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34.금강구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9-10-04  | 수정 :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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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잘 불러모으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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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이 말은 순리에 따르며 인연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나 모든 것에 의지를 발동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겠다는 수동적 입장도 포함되어 있다. 갈 사람은 붙잡는다고 해도 가게 되며, 오는 사람 막는다고 해도 오기 때문에 인연 따라 물 흐르듯이 내버려 두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기는 하지만 법을 전하는 수행자로서 불도를 퍼뜨리는 데에 주어진 대로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지 않는 사람 오게 하고 가는 사람 오래 머물도록 노력하는 데에서 붓다의 자비를 읽을 수 있다. 혼자 와서 불도를 성취하고 떠난다면 세상 사람에게는 어떠한 이로움이 있겠는가! 보리수 아래에서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께서 범천의 권청을 거절하였다면 어찌 우리가 불도를 닦을 수 있었겠는가! 자신을 떠나간 다섯 명의 수행자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초전법륜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는가!
 
이 모든 것이 만나는 인연 거부하지 않고 떠나는 인연 붙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인연이란 주어진 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데에서 참된 인연의 의미를 볼 수 있다. 중생들에게 불도의 씨앗을 심어주는 인(因)을 통해서 언젠가 성불의 연(緣)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란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끌어모으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을 베풀어서 정법에 따르게 하고[보시섭], 항상 따뜻한 얼굴로 부드럽게 말하며[애어섭],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행을 하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고[이행섭], 동체대비심에 근거하여 중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일하고 생활함으로써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동사섭], 즉 사섭의 지혜를 쓰는 것이다. 마치 갈고리로 농작물이나 물건들을 쓸어 담듯이 네 가지 포섭의 지혜로 중생들을 껴안는 것이다.
 
금강계만다라 37존의 마무리를 담당하는 보살이 바로 사섭의 지혜를 활용하여 찾아오는 중생을 거부하지 않고 떠나려는 중생을 붙잡는 사섭보살이다.
 
사섭보살은 금강계만다라 월륜의 네 문에 머무르며 일체중생을 이익케하기 위해 타인을 교화하는 덕을 갖추고 있다. 이들 네 문을 지키는 보살들은 일체중생을 포섭하여 비로자나부처님의 법계 궁전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일체중생을 큰 갈고리를 가지고 끌어들여[금강구], 밧줄로 묶고[금강삭], 쇠사슬로 견고하게 한 뒤[금강쇄]에 방울을 흔들어서 즐겁게 하는[금강령] 네 가지 덕을 현실에 구현하는 보살들이다.
 
‘삼십칠존례’에서는 이러한 사섭보살의 공능을 각각 사섭지 금강구보살, 선교지 금강삭보살, 견고지 금강쇄보살, 환락지 금강령보살이라 표현하고 있다. 사섭지, 선교지, 견고지, 환락지의 네 지혜를 상징하는 사섭보살은 사불의 공양을 받아 그 능력을 배가한 비로자나불이 그 활동력을 구체적으로 현실에 실현시키기 위해 사방사문에 시현한 보살이다. 사보살 각각에 보시·애어·이행·동사의 사섭법이 해당한다. 여기에서 금강구보살을 사섭지라 하는 것은 금강구가 사섭보살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비로자나불이 아촉불에게 공양한 금강구보살은 아촉불의 활동인 보리심의 세계로 일체 유정을 인도하는 데에 힘을 배가시켜주는 모습이 표현된 것으로서 삼세제불과 중생을 잘 불러모아 끌어들이는 덕을 상징한다.
 
금강구보살은 금강계만다라 동쪽 문에 위치하며 밀호를 선원금강(善源金剛)이라 하고, 여러 경궤에서는 ‘금강구천’, 갈고리로 두루 불러모은다는 뜻의 ‘구소집’ 등이라 표현된다.
 
‘금강정경’에서 금강구보살의 출생을 밝힌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때 세존대비로자나여래는 다시 일체여래의 삼매인 금강구삼매로부터 출생한 살타금강의 삼마지에 드신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덕을 갖춘 지금강은 일체여래의 무수한 구소삼매금강인을 이루고 출현하고 나서 금강구보살의 몸을 출생하니, 저 금강구보살은 금강마니보봉누각의 금강문의 월륜 가운데에 머무르며 일체여래의 구소삼매를 행한다.”
 
대일여래가 대비로 갈고리처럼 모두 불러모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 삼매구대사삼매, 즉 구소삼매에 머무는 것이 금강구보살의 몸으로 상징된 것이다.
 
이 구소삼매는 ‘성위경’에 다음과 같이 설해진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청소금강구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 청소금강구삼마지지로부터 금강구광명을 유출하여 널리 시방세계를 비춘다. 일체여래를 금강계도량에 불러들이고 일체중생을 악취에서 건져내며, 무주 열반의 성에 머물게 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 하기 위하여 보리심의 집을 지키는 금강구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동쪽문의 월륜에 머문다.”
 
중생들에게 지옥 등 악한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잘 알고 이에 맞추어 열반의 성이라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마치 갈고리로 모든 것을 쓸어 담는 것과 같다. 비전을 제시하고 중생들의 정신적 바램을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금강구보살은 리더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금강구보살은 중생들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흐름을 잘 알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얻게 될 성취를 제시함에 따라 중생들은 믿고 따르게 된다.
 
사람의 변화는 감동했을 때에 온다. 진리의 가르침이 마음속 깊은 울림이 되어 마음이 움직이고 그 움직이는 힘에 따라 변화가 이룩된다. 금강구보살이 중생들을 이끌 수 있는 것은 불법을 통한 확신과 깊은 감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마치 갈고리로 농작물이나 작은 동물들을 죄다 긁어모으는 것처럼 불법에 목마른 중생들의 미혹을 없애고 확신에 찬 마음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모두를 잘 불러모음으로써 자비를 행한다.
 
이처럼 금강구보살은 이타를 실천하기 위하여 일체중생을 금강계도량에 불러들이고 무주 열반의 성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에 ‘금강정경’에서는 두루 구소함으로 해서 만다라를 집회하게 하는 금강구보살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제불경계섭진실경’에 ‘나는 금강구이다. 나는 모든 불과 보살들의 방편지혜인 대금강구이다’라 하는 것이다.
 
금강구보살이 사용하는 대금강구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금강의 갈고리로서 일체중생을 끌어들이는 방편지혜인 포섭의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삼십칠존례’에서는 ‘사섭지’라 하여 사섭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사섭은 또한 인간들 상호 간에 상호협조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여래가 중생구제를 위해 사용하는 네 가지 방편, 즉 보시섭·애어섭·이행섭·동사섭은 그대로 중생들이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자비의 활동내용이다. 더 나아가 그 사섭행의 대상에 인간과 천상뿐이 아니라 제천과 귀신까지 포함됨을 ‘제불경계섭진실경’의 다음 경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양손에 금강권을 결하고, 좌우의 검지를 펴서 조금 구부려 서로 굽히고 그 두 소지의 양 끝을 서로 향하고 모든 제천과 귀신들을 세 번 구소하여 도량에 들어가게 한다. 잠깐이라도 이 인을 결하면 수행자로 하여금 큰 힘을 얻어 일체의 모든 천과 귀신 등을 부려서 온갖 사업을 성취하게 한다.”
 
이 경문에 표현하는 금강구보살의 인계는 중생들이 윤회하는 육도 가운데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금강계의 도량에 끌어들여 교화하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이상과 같은 구소의 덕을 나타내기 위한 금강구보살의 삼매야형은 갈고리가 붙고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고저이다. 성신회의 상은 오른손으로 큰 갈고리를 손에 들고, 왼손은 허리에 붙이고 있다. 이 인상은 금강구소의 법에 상응하여 모든 훌륭한 교화의 업으로써 중생들을 잘 불러들이는 상이다. 이 보살의 진언은 널리 구소하는 공능이 있으므로, 금강구보살의 진언을 송하면 중생을 깨달음의 성에 구소할 수 있다고 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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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교수/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