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 23.금강호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9-02-25  | 수정 :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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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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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초기 경전 숫타니파아타에 나오는 전도의 선언으로 유명한 이 글귀는 불법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둘도 아니고 묵묵히 혼자 가서 법을 전하도록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코뿔소의 뿔과 같은 모습으로 가라고 한다. 코뿔소의 뿔은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무기이다. 즉 혼자라는 것과 방어한다는 의미가 이 구절에 담겨있다. 중생을 교화하면서 맞닥뜨리는 외로움과 어려움을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이겨내면서 나아가라는 뜻이다.

보살의 정진이 중생을 교화함이라면 교화에 따르는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중생들 가운데 때로는 교화하기 힘든 대상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교화하는 보살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도 있다. 이러할 경우 보살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다면 중생교화의 묘업은 이룰 수 없다. 삼십칠존 가운데 금강업보살 다음에 등장하는 금강호보살은 이렇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견고한 갑옷을 가진 보살이다.

'금강정경'에는 ‘일체여래의 대정진을 의미하는 견고한 갑옷’과 ‘정진의 갑옷 금강호’라고 하며, 여러 경전에 ‘금강정진보살’, ‘승리하는 정진의 대보살’ 등으로 표현된다. 밀호는 ‘정진금강’이고, 백팔명찬에는 ‘금강수호·마하무외·금강갑주·대견고·상수정진·금강정진’이라 하여 누구도 적대할 수 없는 금강호보살의 특징을 찬탄하고 있다. '금강정경'에서 그 출생을 밝힌 문단은 다음과 같다.
“이때 세존은 다시 극난적정진대보살삼매에서 출생한 갈마가지의 금강삼마지에 들어가시니 이 명칭을 일체여래의 선호삼매라 한다. 곧 일체여래심이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나오자마자 저 덕을 갖춘 금강수는 견고한 갑옷과 투구의 형태를 이루어 출현하고 나서 곧 세존 대비로자나여래심에 들어가 합하여 한 몸이 된다. 이로부터 거대한 금강의 갑옷을 입은 형상을 출현하고 저 지극히 어려운 적을 상대로 정진하는 성품은 금강살타삼마지에서 아주 견고한 까닭에 합하여 한 몸이 되어, 극난적정진대보살의 몸을 출생한다.”

극난적정진대보살신, 즉 금강호보살은 일체여래의 선호삼매로부터 출생하였으며, 금강의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 보살의 삼매와 삼매야형에서 그 스스로를 보호하며 아주 어려운 적을 대상으로 정진하는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인용문에서 난적은 금강의 갑옷을 입었으므로 적대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위경'에는 그 어떤 난적도 물리치는 금강호보살의 견고한 삼마지지를 설한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금강호의 큰 자비로 장엄한 갑옷과 투구의 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스스로 수용하고자 금강호의 대자비로 장엄한 갑옷과 투구의 삼마지지로부터 금강갑옷의 광명을 유출하여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고, 폭악하며 분노하는 중생을 잘 다스려 빠르게 자비심을 얻게 한다. 돌아와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하기 위하여 금강호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불공성취여래의 오른쪽 월륜에 머문다.”

폭악하며 분노하는 중생은 보살의 교화활동을 방해하는 사악한 무리와 보살이 활동하는 데에 따르는 수많은 난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대비로 장엄된 갑옷과 투구로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여 그 난관을 타파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 악한 무리를 교화하는 것이다.
밀교의 수법 중에 수행자의 몸에 금강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게 하는 것은 삿된 신들이나 악마의 해침을 방호한다는 의미를 지니면서 동시에 자신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여 내부에 있는 번뇌로부터 청정심을 보호하는 것도 의미한다.

왜냐하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범망경’에는 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벌레 이야기가 나온다. 지상의 그 어느 짐승도 죽일 수 없는 사자가 오히려 몸속에 있는 작은 벌레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는 이야기이다. 사자의 뱃속에 살면서 영양분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벌레가 사자의 살을 먹어치워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지, 외부의 그 어느 짐승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언제나 적은 내부에 있다. 한 나라이든지 사회나 단체가 외부의 적에 의해서 궤멸하는 것보다는 내부의 적에 의해서 자멸하는 것이 상례이다.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자들이 스스로 불법을 파괴하는 것이지 외도나 천마들이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단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서도 그 개인을 무너뜨리는 것은 내부에 있는 번뇌들이다.

번뇌란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미혹하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 업을 짓게 되며,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 미혹의 세계를 헤매게 된다. 불교는 바로 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번뇌에도 갖가지 분류가 있는데 예로부터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의 2혹설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나누어지는 2번뇌설이 널리 통용되었다. 견혹이란 사고·지식·인식작용에 바탕을 둔 번뇌를 뜻한다. 여기에서 견(見)은 지혜에 의해 얻어진 지식적인 내용을 뜻하며, 혹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지혜로 제거할 수 있는 번뇌, 올바른 지혜를 가로막는 번뇌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소견이 잘못된 것인 줄만 깨달으면 곧 없어지는 번뇌이며, 보기만 바로 보면 곧 해탈된다는 뜻을 가진 번뇌이다. 수혹은 정서적·의지적·충동적 번뇌로서, 그 번뇌의 성질이나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곧 바뀌지 않는 번뇌이다. 돈이나 명예나 이성에 대한 탐욕이 바람직하지 못한 줄도 알고 있고, 시기·질투가 나쁜 줄 알면서도 그러한 심리작용이나 습관이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견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수혹은 정신의 이면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인간의 생을 이끌어가는 번뇌로써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견혹의 88가지와 수혹의 10가지 번뇌에 탐심과 진심과 치심의 근본번뇌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뇌를 더하여 백팔번뇌가 되는 것이다. 또, 2번뇌는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분류된다.

'대지도론'에서는 ‘번뇌라고 하는 것은 간략히 말하면 삼독이다. 번뇌의 습기란 번뇌의 남아있는 기운이다. 만약 신업, 구업으로 지혜를 따르지 않으면 번뇌가 일어난다. 비록 번뇌는 끊을지언정 습관은 끊을 수 없다. 마치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 난타가 음욕의 습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비록 아라한도를 얻었으나 남녀대중 가운데에 앉아 있었을 때 먼저 여자들을 보고 설법한 것과 같다. 부처의 일체지는 강력한 불과 같아 모든 번뇌를 태우고 다시 남는 습기가 없게 한다.’

이와 같은 난적을 상대하는 금강호보살은 금강계만다라 북방 월륜 가운데 불공성취여래의 오른쪽에 머무는데 이 보살의 동체가 되는 분이 반야보살이다. 대승불교에서 널리 알려진 반야보살이란 반야부경전의 본존으로 지혜를 본서로 하며 반야바라밀다보살이라고도 한다. 모든 부처가 깨닫는 데에는 반야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에 불모(佛母)라 칭한다. 반야를 통해서 모든 부처님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부모 가운데에 어머니의 공덕이 가장 중하니 이 까닭에 부처는 반야를 어머니로 한다는 의미에서 반야불모라 한다.
 
즉 지혜로써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보살이며, 또는 이 부류의 성스러운 대중들의 통칭이다. 반야보살이 지닌 번뇌를 그쳐 깨달음을 얻는다는 반야의 이미지가 금강계만다라에서 금강호보살로 명칭이 바꾸면서 번뇌척결의 상징성이 강화되었다.

'제불경계섭진실경'에 ‘나는 금강호이다. 나는 금강의 갑옷이다. 견실하고 굳세어서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금강정진이다. 나는 시방의 무량한 온갖 중생을 수호하여 두려움이 없게 한다’라고 하는 표현은 바로 그와 같은 금강호보살이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지키며 또 다른 사람의 내외에 있는 온갖 마장을 이겨내게 하고 굳은 마음으로 자신과 중생들 모두를 수호하는 강인한 서원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금강호보살은 중생 가운데 특히 어려운 상대를 대상으로 이타를 행하기 위한 정진, 그리고 수많은 번뇌 가운데 극복하기 어려운 번뇌를 타파하기 위한 금강과 같은 정진의 묘용을 상징하기 위하여 금강갑주인을 견고히 결한다. 금강갑의 인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금강으로 이루어진 몸을 획득한 금강호보살은 두려움이 없이 뭇 마장을 항복시킬 뿐 아니라, 일체의 번뇌마가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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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호보살

 

김영덕 교수/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