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33. 금강도향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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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향기로 만나는 보살

<진각교전>에도 인용되어 있는 <법구비유경>에는 향기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땅에 버린 종이 있어 부처님이 이르시되 ‘이 종이를 주워보라’. 비구가 곧 가르침을 받들어서 종이 주워 부처님께 말씀하되 ‘향을 쌌던 종이니다. 이제 비록 향 없으나 향기 여전하나이다.’ 부처님이 다시 갈 때 땅에 새끼 있는지라 비구에게 말씀하되 ‘이 새끼를 주워보라.’ 비구가 곧 새끼 주워 부처님께 말씀하되 ‘비린내가 많이 나니 고기 묶은 새낍니다.’ 부처님이 이르시되 ‘대저 세간 만물들은 본래 청정한 것이나 인연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을 일으키니 현명한 이 친근하면 도의 절로 높아지고 어두운 이 사귀며는 재앙 죄업 일어나니 비유하면 저 종이와 새끼토막 같은지라.’
 
오직 향에 가까우면 자연 절로 향내나고 고기 묶어 비린내가 나는 것과 다름없어 점점 깊이 물이 들고 나쁜 습성 될지라도 모두 각각 제 스스로 깨쳐 알지 못하니라.”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세상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부류끼리 만나지만, 오래 살아온 가족들의 얼굴이 닮는 것처럼 어울리다보니 같은 부류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가까이 하는 것은 서로 영향을 주어서 닮아가는 일이다. 향이 종이에게 향을 주어서 향기나는 종이가 되고, 생선은 새끼줄에게 생선내를 주어서 비린내가 나게 한다. 즉 무엇인가는 다른 것에게 자신을 주어서 영향을 미치면서 같은 부류가 된다. 이렇게 서로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마치 매일 먹는 음식물이 나의 몸을 지탱하기도 하지만 구성요소가 되는 것과 같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나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것처럼 무엇인가와 만나지 않으면 연기를 이룰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기적인 존재이므로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모든 존재의 실상이다.
 
사람들이 지난 과거를 회상할 때에 누구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였고, 어떤 생각을 공유하거나 감정을 교류했던 일을 떠올릴 것이다. 책을 보아도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되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해도 다른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만나는 것이 경험을 이룬다. 우리의 기억은 이렇듯 내 몸 외부의 무엇인가와 관계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몸 내부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 일도 없다. 즉 대부분의 기억에서 자신의 몸 내부의 오장육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신의 심층의식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나의 기억을 이루는 내용은 주로 타인이나 다른 대상과의 관계성에 치중되어 있다. ‘나’라고 하는 것은 나와 관계한 모든 것을 그 내용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연기적인 존재란 관계성을 의미하기에 이러한 가정이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만남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내일의 만남이 나를 만든다라고.
 
그래서 <실행론>에서는 그 만남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가져갈 것을 일러준다.
 
“관행자는 심인전당 가까이해 사는 것이 선지식을 친근함에 제일 좋은 것이니라. 심인전당 가까우면 선우 절로 친근하고 심인전당 멀리하면 외도 절로 친근하며 자성불공 궐없으면 선우 절로 친근하고 자성불공 궐하는데 악우 절로 친근한다.”
 
관행자가 애써 만나야 할 대상은 올바른 마음을 가져서 맑은 향기를 풍기는 자이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 향기를 내면서 그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청정하게 하는 보살이다.
 
이렇듯 맑은 향기로 그를 만나는 모든 이들을 청량하게 하는 보살을 금강계만다라에서는 금강도향보살이라 한다. ‘금강도향천녀’ 또는 두루 청정하게 한다는 의미의 ‘보청금강’이라 하는 금강도향보살의 출생에 대해 <금강정경>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때에 세존불공성취여래는 세존대비로자나여래의 공양사업에 보답하기 위해서 곧 일체여래의 도향공양삼매로부터 출생한 금강삼마지에 드신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내자마자 곧 일체도향공양장엄을 나타내며 금강도향대명비의 형상을 출현하고 세존금강마니보봉누각의 모서리 왼쪽 월륜 가운데에 이치답게 머무른다.”
 
즉 북방의 불공성취불이 스스로 도향공양삼매에 들어가 유출한 것으로 몸에 향을 발라 청정히 하는 도향의 삼매가 금강도향의 출생처이다. 이 도향은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아주 뛰어나며 번뇌가 없는 오온(五蘊)의 향으로써 중생의 몸과 마음을 쐬어서 번뇌의 혼탁한 열기를 사라지게 하고 오분법신(五分法身)의 향을 이루게 한다. 또한 방편으로써 중생에게 수여하여, 모든 독의 열을 서리와 눈처럼 풀어주는 전단도향으로서 구름과 바다같은 도향의 공양을 일으키게 하는 공능이 있다. 몸에 향을 바르는 것은 정결하게 몸을 씻은 후가 아니면 안된다. 먼저 몸을 청정히 한 뒤에 그 몸에 향기가 나게 하는 것이므로, 모든 번뇌의 때를 없애고 청량하게 하는 청정의 덕으로서 대일여래에 공양함을 이 보살이 상징한다. 여기에서 청정한 몸이란 행동과 언어가 율의에 어긋나지 않고 올바른 습관을 갖는 정신적 청정을 의미한다.
 
<성위경>에는 비로자나불의 금강도향운해삼마지로부터 금강도향광명을 유출하여 일체중생이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짓는 율의에 어긋나는 잘못을 깨뜨리고 다섯 가지 청정한 법신을 획득하게 한다고 설한다. 여기에서 도향을 몸에 바르는 것은 신구의의 삼업으로 짓는 잘못을 제거하는 것을 나타내므로 이것은 바로 대일여래에 대한 최상의 공양이 된다. 그러므로 이 보살의 진언을 송하면 열뇌를 없애어 청량을 얻는다고 한다.
 
<제불경계섭진실경>에는 다음과 같이 도향의 공양에 대해 설하고 있다.
 
“나는 금강도향이다. 나는 지금 가장 좋은 백단도향을 시방 한량없는 세계의 대허공 가운데에 충만하게 하는 것을, 마치 큰 구름이 세계를 두루 채우는 것과 같이 해서 시방의 모든 보살을 공양한다. 양 금강권으로 좌우의 목 내지 가슴과 배를 마찰하며 곧 이렇게 관상하라.나는 지금 이 우두전단의 가장 좋은 도향을 가지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 내지 중생의 몸에 바른다.”
 
이처럼 금강도향보살은 선교방편지로써 자리이타의 사업을 성취하고 무명번뇌를 제거하여 청량을 얻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래서 <삼십칠존례>에서는 ‘계청량’이라 하는데, 이것은 청정한 계행을 통하여 시원하고 맑은 몸과 마음의 경지에 머문다는 뜻이다. 계에 철저하다면 몸과 마음이 얽매일 것이 없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청량이 된다. 즉 불공성취여래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모든 활동을 정화하고 창조의 활동을 증진시켜서 대비로자나불에게 공양하는 모습이 금강도향으로 표현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십선(十善)을 행해 십악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밀교 삼매야계의 정신에 투철한 것이다. 삼매야계는 <대일경>에 설하는 3구법문의 실천으로서 계의 바탕을 청정한 보리심으로 삼고 있는데, 그것은 <대일경>에서 설하듯이 희고 깨끗한 신심이 바탕이 되어 출세간적인 삼매의 수행과 관련된다. 희고 깨끗한 신심이란 바로 밀교계사상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 밀교정신을 파악하고 있으면 결코 계를 범하거나 반도덕적이 되지 않는다. 즉 청정한 보리심으로 온몸을 향기롭게 한 경지를 ‘계청량’이라 할 수 있으며, 도향을 몸에 바른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은 공능을 상징하기 위해서 성신회의 형상은 왼손으로 청색의 도향기를 가지고 오른손의 작은 손가락을 그릇에 담고 있다. 이 인상은 일체의 온갖 고뇌를 없애는 상이다. 공양회의 형상은 도향기를 얹은 연화를 양손으로 들고 있다.
 
<약출염송경>에는 금강도향의 인계를 결하면 중생들을 청량한 세계로 구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청정한 계행을 통해 중생에게 봉사하고 중생들도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도향인을 결함으로 해서 서원바라밀을 속히 채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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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교수/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