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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715호)-더불어 산다는 것은 상호공양이다

편집부   
입력 : 2018-07-23  | 수정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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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복불사를 짓고 추선불사를 봉행할 시기다. 굳이 어느 때, 어느 시를 가려서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조상불을 위한 불사이기에 해탈절을 전후해서 간절함이 더한 것은 당연하다.

추복불사는 “부처님의 가지원력을 조상불이 입게 하여 자손만대 드리우게” 하는 불사다. 그래서 부모를 위해 추복하면 삼복전을 짓게 된다고 했다. 추선불사는 “사람이 열반한 후 칠일부터 사십구일 불사를 짓게 되면 조상불의 가지력을 그 집에서 입게 되어 자손의 복업 공덕이 한량없게” 된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그러므로 추선하면 가내 안전하여지고 자손 장구 할지니라”라고 한 것이다.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해탈절이 자유를 희구하는 날로 갈망한다.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구속과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영혼’처럼 이곳저곳 걸림 없이 떠돌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시름에 겨워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그로부터 벗어나 편안하고 안락한 행복을 바랄 수밖에 없다. 가난으로부터 탈피해 부귀영화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매 한가지다. 현대인의 생활에 있어 가난이라는 불편도 저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또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 심지어 이웃의 누군가와 불화를 겪고 있는 이라면 하루빨리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것이다. 주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불화하고 있다는 것 역시 괴로움의 한 덩어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궁극적으로 해탈은 열반과 적멸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로서는 지금 겪고 있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구속 받는 것 없이 순간순간 행복하기를 원할 것이다. 살아서 이렇게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바르게 서야 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가지런히 하면서 인륜과 사회질서는 물론 인과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삼가야 한다. 인간관계에 의한 연(緣)을 살피고 갈무리하는 것도 절대적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부모 없는 자식 또한 있을 수 없다. 숲을 이루는 온갖 식물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부대끼면서 자연의 섭리와 질서에 따라 생태계의 순환을 반복하듯이, 세상살이도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기에 그렇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상호공양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상호공양이 이루어지는 곳에 불화가 있을 수 없고 여타의 번뇌는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공양(供養)이란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의식으로 짓는 업 등 삼업(三業)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과거에 끊어야 할 번뇌가 없고, 현재에 지켜야 할 자성이 없고, 미래에 이루어야할 부처가 없는 것이 곧 과거, 현재, 미래를 끊는 것이고, 삼업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주는 이, 받는 이, 주는 물건 등 삼륜(三輪)이 공(空이) 것이고, 삼단(三檀)이 공(空)인 것이다.”‘백장어록’(김태완 역주, 침묵의향기, 2016)에 있는 말이다. 삼륜청정의 마음으로 상호공양하면서 자주적인 자유를 누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