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미소,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보물 된다

밀교신문   
입력 :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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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불화 포함(괘불도) 포함


수막새.JPG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대형 불화(괘불도)를 포함해 고려 시대 금속공예품 등에 대해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일제시기 경주 영묘사 터(현재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수막새(원와당·목조건축의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된 둥근 형태로 만든 와당)이다. 1934년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라는 일본인 의사가 경주의 한 골동상점에서 구입한 뒤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고 박일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노력으로 197210월 국내로 돌아온 환수문화재다.

 

와당 제작틀(와범)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은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으로,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전체적인 형상을 만든 후 도구를 써서 세부 표현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신라의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지정 예고에는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에 소장된 대형 불화(괘불도)의 보존관리를 위해 정밀조사 사업을 하면서 문화재적 가치가 새롭게 발굴된 괘불도 3건이 포함됐다.

 

 

군위 법주사 괘불도1714(숙종 40) 5월 수화승 두초(杜迢) 9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한 괘불이다. 16폭의 비단을 이었고 높이 10m에 달하는 장대한 크기로서, 거대한 화면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두 손을 좌우로 벌려 연꽃을 들고 있는 입상의 여래를 화면 중간에 큼직하게 그렸다. 부처임에도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한 보살의 모습으로 구현한 점, 하단에 용왕(龍王)과 용녀(龍女)를 협시보살처럼 배치한 점 등 다른 불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화면 구성을 시도한 것이 주목된다.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1750(영조 26) 축명(笁明), 사혜(思慧) 4명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세로로 긴 화면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배치하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상하로 그려 오존(五尊) 형식을 취한 구도이다.

일목요연한 구도와 날씬하고 비례가 적당한 인체표현, 붉은색, 하늘색, 분홍색 등 밝고 부드러운 색채의 사용 등은 18세기 전반 충청도 지역 불화 양식을 계승했음을 잘 보여준다.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야외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靈山齋)에 사용된 불화로, 1788(정조 12)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인 상겸(尙謙)의 주도로 총 22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괘불도는 높이 10m가 넘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본존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주위에 권속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고 밝고 짙은 채색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명료하고 능숙한 필선으로 대상을 표현하여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주고 있으며,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불화 중 하나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경선사명 청동북은 사찰의 일상적 불교 의례에서 사용된 불교의식구의 한 종류인 청동북으로서, 옆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무인년(戊寅年)’1218(고려 고종 6) 경 무관 6명이 발원해 경선사(景禪寺)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청동북은 표면에는 4개의 굵고 가는 동심원을 둘렀고 중앙에는 연꽃 씨를 표현하였으며, 그 주위를 16개의 연화문으로 돌려가며 장식해 화려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췄다. 고려시대 청동북 중 아래에 공명구가 뚫려 있는 사례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이다. 지금까지 고려 청동북은 뒷면이 뚫려 있는 반자형(飯子形)이 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옆면에 공명구가 마련된 경선사명 청동북13세기 청동북 중 기년명이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자 독특한 제작기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 금속공예품 연구에 있어서도 의미가 크다.

 

이재우 기자 san108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