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 19.금강리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8-11-22  | 수정 :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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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칼처럼 끊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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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칼을 만든 역사는 적어도 250만년 이상이라고 한다. 칼은 무기, 도구로 활용되며, 평소 요리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 무엇보다도 자주 사용되는 도구이다. 총이 등장하기 전에 옛날 전쟁에서 모든 무기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바로 칼이었다. 이 칼은 칼몸이 휘어지고 한쪽에만 날이 있는 도(刀)와 칼몸이 곧고 양쪽에 날이 있는 검(劍)으로 구분된다. 칼은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찔러서 부수는 역할을 하기에 칼에는 끊어없앤다는 개념이 들어간다. 이러한 칼의 이미지를 불교에서 활용하여 번뇌를 부수는 뜻에서부터 해탈의 표치로서 여러 존의 삼매야형으로 사용된다. 그 칼을 지물로 하는 대표적인 보살이 문수사리보살이다.

문수사리라는 명칭에서 문수는 묘의 뜻이고, 사리는 머리·덕·길상의 뜻이므로 지혜가 뛰어난 공덕이라는 뜻이 된다. 이외에 묘음보살·문수동진·유동문수 등의 이명이 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4대보살이 하나로 보현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불의 보처로서 왼쪽에 있다. 이 문수보살은 초기 대승 경전인 '아미타경'과 '무량수경' 또는 '법화경'에 문수사리법왕자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그 후 문수는 모든 보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보살로 활약하였다. '방발경'에 의하면 석가도 영겁의 과거에 일찍이 어린아이였을 때 문수의 안내로 불도에 들어섰다고 하여, ‘문수는 불도 중의 부모’라 설하고 있다. 또한 '수릉엄삼매경' 하권에 과거 구원겁에 용종상여래가 있었는데, 남방의 평등세계에서 무상정등각을 이루고 수명 440세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그 부처가 곧 지금의 문수사리법왕자이다. '열반경'에서는 이 보살이 사위국 다라마을에서 덕망있는 바라문집안에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에 집이 연꽃처럼 변화했다고 한다. 그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출생하여 후에 석가모니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고 한다. '대보적경' 6권에 이 보살은 옛적 나유타아승지겁 이래로 18종의 대원을 발하여 불국을 엄정하여 미래에 성불하여 보현여래라 칭하며 그 불토는 남방에 있고 이름을 청정무구세계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유마경'에서 석가모니불을 대신하여 유마거사를 문병하여 불이의 법문을 펼친 문수보살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외에도 대승경전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이나 그 제자들과 문답하는 상대방으로 문수보살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불멸후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보기도 하고,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로서 지혜의 좌표가 된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지혜의 좌표가 되었고,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문수보살의 형상은 승려의 모습, 또는 동자상, 보관을 머리에 쓴 것도 있고, 대좌도 백련좌가 있으며, 공작을 탄 모습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지혜의 칼과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전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임을 알 수 있다. 지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곧 마음에 아무런 분별심이나 차별의식, 우열관념 등이 없는 밝음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도 보살이라 하면 자비를 상징하는 관자재보살 다음으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언급된다. 이것은 문수보살에 관한 신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결과이다. 그 신앙의 근거는 '화엄경'에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동북방 청량산을 들고, '문수사리법보장다라니경'에는 중국에 다섯 봉우리의 산이 있다고 설하는 데에 기인한다. 이로부터 중국 산서성의 청량산(오대산)이 문수의 영지로 유명하였다. 당나라 때에는 불공삼장 등이 주청하여 칙령으로 천하의 사찰 안에 각기 한군데 좋은 곳을 택하여 대성문수사리보살원을 설치하고 문수의 소상을 안치하게 하였다. '송고승전' 4권에도 규기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상을 옥으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기록은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중국에서 성행한 문수신앙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오대산에 있다고 하여 지금도 그곳의 상원사는 문수를 주존으로 모시고 예배하며 수행하는 도량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문수신앙을 들여온 이는 자장이며, 이밖에도 신라의 경흥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과 효명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방위신앙을 정립시킨 것, 경순왕이 문수보살의 화신인 줄 모르고 공양올리기를 꺼린 설화, 문수보살과 함께 수도했던 고려 고승 3인에 얽힌 설화, 세조의 병을 고쳐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밀교에 수용된 문수보살은 '금강정경'에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새롭게 출생한다.
“이때 세존은 다시 묘길상대보살삼매로부터 출생한 법가지의 금강삼마지에 드시었다. 이를 일체여래의 대지혜삼매라 이름한다. 곧 일체여래심이다. 자심으로부터 내어서 이 진언을 송한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나오자마자 곧 저 구덕지금강자는 위대한 지혜의 검을 이루고 출현하고 나서 저 묘길상의 성품은 금강살타삼마지에서 아주 견고한 까닭에 합하여 한 몸이 되어 묘길상대보살의 몸을 출생한다.”
위 인용문에 의하면 금강리보살의 출생 근거는 일체여래의 대지혜삼매이며, 이 삼매는 묘길상보살, 즉 문수사리보살의 삼매로부터 출생한다.

다시 '성위경'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내심에서 금강리검반야바라밀삼마지지를 증득한다. 자수용인 까닭에금강리검반야바라밀삼마지지로부터 금강의 날카로운 검의 광명을 유출하여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고,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고 모든 고뇌를 떠난다. 돌아와서 한 몸에 거두어져서 일체보살로 하여금 삼마지지를 수용케하기 위하여 금강검보살의 형상을 이루고 관자재왕여래의 오른쪽 월륜에 머문다.”
이처럼 그 지혜의 측면을 계승하여 날카로운 검으로 상징하기에 금강리를 금강검이라고도 한다.
 
'금강정경'에는 ‘일체여래대지혜’와 ‘묘길상지금강리’로 표현되며, 기타 ‘묘길상보살’, ‘금강수지보살’이라 하고, '백팔명찬'에는 ‘마하연나·마하기장·문수사리·금강장·금강심심·금강각’이라 하고 밀호는 ‘반야금강’이다.
'삼십칠존심요'에는 금강리보살과 동체인 문수사리보살의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문수사리대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원만히하여 지혜가 끝이 없다. 지혜의 검을 쥐고서 번뇌의 그물을 자르며, 네 가지 마군과 이승의 견고한 집착의 마음을 없애고 머무는 바가 없다. 공이나 유에도 머물지 않는다. 영원히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를 끊고 일체유정의 번뇌의 마음을 잘 끊어서 언제나 무위에 주하고 지혜가 원명함은 곧 문수반야의 지혜이다.”

'인왕반야다라니석'에는 ‘금강리란 반야바라밀금강의 날카로운 검으로 번뇌의 싹을 끊어버린다. 금강리는 문수사리보살이라 이름하며 이 까닭에 이 보살은 손에 금강검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이취석'에는 이 금강과 같이 견고한 대지혜의 날카로운 금강검이 바로 반야바라밀다 지혜의 검으로 삼해탈문에 머물어 진여·법신·상락아정을 현현한다. 문수사리보살에 의하여 이 지혜를 증득함으로 해서 문득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된다고 표현되어 있다.

'일체비밀최상명의대교왕의궤'에서는 “대승의 미묘한 지혜 지극히 날카로와 모든 번뇌의 종자 끊고 지혜의 장애 깨뜨림도 역시 그러하니 이것이 바로 금강리보살이다.”라 하고 있다. '약출염송경'에서도 “금강장검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일체의 고를 끊는다”고 하듯이, 이 반야의 날카로운 검은 일체중생의 모든 번뇌를 끊어버리고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금강리보살의 활동, 그 자체이다. 이러한 표현은 금강계만다라에서 서방월륜 가운데 무량수여래의 우측, 곧 남방에 머무는 금강리의 성격과 묘용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금강리보살의 오묘한 인의 가지로 말미암아 반야의 깊고 깊은 지혜를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금강리보살의 존형은 만다라에서 검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며, 그 삼매야형은 연꽃 위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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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리보살
 
김영덕 교수/ 위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