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19-옷을 입다②

밀교신문   
입력 : 2018-07-23  | 수정 :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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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입어야 할 24벌의 옷

지난 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당시 수행자들의 옷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보통 불자들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다양한 옷들이 필요합니다. 의미 있는 자리일수록 어떤 옷을 입느냐에 일의 성사가 달려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옷차림으로 나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옷들이 옷장에 가득합니다.

경전 속에서 불자들은 ‘흰 옷의 재가신자’라 불립니다. 화려한 옷이나 격조 있는 옷으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일상생활에서 잠시 물러나 수행처에 머물 때는 모든 장식품을 몸에서 떼어내고 고결하고 소박한 흰색으로 갖춰 입습니다.

그런데 대승불교는 소박한 흰색 옷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는 삶이 그렇게 조용하고 한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치열하게 매달리면서도 그곳을 자신의 도량으로 여기며,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지 않고 남의 이익을 먼저 챙기며 그것을 자기 이익으로 삼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대승불교 수행자인 보살입니다.

보살은 옷을 입어도 세상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경전에서는 보살이 입어야 하는 옷을 따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불자들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지만 <부사의광보살소설경>이란 제목의 경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훌쩍 넘어선 신비로운 빛(不思議光)으로 세상을 환히 비추는 보살이 들려주는 경이란 뜻이지요.

이 보살은 전생, 그 전생, 그 전의 전생…을 보살행을 하며 지내왔고, 이번 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뵙고 깨달음을 완성하려는 참입니다. 오랜 세월 쌓아온 보살행으로 그 몸은 어떤 옷을 걸치지 않아도 눈부시게 빛이 나며, 그 빛을 쐰 천상의 신들과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이 모두 부처님 세계를 동경하며 발심하게 만드는 이입니다. 경에서는 대략 8살 정도의 어린 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발가벗은 어린 보살의 몸에서 나는 빛에 이끌려 내려온 제석천이 천상의 옷을 내려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야, 이 옷을 받으렴. 우리 정성을 생각해서 받아주렴. 이렇게 벌거벗은 몸으로 지내면 안 된단다.”
그러자 이미 전생부터 보살의 행을 쌓아온 부사의광보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석천이여, 보살은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옷을 입는 것으로 자신을 꾸며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보살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들려줍니다.

첫 번째, 옷은 부처님 지혜를 얻으려는 마음입니다. 자기 번뇌를 없애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세간과 열반의 차별을 넘어서서 궁극적인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마음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옷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스스로 돌이켜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을 대하기에도 떳떳하지 못함에 창피한 줄 알아야 하는 마음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 번째, 옷은 서원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잘 다스려서 그들을 허물없이 살아가게 하려는 굳센 서원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네 번째, 옷은 정직함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알기 때문에 늘 정직하고 거짓이 없으니 이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옷은 정진입니다. 미혹과 거짓을 완전히 끊어버렸기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을 하는 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 옷은 기쁨입니다. 세상의 선(善)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기쁘니, 보살은 그런 마음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곱 번째, 옷은 교만함을 버리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완벽하게 배웠기 때문에 교만함을 버리는 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덟 번째, 옷은 진리를 본받으려는 마음입니다. 모든 선정을 완전하게 이루었기 때문에 한걸음 나아가 법을 듣고 본받으려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홉 번째, 옷은 지혜와 관련해서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반야바라밀을 완벽하게 이뤘기 때문에 지혜에 있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 번째, 옷은 이익입니다. 이미 마음은 집착을 떠나 지혜를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이익을 내는 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한 번째, 옷은 보시입니다. 모든 이들을 가엾게 여겨서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에 저들이 바라는 것은 아낌없이 주는 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열두 번째, 옷은 지계입니다. 깨달은 자가 갖춰야 할 신체적 특징(상호)을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맑고 티 없는 계율을 지키는 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열세 번째, 옷은 인욕입니다. 서원을 완벽하게 이루었기 때문에 화합하고, 욕됨을 참는 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네 번째, 옷은 정진입니다. 마침내 청정한 음성을 완벽하게 갖췄기 때문에 굳게 정진하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뒷걸음치지 않는 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다섯 번째, 옷은 선정입니다. 모든 일에서 완전하게 벗어났기 때문에 온갖 선정과 해탈삼매를 얻는 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여섯 번째, 옷은 부서지지 않는 지혜입니다. 크게 통하는 지혜(大通智)를 완벽하게 이루었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는 지혜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일곱 번째, 옷은 방편의 지혜입니다. 온갖 번뇌와 견해의 장애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위대한 방편의 지혜가 생겨나니 그것으로 옷을 삼아야 합니다.

열여덟 번째, 옷은 커다란 우정(大慈)입니다.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일으키는 커다란 우정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열아홉 번째, 옷은 커다란 슬픔(大悲)입니다.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으키는 깊고 커다란 연민과 슬픔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스무 번째, 옷은 커다란 기쁨(大喜)입니다. 나고 죽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윤회를 고달파하거나 싫증내지 않기 위해 일으키는 커다란 기쁨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스물한 번째, 옷은 커다란 평정심(大捨)입니다. 법의 즐거움을 완벽하게 갖추기 위해 일으키는 커다란 평정심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스물두 번째, 옷은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고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보살은 이미 탐내거나 성내는 마음을 완벽하게 떠났기 때문에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중생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니 그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스물세 번째, 옷은 설법입니다.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지 않으며 가르침을 베푸는 것을 옷으로 삼아야 합니다.

스물네 번째, 옷은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것을 옷으로 삼아야 하니, 보살은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었기 때문입니다.

여덟 살 어린 아이인 부사의광보살은 제석천에게 이렇게 옷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끝맺습니다.

“제석천이여, 이런 옷이 보살이 입어야 하는 진리의 옷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대의 눈에는 내가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몸은 진리로 장엄하였으니 벌거벗은 몸이 아닙니다.”

제석천은 눈앞의 아이가 아무 것도 모르는, 발가벗은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을 향한 끝없는 연민(대비심)과 깨달음을 향한 강한 열망(보리심)으로 똘똘 뭉친 보살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어린 부사의광보살을 향해 공경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한없이 커진 제석천은 부처님에게 부탁합니다.

“저희를 가엾게 여기셔서 이 어린 아이가 옷을 받게 해주십시오.”
부처님은 제석천의 마음을 헤아리고서 그 하늘의 옷을 받아서 어린 부사의광보살에게 건네주셨습니다. 그러자 보살은 공손히 예를 갖추고 제석천이 올린 옷을 받아서 입었습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어린 부사의광보살이 들려준 24벌의 옷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세상을 위해 끝없이 봉사하는 보살의 옷차림으로 다시 없이 좋은 팁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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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