된다거나 하는 일입니다.
 
전염병은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것이라고 경전에서는 말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마음을 합쳐 선한 것을 생각하고 선업을 지으면 물리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모쪼록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사람들의 땅에서 사라져 세상이 다시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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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