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35.금강색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9-11-11  | 수정 :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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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의 밧줄로 붙잡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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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이란 볏짚이나 삼 따위를 굵고 기다랗게 꼰 줄을 가리킨다. 어떠한 물체를 매거나 얽거나, 연결하거나, 또는 끌거나, 당기거나, 매달거나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밧줄의 용도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 용도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매어서 묶는다는 기능과 두 가지 이상의 물체를 연결한다는 기능을 들 수 있다.
 
경전에는 종종 중생이 갖고 있는 올바르지 않은 집착을 밧줄의 얽매임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다. 구사론 등의 불교논서에서는 인생사에서 중생들을 묶는 밧줄에 아홉 가지가 있다 하여 구결(九結)이라 한다. 첫째는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 앞서는 애욕의 결박이고, 둘째는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음에 일어나는 성냄의 결박이며, 셋째는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결박이고, 넷째는 어리석은 무명번뇌의 결박, 다섯째는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찬 삿된 견해의 결박이다. 여섯째는 집착과 이에 따른 탐욕의 결박이고, 일곱째는 다른 이를 믿지 않는 의심의 결박이며, 여덟째는 시기하는 마음으로 남을 해치는 질투의 결박이고, 아홉째는 받기만 좋아하고 남에게 베풀지 않는 인색의 결박이다. 이와 같은 결박은 한 번 묶이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고 점점 더 심하게 조여온다. 그리하여 밧줄에 꼭꼭 묶인 것처럼 자신을 부자유하게 하며, 수없는 생애 동안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게 한다.
 
매어 묶는다는 밧줄의 용도와 더불어 많이 쓰이는 용도는 두 물체를 이어주는 것이다. 밧줄은 절벽에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을 구조할 때에 사용하고, 밧줄로 만든 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한다. 우리나라 민속놀이에서 밧줄은 정월 대보름날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줄다리기할 때 쓰던 도구로서, 밧줄로 인해 두 마을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죽음의 위험한 장소에서 생명의 안락한 장소로 연결시켜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대장엄경론>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 인도 어느 나라의 왕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세우려고 이 방면에 탁월한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일을 시켰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훌륭한 탑을 완성하였으나 석탑이 준공된 날에 왕은 이 기술자를 높은 탑 꼭대기에 홀로 남겨 둔 채 사다리나 밧줄 등 탑꼭대기와 연결된 모든 것을 치워버렸다. 그것은 만약 이 기술자를 살려 두면 다른 나라에서 이 기술자를 시켜서 이보다 더 훌륭한 탑을 만들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머지 않아 왕의 이런 생각을 눈치챈 기술자는 좁고 높은 석탑 꼭대기에서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다만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전해들은 기술자의 가족들은 걱정이 되는 나머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구해 내려고 그날 밤에 몰래 탑 밑으로 갔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탑 위에 있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내려올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그는 원래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서 그것을 가늘게 찢어서 끈으로 꼬아 밑으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밑에 있는 가족들에게 일러서 우선 자기가 내려뜨린 가는 끈 끝에 다른 가는 끈을 잡아매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딸려 올라온 긴 끈을 끌어 올렸다. 그는 그것을 꼬아서 조금 더 굵은 끈으로 하여 다시 밑으로 내려보냈으며, 이렇게 몇 번 되풀이 하니 나중에는 아주 굵은 밧줄이 되었다. 그는 그것을 탑 꼭대기에 단단히 묶은 다음 그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기술자의 지혜는 굵은 밧줄이 되어 탑 꼭대기와 지상을 연결하는 생명줄이 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모두 밧줄을 통하여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연결하는 데에 활용한다. 연결에는 굳이 눈에 보이는 연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의 연결을 밧줄로 비유하거니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밧줄이 있다. 연인 사이에 사랑의 밧줄이 있으면 평생을 다정한 배우자로 행복하게 지낼 것이며, 친구 사이에 우정의 밧줄이 있으면 서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데에서도 밧줄과 같은 강한 흡인력을 갖는다면 중생교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금강계만다라의 서른 일곱 가지 역할 가운데에 밧줄처럼 중생을 이끄는 보살이 있다. 이 보살을 금강삭보살, 즉 금강의 밧줄을 가진 보살이라 일컫는데 실제로는 비단의 밧줄로 중생들을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붙잡는 보살이다. 이 보살의 지혜를 <삼십칠존례>에서는 ‘선교지’라 하는데, 잘 가르치고 인도하는데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삭보살의 밀호는 등지금강이며 금강라삭, 불공견삭관세음보살, 불공견삭보살 또는 금강삭천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견삭은 비단끈으로서 잘 이끌어들임[羂索引入]을 의미한다. <금강정경>에서 이 보살의 출생을 밝힌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때에 세존은 다시 일체여래의 중생들을 잘 이끌어들이는 삼매로부터 출생한 금강삼마지에 들어가 곧 일체여래를 이끌어들이는 진언을 자심으로부터 내어 송한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내자마자 구덕 지금강자는 일체여래의 중생들을 이끌어들이는 삼매의 대인을 이루고 금강삭보살의 몸을 출생하여 세존금강마니보봉누각 보문의 월륜 가운데에 머문다.”
 이 보살은 대일여래가 대비의 비단으로 짜 만든 밧줄을 가지고 일체중생을 이끌어들이기 위하여 삭인삼매에 주하여 출생시킨 보살이다.
<약출염송경>에 ‘금강견삭의 인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잘 이끌어들인다’고 하듯이, 금강삭이라는 밧줄을 가지고 사람들을 묶어 불도에 마음을 향하도록 함을 상징한다.
 
 <성위경>에는 다음과 같이 그 삼마지를 설한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견고하게 중생들을 이끌어들이는 방편의 밧줄과 같은 삼마지의 지혜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 잘 이끌어들이는 방편의 견삭삼마지의 지혜로부터 금강견삭광명을 유출하고 널리 시방세계를 비춘다. 일체여래와 성자들을 이끌여들이고 일체중생이 현실을 실제로 착각하는 진흙에 빠져 있는 것을 밧줄로 붙잡아 깨달음의 법계궁전에 편안히 머물게 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하기 위하여 공덕의 집을 위호하는 금강견삭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남문의 월륜에 머문다.”
 
이처럼 중생을 방편으로 이끌여 들여 이익케하는 것이 광대하므로 금강삭보살을 <금강정경>에서는 ‘중생익’이라 한다. 번뇌의 진흙탕속에 빠져 있는 중생을 밧줄로 붙잡아 올리고 잘 인도하여 교화의 이익을 주는 것이다. 사섭법 가운데 애어의 덕에 해당되는 보살이다. 앞서 금강구보살의 보시섭에 의해 불도에 가까이 다가온 중생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좋은 언어, 즉 애어섭을 통해서 불도에 견고하게 머물게 한다. 
 
 
<제불경계섭진실경>에는 다음과 같이 금강삭의 관을 설한다.
“행자는 삼매로부터 일어나 서방의 금강삭보살의 관문을 관하라. 스스로 이렇게 관상하라. 나는 금강삭이다. 먼저 구소한 일체의 천과 귀신 중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은 자를 도량에 들어가게 한다. 나는 대금강삭으로서 견고히 묶어서 놔주지 않는다.”
 
위의 글은 금강삭보살이 금강의 밧줄로 일체중생을 견고히 묶는다고 하는데,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을 견고하게 묶는 이유는 공을 의미하는 금강의 밧줄로 묶음에 따라 일체 윤회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밧줄이 끊어지며 다시 속박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보살의 성신회의 상은 백황색으로 오른손에 밧줄을 쥐고, 왼손은 권을 지어서 허리에 붙이고 있다. 이 인상은 금강삭에 상응함으로 해서 널리 일체를 두루 이끌어들어오게 하는 상이다. 이 보살의 진언을 송하면 중생을 진리의 바른 깨달음 안에 들어오게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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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교수/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