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27.금강만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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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꽃다발을 든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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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이를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환희하게 한다. 환희 가운데 주고받는 꽃에도 그 숫자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 송이는 오직 상대방만을 위한다는 의미가 있고, 세송이는 삼각구도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사랑을 의미하며 일곱송이는 행운, 아홉송이는 꽉차는 숫자로서 만족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겠지만 꽃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부여되는 의미도 다양해지며 이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숫자를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다발은 주고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파안대소하게 하며 만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념할 만한 날에 수많은 꽃으로 장식한 꽃다발을 건넨다. 그 꽃다발에는 풍요와 함께 만족과 기쁨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올림픽과 같이 큰 대회에서 우승자의 목에 거는 꽃목걸이는 오랜 세월 동안 정진했던 노고에 대한 찬탄이며 경사스러운 날에 주고받는 꽃다발은 이 날을 위해 애써왔던 지난날의 수고에 대한 치하이다.
 
일상적인 중요한 행사만이 아니라 꽃다발은 그 아름다움과 청정한 성품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성스러운 분에게 공양하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풍속이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비구가 꽃으로 몸을 장식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공양받은 꽃다발은 다만 방안에 걸어 두거나 또는 부처님께 공양하는데 사용하였다. 공양된 꽃다발은 부처님 앞에 놓여서 그 자리를 장엄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여러 경전에서 볼 수 있다. ‘백연경’에 의하면 바라나꽃으로 꽃다발을 만들고 아울러 채집한 꽃으로 부처님 앞에 뿌린다고 한다. 혹은 불상 앞에 꽃을 길게 엮어서 둥근 바퀴 모양으로 만든 꽃다발을 나란히 줄지어 놓기도 한다.
 
꽃다발을 가섭탑에 바치면 그 공덕으로 천계에 태어나 금색의 몸을 얻는다거나 한다발의 꽃이 법계에 두루하여 광대무변한 공양으로 된다는 식으로 꽃다발 공양의 공덕에 대해 기록한 경전이 많다. 꽃공양물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있다. ‘다라니집경’ 6권에는 공양하는 꽃나무로 버드나무가지·잣나무가지·대나무가지·과실나무가지나 온갖 꽃나무 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별도로 ‘소실지갈라경’ 공양화품에는 침향과 상반목이라는 두 종류의 공양물이 있다고 하며, 그 중에서 침향은 청련화와 아주 흡사하고 상반목은 언제나 푸른 상록수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언제나 공화로서 사용한다. 그러나 냄새나는 꽃·가시나무에서 핀 꽃·쓰거나 신 맛이 나는 꽃·이름없는 꽃 등은 공화로 사용하지 않는다.
 
밀교에서 일반적으로 공양되는 꽃은 불부·연화부·금강부나 혹은 수법의 종류가 다름에 따른 차별이 있다. 공양되는 꽃은 긴 시간이 지나도 마르거나 시들지 않아야 하는데, 이것은 죄장이 이미 제멸되었거나 기원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재를 지낸 다음에 흩뿌리는 꽃 중에서 싱싱한 것은 이 꽃이 있는 곳이 현성이 모일 때에 앉았던 자리임을 나타낸다.
 
꽃다발 중에서도 금강만(金剛鬘)이라 불리우는 것이 있다. 금강만에서 만이란 생화를 실로 묶고, 혹은 한줄로 이어서 만든 꽃다발을 가리킨다. 꽃은 반드시 일정하지 않으나, 주로 향기가 많은 것을 고른다. 오랜 시간 마르지 않은 꽃은 상화(常華)라고 하여 종이나 나무로 만든 꽃에 금박을 입힌 조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후세에는 주로 금속으로 만든 꽃을 많이 만들어 불전의 장엄구로 사용하였다. 이 모든 것이 마음속 깊이 담긴 존경과 감사의 뜻, 그리고 헌신과 보시, 그리고 이러한 공양을 통한 지족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밀교에서는 금강계만다라의 8공양보살의 하나인 금강만보살과 화만비나야가(華鬘毘那夜迦), 그리고 태장만다라의 다섯 공양 가운데 하나인 화만보살의 삼매야로 꽃다발을 사용한다. ‘대일경 입만다라구연품’에는 ‘진언을 수지하는 수행자여, 모든 성스러운 존을 공양하는 데에는 기쁨을 담은 꽃을 올려야 한다. 아주 희거나 노랗거나 붉은 색인 연꽃과 푸른 연꽃과 용화분나가와 계살라와 말리꽃과 득벽람과 첨복과 무우와 저라검과 발타라와 사라 등은 모두 신선하고 기묘한 꽃으로 길상하며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니 모아서 꽃다발을 만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공양해야 한다’고 설한다.
 
‘소실지갈라경’에는 ‘화만법을 성취하려면 사디화를 가져다 꽃다발을 만들라’고 한다. 그런데 ‘수호국계주다라니경’에서 ‘갖가지 보배로 화만을 만들고 이로써 장엄한다’고 하는 것처럼 불전을 장엄하는 화만은 갖가지 보배를 조각해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금강만은 보배의 꽃다발이다. 보배꽃다발을 든 보살을 금강만보살이라 하며, 누구나 이 보살을 보고 만족하고 공경한다고 하여 밀호를 애경금강이라 한다.
 
‘금강정경’에 의하면 대일여래가 보생불로부터 받은 복덕의 공양에 보답해서 보만관정삼매로부터 화만을 나타내어 남방 보생불의 왼쪽 월륜에 머무르게 하여 그 공덕장엄을 찬탄하는 모습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생불은 힘을 더욱 증장시키게 된다. 대일여래로부터 받은 보배의 꽃다발은 장엄한 빛을 발하며 주변을 밝게 한다. 금강만보살의 앞에 등장하였던 금강희희보살의 적열심은 보리심의 체이고 이 보배꽃다발은 보리심의 권속, 즉 보리심에 속한 덕을 나타낸다. 두 보살의 상징을 통해서 기쁜 마음이 꽃다발의 무수한 꽃을 통해 주변으로부터 널리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성위경’에는 다음과 같이 이 보살의 삼마지를 설한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금강화만보리분법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 금강화만보리분법삼마지지로부터 금강꽃다발의 광명을 유출하고 널리 시방세계를 비춘다. 일체여래께 공양하고 모든 중생들의 추하고 천한 모습을 없애고,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뛰어난 몸을 획득하게 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하기 위하여 금강화만천녀형의 보살이 되어 비로자나불의 서남쪽 모퉁이의 월륜에 머문다.”
 
이처럼 남방 보생불의 덕을 공양하는 보살로서 이 보살이 표치하는 꽃다발은 이치와 지혜의 구족, 그리고 만가지 덕을 개발하는 모습으로서 이것은 보생불의 삼마지에 상응하는 것이다. ‘약출염송경’에 ‘금강만의 인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미묘한 모습을 얻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보생불의 빛나는 복덕취의 생활을 보배 꽃다발로 찬탄하는 것이다. 또한 ‘삼십칠존례’에 이구증, 즉 티끌없는 비단이라 한 것은, ‘금강만공양보살의 인계를 결함으로써 이 인계의 가지로 말미암아 정계바라밀을 채운다’고 하는 것이다. 빛나는 보배의 꽃다발은 청정한 계행으로 이룩되는 행주좌와의 모든 위의를 나타내어 주변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 보살의 수인은 두 손으로 하는 금강권으로서 티없는 청정한 아름다움은 청정한 계로부터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공양받는 불과 보살에는 미래의 불보살도 포함될 것이고, 그렇다면 금강만보살은 일체의 중생들에게 우주대생명이 가진 끝없는 장엄한 광경을 끊임없이 이어받고 있음을 일깨우는 보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금강만보살을 만날 때에 보배꽃다발을 들고 환희하는 만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이로 인하여 우리들은 스스로 지니고 있는 성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더욱 증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금강만보살의 형상은 성신회에서 백황색으로 양손에 화만을 쥐고 가슴 앞에 대고 있다. 실로 연결한 꽃으로 만든 화환인 만을 양손으로 들어 올리며, 보생여래가 중생 속에 숨겨진 보배의 특성을 찾아내어 찬탄해서 공양한다. 이 인상은 금강보만의 법에 상응하며 온갖 부처가 베푸시는 관정을 받는 모습이다. 보리심의 복덕원만한 덕을 내증으로 하는 금강만보살의 진언을 염송하면 적열과 환희를 얻기 때문이다. 공양회의 상은 꽃을 얹은 연화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금강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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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교수/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