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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33-내 안의 부처님 법문대로

편집부   
입력 : 2018-07-23  | 수정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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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교화를 하면서 선택에 관한 법문을 구하는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업을 해야 할까요 말까요?”
“우리 아이가 성적이 좋은데 이공대 준비를 시켜야 할지, 의대 준비를 시켜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요.”
참,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생을 좌우할 만한 큰 선택까지 매일 눈만 뜨면 선택하라고 아우성들이죠. 음식 메뉴를 정하는 등 사소한 것이야 어떤 선택을 하던 당사자의 인생에 큰 영향이 없지만 진학이나 취업 결혼 같은 선택에서 갈등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택의 이면에는 포기해야 할 것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포기를 잘하는 것이 바른 선택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되는데, 어떻게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길을 가던 사자가 잠이 든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배가 고팠던 사자는 웬 떡이냐며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했겠지요? 그런데 문득 사슴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토끼보다 훨씬 탐나는 먹잇감을 보자 사자는 욕심이 나서 토끼는 내버려둔 채 사슴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사자가 맹렬히 추격했지만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 사슴을 그리 쉽게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추격을 멈추고 토끼나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되돌아왔는데, 어느 멍청한 토끼가 그 자리에 남아 ‘나 잡아먹어라’하며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일에서도, 삶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수많은 기로 중에서 선택과 포기를 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 때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우선 어떤 것을 선택하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부터 되새겨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가지거나 누리려 하면 하나도 온전히 가지거나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소중한 하나를 택하면 다른 것들은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의 목표에 다가섰을 때 만나는 기쁨은, 그것을 위해 놓아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포기는 집중이 동반할 때 그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사자는 마음이 혼란하여 집중하지 않는 바람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집중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맑고 밝은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맑고 밝은 정신은 어떻게 유지해야할까요? 수행입니다. 회당대종사님께서도 “부처님은 좋은 것 두 개(부와 권력)를 동시에 주지 않는다.”고 법문하신 바 있습니다. 선택과 동일성의 양면 관계에 있는 포기는 또한 힘의 원천이 됩니다. 부처님은 젊은 나이에 이미 ‘행운에 대한 기대의 포기[출가-크나큰 버림]’를 실천하셨습니다. 행운에 대한 기대의 ‘포기[출가]’는 이 이면에 부단한 노력의 길만을 ‘선택[수행자]’하겠다는 의지를 포함합니다. 이 의지의 실천[집중-수행]이 그 분이 일생에 걸친 위업을 달성[성불]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 진각행자들에겐 몸에 밴 확실한 수행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삼밀관행과 육행실천입니다. 『보리심론』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명관을 탐하는 자는 명관을 구할 마음을 발하여[선택과 포기] 그 명관을 다스리는 모든 행을[집중] 수행하고,
보리를 구하는 자는 보리심을 발하여[선택과 포기] 보리행[집중]을 닦을지라.”

진각행자들에게 선택과 포기는 ‘당체법문’이며, 집중은 ‘삼밀관행 육행실천’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선택의 기로에서 우상을 정하여 자신의 운명을 맡긴 채 매달리고 빌어서 신통한 무언가를 얻어내려 합니다. 내가 곧 부처요 내 안에 불성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믿는 우리 진각행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가짜 수행입니다.

당체법문은 무엇인가요? 수행을 통하여 내 안의 부처님이 드러나시어 일체현상으로 말씀해 주시는 법문입니다. 그러면 내 안의 부처님은 언제 드러나실까요? 탐심이 찾아오기 쉬운 마음을 ‘희사’를 통해 끊임없이 비워내고, ‘염송’을 통하여 굽어진 마음을 바로 세워 다스리고, ‘참회’를 통하여 마음을 맑고 밝게 했을 때 내 안의 부처님이 드러나시어 법문을 내리시니 이것이 바로 당체법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에 기로에 서 있는 분들이 법문을 구할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정진해 보십시오.”
희사와 염송 그리고 참회를 통해 ‘내 안의 부처님’이 내리시는 당체법문을 지혜롭게 깨쳐 수행하시라는 뜻입니다. 

“시방삼세 나타나는 일체 모든 사실들과 내가 체험하고 있는 좋고 나쁜 모든 일은 법신불의 당체로서 활동하는 설법이라 밀은 색을 이로 하여 일체세간 현상대로 불의 법과 일치하게 체득함이 교리이니 체험이 곧 법문이요 사실이 곧 경전이라. 오직 삼밀행자만이 이 법문을 보는 고로 깨쳐 성불하게 된다.” (실행론)

이행정 전수/보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