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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34-고생과 고행

편집부   
입력 : 2018-07-23  | 수정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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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라는 말을 아십니까?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들이 쓰는 신조어나 은어를 뜻하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급식체 중에 유난히 ‘개’로 시작되는 용어가 많습니다. 급식을 먹을 나이가 이미 훌쩍 지나버린 내가 아는 접두사 ‘개’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뜻밖에 없습니다. 개떡, 개복숭, 개살구,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 등 ‘헛된’, ‘쓸데없는’이라는 뜻의 단어뿐입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급식체에서 ‘개’는 ‘좋다’ 또는 ‘뛰어나다’는 뜻을 가집니다. ‘개좋다’는 말은 ‘매우 좋다’는 뜻입니다. ‘개꿀잼’은 ‘너무 재미있다’, ‘개이득’은 예상치 못한 큰 이득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매우 심한 고생’ 또는 ‘헛고생’이라는 뜻인 ‘개고생’을 어떻게 풀이할까요? ‘급식체로 풀이한다면 ‘개고생’은 ‘바람직한 고생’ ‘의미 있는 고생’이 되지 않을까요? 과연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개고생’을 그런 의미로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부처님께서 인생을 ‘고’의 바다라 하신 것처럼 우리는 인생길에서 숱한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더러는 간헐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설상가상’이라,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큰 어려움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통하여 고를 멸하고 도를 이루라고 하셨지만 사실 중생들로서는 그 도에 이르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을 원망하거나 고통을 피하려고 애만 쓸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신에게 닥친 고가 감쪽같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고통이 더 심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그 지독한 고통을 감내하고만 있어야 할까요?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고생이 아닌 ‘고행苦行’으로 치환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어느 날 한 보살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글세방에서 어렵게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갖은 고생 끝에 모은 돈으로 작은 공장을 성실하게 운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납품처의 갑작스런 부도로 결국 우리 부부의 피와 땀이 서린 공장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다니는 지라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아무 일이나 하고는 있지만 이제 고생은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시시때때로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화만 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희망이라곤 없습니다.”

보살님 내외가 그동안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용맹정진하십시오. 회당대종사님께서 ‘고생하고 고행하는 두 고통이 다른지라, 외도外道들은 잠깐 좋고 숙명적인 고생하되, 행자行者 자진自進 고행하여 세간 고생 막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진으로 마음을 맑게 하면 고생을 고행으로 바꿀 수 있게 됩니다. 어려움을 고행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그 고통은 틀림없이 사라질 겁니다.”

열흘쯤 지난 후였습니다. 보살님의 표정이 몰라볼 정도로 밝아져 있었습니다.
“전수님, 고맙습니다. 그 동안 내 마음이 너무 안일하여 흐려져 있었나 봅니다. 정진하고 나니 부처님의 진리가 보이더군요. 어차피 겪어야할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고 내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수행으로 생각하자는 마음을 먹었더니 그때부터 희망이 보이고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고생’이라는 단어는 수동적·부정적·소극적·이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닥치는 난관을 고생으로만 보면 인생은 도저히 헤쳐 나아갈 수 없는 고통의 바다가 되고 맙니다. 희망을 잃은 채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며 세상과 남을 원망하게 함으로써 종래에는 그 난관에 항복하여 삶을 포기하게도 합니다.

반면, ‘고행’이라는 단어에는 능동적·긍정적·적극적·이타적인 속성이 함께 합니다. 난관을 목표에 닿기 위해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인 고행이라고 여기면 더욱 강한 마음으로 삶을 경영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생을 인생길에서 꼭 넘어야 할 고개로 여기면서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난관을 고생으로 보면 인생은 낭비일 뿐이지만 고행으로 보면 매순간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알게 되어 삶이 즐거워집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으로 억지로 하면 노력도 헛고생이 되고 맙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힘든 수행 과정이라 생각하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시시때때로 장애물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장애물을 극복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고통은 필수입니다. 아무런 고통이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겪는 고통을 고행으로 승화하면 오히려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고생과 고행,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품고 있는 뜻은 이처럼 크게 다릅니다. 여러분은 외도外道들이 그러하듯 인생길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고생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면 고행으로 극복하시겠습니까? 행자行者가 어려움과 고통을 이기는 방법으로는 최선입니다.

이행정 전수/보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