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선도산 마애불서 조상기(造像記) 추정 명문 발견

편집부   
입력 : 2018-06-05  | 수정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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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8자 판독

마애불 조상기로 추정되는 명문 탑본(사진제공=오세윤 작가)

“국내 석불명문 중 최고로 추정”
명문 글자 크기 세로 3.5~4.5㎝

경북 경주시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제62호) 옆 성모사(聖母祠) 뒷편 바위면에서 불상 조성 과정을 담은 7세기 전후 조상기(造像記)로 보이는 명문을 발견했다.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불교고고학)은 6월 4일 “최근 유적답사 중 선도산마애불의 오른쪽 암벽에서 약 1.3m 떨어져 나와 현재 성모사(聖母祠) 뒷편 처마아래까지 밀려온 바위면에서 면에서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명문이 발견되었다”며 “이 명문은 유적답사 중 글자가 있는 것을 보고 전공학자들과 함께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5행 8자를 판독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명문의 글자 크기는 세로 3.5~4.5㎝이고, 글자 사이의 간격은 2~3㎝, 옆 글자와의 간격은 약 4㎝이다.
명문은 능숙한 솜씨로 새긴 해서체로 가로 3m, 세로 2.8m, 높이 2.5m의 바위 동쪽면에 남아있는데, 표면 박락과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더구나 후대에 빗물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길이 110㎝, 너비 6㎝, 깊이 3㎝의 홈을 파내면서 많은 글자가 없어졌다. 또한 남은 부분이 전체 명문의 중간 부분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서두에 새겨지는 연호(年號)나 간지(干支)는 보이지 않는다.

판독된 명문 중에서 ‘미(弥)’는 선도산마애불의 본존이 아미타여래상인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며, ‘아니(阿)’는 ‘아니(阿尼)’의 이체자(異體字)로 대구 무술오작비(戊戌塢作碑 578년·신라 진지왕 3년)에도 있는데, 여성승려를 뜻하는 호칭으로 삼국사기에도 2군데 보인다. 

박홍국 교수는 “명문의 위치로 보아 마애불의 조상명문으로 보면서 단석산 신선사 조상명문과 더불어 우리나라 석불 명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정도로 잘 새긴 명문이 있다는 것은 당시 선도산마애불 조성에 대단한 공력이 투입되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라고 말했다.

명문 조사를 함께한 이영호 경북대 교수(신라사)는 “이번에 발견된 명문은 비록 일부 글자만 판독된 상태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진평왕대(597~632년) 선도성모 불사 관련 사실(史實)이거나 700년 전후에 조성된 마애삼존불의 조상명문(造像銘文)일 가능성이 높은 중요한 금석문”이라고 밝혔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고대사)는 “제5행의 글자가 ‘아니(阿尼)’라면 신라의 불교 공인 직후부터 비구니의 출가가 이루어졌고, 그들이 여러 불사를 주도하거나 관여하는 등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서예사)은 “명문의 글씨는 힘차면서 품격 있는 북위풍 해서”라며 “경주 남산신성비 제10비(591년, 신라 진평왕 13년), 함안 성산산성 출토 ‘임자년’ 목간(592년), 하남 이성산성 출토 ‘무진년’ 목간(608년)의 서풍(書風)과 흡사하여 진평왕대인 6세기 말 7세기 초 신라의 북위 서풍 수용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서예사적 자료”라고 평가했다. 

선도산 ‘마애여래삼존입상’은 높이 6.85m의 본존불이 화강암으로 조성된 좌·우 협시보살(4.62m· 4.55m)과 함께 있는 형태로 경주 시내를 내려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애불 조상기로 추정되는 명문 부분(사진제공= 오세윤 작가 )


선도산 마애불과 성모사(사진제공=오세윤 작가)

이재우 기자 san1080@nate.com